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중수부, 선거 판에서 손 떼는 게 맞다
[대선읽기]<30>중수부, "중수부 없애자"는 문재인 직접 수사
박세열 기자  기사입력 2012-11-15 오후 6:55:05                    

 전례가 없다. 대검 중수부가 대선 판에 뛰어들었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 대한 수사다. 대검은 15일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이 문 후보를 고발한 사건과 관련해 사건을 대검 중수부 산하 저축은행 합동수사단(최운식 단장)에 배당했다. 한상대 검찰총장 '직할대'인 대검 중수부가 야권의 대선 후보를 직접 수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저축은행피해자대책위가 "문 후보는 지난 2003년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부산저축은행을 조사하던 금융감독원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법무법인 부산의 저축은행 사건 수임과 관련된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취지의 고발장을 접수한 것은 지난 13일이었다. 이틀만에 중수부가 신속하게 움직인 셈이다. 대선을 불과 34일 남겨둔 시점이다.

공교롭게도 대검 중수부가 나서기 하루 전 새누리당은 이 사안과 관련해 '문재인 후보 서민착취 진상규명위'를 구성했다. 문 후보가 대표 변호사였던 법무법인 부산의 부산저축은행 관련 수임 의혹 등도 이 '서민착취위원회'가 다루는 주요 안건이다. 김무성 총괄본부장이 전날 직접 "법무법인 부산이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저축은행 비리로 문을 닫은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70억원의 수임료를 받고 채권시효 연장 소송 일감을 따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피해자대책위가 소를 제기한 다음 날 새누리당이 공세에 나섰고, 그 다음 날 대검 중수부가 화답한 모양새다. 우연이 우연의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일까? 문재인 캠프 측은 "결국 야당 후보 흠집내기 아니겠나. 법률적으로 걱정은 안하는데, 왜 하필 중수부가 나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SBS 화면 캡쳐

만신창이 검찰, 오얏 나무 아래서 갓 끈만 매면 다행?

이번 사안의 핵심은 대검 중수부가 나섰다는 점이다. 지난 2007년 대선 때도 중수부는 움직인 적이 없었다. 2002년 대선, 1997년 대선을 앞뒀을 때도 웬만하면 대선 뒤로 수사를 미루는 게 관행처럼 이뤄졌다. 게다가 후보에 대한 직접 수사를 중수부가 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중수부의 선거 개입 논란이 불거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월에는 양경숙 전 라디오21 대표가 연루된 민주통합당 공천 비리 의혹에 대검 중수부가 나섰다가 망신만 당했던 전례가 있다. 게다가 동시에 진행됐던 새누리당 현영희 의원(현재 무소속)의 공천 헌금 수사는 부산지검에 맡겨놓고, 야권 거물급도 아닌 양경숙 전 대표의 수사는 중수부가 맡아 뒷말을 낳았다.

중수부가 나선 수사 치고 결말도 초라했다. 양 전 대표를 비롯해 몇몇 곁가지 인사들에 대한 기소만 이뤄졌다. 사실상 '사인(私人)간 사기 사건'으로 결말이 난 것이다. '거악을 척결한다'던 중수부의 체면이 사정없이 구겨진 데다, 대선을 앞두고 '오얏 나무 아래에서 갓 끈을 맨' 모양새가 돼 버렸다.

문 후보 수사와 관련해 결말은 알수 없지만, 중수부는 당시와 똑같은 논란을 정치권에 던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여야 세 후보가 검찰 개혁을 시사한 상황이라 검찰의 '실력 행사'로 비칠 여지도 없지 않다. 중수부 폐지를 내걸지도 않았던 새누리당에 대해 "검찰 문 닫으라고 하는 얘기"라며 '발끈했던 최재경 중수부장의 반응을 보면, 검찰이 '개혁'에 대한 알레르기를 얼마나 심하게 앓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대검 중수부 폐지'를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합의한 게 지난 9일이다. 6일 만에 중수부가 문재인 후보를 수사하게 됐다. 이 기막인 우연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거악 척결'의 칼을 빼들었다는 검찰의 집안 사정은 최악이다. 내곡동 사저 부실 수사의 책임이 있고, 내부적으로 '비리 검사' 수사 가로채기로 비판을 받고 있다.

내곡동 특검 수사와 관련해 검찰의 태도는 여전히 당당하다. 국회 법사위 관계자는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에 대해 결과적으로 부실 수사를 한 검찰 측에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검찰측이 '내곡동 사건은 법원 판결도 안나왔지 않느냐'고 반발해 황당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일가라서 기소하지 않았다는 '속내'를 드러내놓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검찰 고위 간부 비리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경찰이 시작한 수사를 두고 "내 식구는 내가 수사한다"는 논리로 사실상 가로챘다. 이 과정에서 "의사와 간호사 중 의사가 의학적으로 나은 것처럼 검사가 경찰보다 나으니까 수사하는 것"(김수창 특임검사)이라는 특정 직업 비하 발언까지 던져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30만 명이 소속된 대한간호사협회의 사과 요구까지 받았다.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특권만 강조하는 검찰의 의식 상태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 검찰이 대선을 한 달 조금 넘게 남기고 야권 후보 앞에서 '거악 척결'의 칼을 빼드는 모습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래저래 '역풍'을 자초할 일만 벌이고 있는 '정치 검찰'의 모습이 안쓰럽다.
 
/박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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