“박근혜는 대통령 할 자격이 없는 사람, 영남대 문제부터 공개사과해야”
[인터뷰] 박정희 정권의 '장물' 영남대 설립자 최준 선생 장손 최염(80) 옹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입력 2012-11-27 11:51:20 l 수정 2012-11-27 13:14:55

박정희 정권이 장물로 취득한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 설립자 최준 선생의 장손 최염(80) 옹.
박정희 정권이 장물로 취득한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 설립자 최준 선생의 장손 최염(80) 옹. ⓒ이승빈

영남대의 전신인 대구대학의 설립자 최준 선생의 장손자 최염(80)씨는 23일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대통령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만석꾼 최 부자댁과 친일 독재정권 박정희 일가

최염 씨의 할아버지 최준(1884 ~1970 ) 선생은 독립운동에 힘을 보탠 경북 대구의 만석꾼이었다. 대구에는 2만석꾼, 3만석꾼, 5만석꾼 등 지주가 많았는데, 1945년 해방 후 최준 선생은 대구 지역 지주들과 함께 대학을 설립하기로 뜻을 모으고 1947년 대구대학을 설립했다. 지주들은 현금과 토지 등 재산을 출연했다. 최준 선생은 동양철학 서적 7,200권과 현금 40만원을 내놨다.

최준 선생은 6.25 동란 때는 서울에서 피난온 대학 교수들이 교편을 잡을 수 있도록, 지금으로 치면 2년제 전문대인 '계림학숙'을 설립했다. 경주 교동 99칸 대저택의 사랑채를 학장실로, 창고를 강의실로 만들어 썼고 학교 설립 인가를 받기 위해 재산도 모두 출연했다. 1950년 9.28 서울 수복 후 교수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가면서 계림학숙은 학생만 남은 학교가 됐고, 부득이하게 대구대에 합병됐다. 이로써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경주 최 부자댁의 재산은 모두 사회에 환원된 셈이다. 

대구대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대학정비사업'을 벌이면서 학교시설 증설을 요구하면서 재정난을 겪었고, 최준 선생은 대구대 운영권을 삼성 이병철 회장에게 넘겼다.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차남이 구속되고 자신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이병철 회장은 대구대를 박정희 정권에 넘긴다. 

설립자 최준 선생은 1967년 청구대와 대구대를 통합해 영남대를 설립하는 것에 반대했는데, 설립자의 뜻과는 무관하게 박정희 정권의 실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주도하에 영남대가 설립된다. 그 직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과 정권 실세들이 영남대 초대 이사로 포진하고,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이듬해인 1980년 이사회 결의로 29살의 박근혜가 영남대 이사로 선임된다. 그리고 곧바로 이사장으로 추대된다.

박근혜는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로 이사로 물러났지만, 1988년 국정감사로 영남대 재단의 비리가 낱낱이 밝혀져 도망치듯 불명예 퇴진할때까지 8년(1980년~1988년)동안 실질적인 영남대 주인이었다. 당시 29살의 박근혜 씨가 영남대에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학교의 주인 노릇을 했던 것은 사망한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박근혜 후보가 이사직에서 물러난 것은 재단의 각종 비리 때문이었는데, 임사이사체제로 운영되던 영남대가 소위 재단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2009년 여당인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 후보에게 재단 이사 4명의 추천권을 줬고, 재단 이사 7명 중 과반수를 넘는 4명이 박 후보가 추천한 인물로 채워지면서 영남대는 다시 박 후보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다. 박근혜 후보가 사실상 영남대로 복귀하면서 친일을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독립운동을 했던 최준 선생의 불편한 관계는 대를 이어 박근혜 후보와 최염 씨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남대 재단 이사로 있을 때 밑에 놈들이 다 해 먹었는데, 나랏일 맡으면..."

최염 씨는 5년 전 미국에 있을 때 한국 TV 프로그램을 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당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는데 박 후보측 김재원 대변인이 MBC에 나와서 '영남대 문제는 20년 전 국정감사 당시에 다 해명된 것을 재탕, 삼탕하고 있다'고 했다. 또 '박근혜 후보가 이사로 있었지만 이사회에 참석도 안 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미국에서 나와서 바로 기자회견을 했다." 2007년 6월 26일 한나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한 최염 씨는 영남대 설립 과정에서 대구대와 청구대 설립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통합한 과정, 박근혜 이사 재직시 재단 소유 부동산 처분 의혹 등에 대해서 밝혔었다.

최염 씨는 "박근혜가 이사로 있었지만 실질적인 이사장은 박근혜 였다"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 뭉치 속에서 종이 한 장을 찾아 기자에게 내밀었다. 박근혜 후보가 이사로 재직했던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영남대 총장을 지냈던 김기택 전 총장으로부터 2007년 7월 11일 받은 '사실확인서'였다. 사실확인서에는 김기택 전 총장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가 적혀있고, "상기 본인은 1986년~1988년 사이에 영남대 총장으로 근무한 바 있습니다. 근무하면서 있었던 내용을 다음과 같이 확인합니다"라며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대구대 총장을 지낸 김기택 전 총장이 박근혜 이사가 실질적 이사장 역할을 했다고 진술한 사실확인서.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대구대 총장을 지낸 김기택 전 총장이 박근혜 이사가 실질적 이사장 역할을 했다고 진술한 사실확인서. ⓒ최엽 제공

"1988년 초 박근혜 여사와 교수협의회 의장단과의 면담:영남대학 민주화 요구 과정 중 총장이었던 나는 조일문 이사장과 교수협의회 의장단과의 면담을 주선하려 했다. 조일문 이사장이 자신은 실권이 없으니 실질적 이사장인 박근혜 여사와 교수협의회 의장단이 직접 만나 의장단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좋겠다고 나에게 제안하였다. 나의 주선으로 서울 법인사무국 이사장실에서 조일문 이사장을 제외한 박근혜 이사, 본인(김기택) 그리고 교수협의회 의장단 등이 만나서 대학발전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이는 모든 업무의 결정을 실질적 이사장인 박근혜 이사가 직접하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학사 등 대학 제반 사항 처리에 관한 견해:실질적 이사장인 박근혜 이사가 임명하였던 4인방 (김정욱 상임이사, 곽완석 사무부처장, 손윤호 병원사무장, 조순제 영남투자전무)을 통해 중요한 업무가 총장인 나에게 전달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박근혜 이사의 지시라 생각하고 중요사를 처리한 바 있다. 법인의 업무는 총장의 권한 밖의 일이므로 알지 못하였지만 박근혜 이사의 지시를 받던 김정욱 상임이사와 조순제 영남투자전무 등을 중심으로 업무를 수행했던 것 같다."

최염 씨는 "학사 행정까지 이사로 있던 박근혜가 다 했는데 재단 문제를 자기가 모르고 했을 리 만무하지 않냐"면서 "박근혜의 이런 (영남대 재단 비리) 경력을 봐서 나라 일을 맡으면 밑에 놈들이 다 해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남대는 1988년 사립대학으로는 처음으로 국회 국정감사를 받아 부정입학, 장학금 비리, 재단 산하 영남투자금융 비리 의혹 등을 지적받았다. 특히, 박근혜 이사가 재임하던 8년 동안 대구대와 청구대 설립자들이 기부한 재단 소유 토지 34건을 팔아 사익을 취하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최염 씨는 부동산 처분과 관련해서는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막아선 바도 있다. 

대구대와 청구대 설립자인 지주들은 대학 설립을 위해 현금과 토지를 기부했다. 김해공항 인근에도 대구대 설립자들이 기부한 토지가 남아 있다. 대구대와 청구대가 통합돼 영남대가 설립되면서 이 토지들은 영남대 소유로 넘어갔다. 박근혜 후보가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부터 1988년까지 영남대 재단 소유 토지 34건을 처분해 부당 이득을 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대구대와 청구대 설립자인 지주들은 대학 설립을 위해 현금과 토지를 기부했다. 김해공항 인근에도 대구대 설립자들이 기부한 토지가 남아 있다. 대구대와 청구대가 통합돼 영남대가 설립되면서 이 토지들은 영남대 소유로 넘어갔다. 박근혜 후보가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부터 1988년까지 영남대 재단 소유 토지 34건을 처분해 부당 이득을 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경남 울주군 소재 본인의 조부님이 기부한 땅 10만여 평을 1988년 1월 11일 영남대 재단이 매도한 적이 있다. 조상 묘 3위가 계시던 땅이었는데 평당 760원 정도로 매각됐는데, 1988년 국정감사에서 김동영 의원은 평당 5만원 이상은 된다고 지적했다. 나는 그 이상은 된다고 확신했고 선산 분묘가 계시는 그 땅을 찾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고 생각되어 당시 조일문 재단 이사장을 찾아가 아직 매매계약이 안 된 상태이니 땅 값을 두 배라도 지불할테니 나에게 팔라고 했는데, 바로 그 다음날 계약을 해서 팔아버렸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경주시 구정동 임야 1만2천평은 그 일대가 온천지구로 고시되어 100억 원 이상의 시세가 형성돼 있었는데 거의 거저인 4억 원에 차 모 씨에게 매도했다. 이 땅엔 7대 조모님의 산소가 있는데 이건 비밀리에 팔아서 나중에 박근혜 이사가 재단을 떠나고 알았다. 나중에 차 모 씨를 추궁한 결과, 매매대금은 11억 원인데 양도소득세가 많이 나와서 계약서 상에는 4억 원으로 기재하고 7억 원은 별도로 지불했다는 것이다." 최 염 씨는 이 내용을 갖고 대구지방국세청에 갔는데 국세청에서는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최염 씨는 박근혜 이사 재임 기간 동안 영남대는 '비리백화점'이었다는 지적을 1988년 국정감사에서 받았다고 상기시켰다. "1987년 노태우가 당선되고 여소야대가 됐다. YS(김영삼)와 DJ(김대중)을 합치면 여당인 민정당 보다 국회의원 숫자가 많았다. 국회 문교위원장은 정대철이었는데 거기서 사립대는 국정감사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특별결의를 해서 광주 조선대와 대구 영남대를 국정감사를 하게 됐다. 거기서 처음으로 지적된 것이 영남대가 비리백화점이라는 것이었다. 학생 부정입학이 29명이었는데, 2명은 재단 이사의 자녀였고, 나머지 27명한테서는 전부 2천만원씩 받았다. 요새로 하면 2억 원도 더 된다. 박근혜가 그걸 몰랐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 그렇게 하면서 재단에서는 학교에 전입금 한 푼 내놓지 않고 우리 재산을 다 팔아먹었다."

"박근혜의 원칙은 도대체 뭐냐"
"자기 아버지, 어머니가 관계했던 건 전부 자기 거라고 생각한다"

1988년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이사가 재직할 동안 벌어진 영남대 재단의 비리가 낱낱이 밝혀지고 박근혜 이사는 그해 11월 2일 성명을 발표하고 불명예 퇴진한다. "이사직은 사표 내고 가면 그만일 텐데 박근혜가 (재단에서 손을 뗀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갔다. 부정입학을 재단에서 알고 했다, 재단에서 시켜서 했다는 게 드러나면 전부 구속될 거 아니냐. 그때는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에 가 있을 때고, 노태우는 전두환 만큼 박근혜를 옹호를 안 해주니까 '나는 온전히 영남대를 떠났으니까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고 떠난 거지."

최 염 씨는 박근혜 후보의 '원칙'론은 자기 좋을 때만 원칙이냐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박근혜가 원칙론자라는 거 아니냐. 그렇다면 (2009년 재단 임시이사회에서 정이사를 추천해 달라고 해도) 나는 영남대와 완전히 인연을 끊었으니 딴 데 가서 물어봐라 그래야지. 재단 비리로 물러난 사람이 이사를 추천해 달란다고 그대로 추천을 하냐. 원칙을 그렇게 강조하는 사람이, 그게 박근혜의 원칙이냐"라고 비판했다. 

최 염 씨는 또 "5년 전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로 나올 때 동생 박근영이 자기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니까 자기가 100억 원을 출연할 테니 자기를 (영남대) 정이사로 뽑아달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람들 사고는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가 관계했던 것은 전부 자기들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수장학회는 영남대에 비하면 아주 쪼만한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 영남대 문제 공개 사과하면 대통령한다고 해도 뭐라고 안 하겠다"

최 염 씨는 "박근혜 후보가 '당시 내가 나이가 29살 밖에 안 돼서 경험도 없고 내가 사람을 잘 못 써서 재단이 이렇게 됐다'고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면 대통령을 한다고 나서도 뭐라고 안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박 후보가 사과를 한다 해도 박정희와 박근혜의 후손이 영남대 운영에 관계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1988년 국정감사에서 감사위원들이 '박정희와 박근혜가 대학에 기여한 게 뭐가 있냐'고 물으니, 조일문 이사장이 '문서상으로는 아무 것도 없다'고 답했다. 이런 사람들이 영남대학 운영의 주체가 되는 것을 나는 인정하지 못한다. 영남학원은 우리 할아버지가 전 재산을 기부해 설립했지만, 할아버지는 영남학원은 (우리 집안 것이 아닌) 민립대학이라고 강조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도 영남대를 찾아서 운영에 관여하겠다는 게 절대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의 높은 뜻을 절대 폄훼할 수 없다."

최 염 씨는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영남대 정상화를 위해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노력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끝자락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80세가 되니까 너무 지치는데 (내) 증언이 후세에 까지 내려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잘못된 것이 고쳐지면 좋고, 내가 죽기 전에 안 고쳐지면 내 아들 대에서는 고쳐지지 않겠냐. 나는 50년, 100년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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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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