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11862&localCode=krcn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localCode=krcn&contentsId=GC05311791
* 비슷한 내용이 두개가 있는지라 내용을 바꾸지 않고 합쳤습니다. 둘의 내용은 "--"로 분리했습니다.


낭랑산성 (娘娘山城)


중문 : 娘娘山城
크기 둘레 3,500m    외성 둘레 2,300m     내성 둘레 2.83㎞

지역 : 요령성 안산시 수암만족자치현 양가보진 양가보촌  40°11'39.6"N123°19'36.2"E



정의


요령성(遼寧省) 안산시(鞍山市) 수암만족자치현(岫岩滿族自治縣) 양가보진(楊家堡鎭) 양가보촌(楊家堡村)에 위치한 고구려 산성.

---

요령성 수암현 양가보향 낭랑성촌에 있는 고구려 산성.



건립 경위


낭랑 산성은 고구려의 연화문 와당을 비롯하여 토기 및 철기 등이 확인되고 있어 고구려가 요동으로 진출한 5세기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청대(淸代)에 낭랑묘(娘娘墓)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낭랑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
낭랑산성의 남쪽에는 신개령하(新開岭河)가 흐르며, 산 정상에서 사방을 조감할 수 있고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군사적 요충지에 만들어졌다. 성안에는 1839년에 조성된 작은 낭랑묘(娘娘廟)가 있어 낭랑산성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위치


낭랑 산성은 요령성 수암현에서 남쪽으로 약 15㎞ 떨어진 양가보진 낭랑성촌 서쪽에 있는 해발 200m 가량의 산에 자리하고 있다. 산성의 위치는 대양하(大洋河)의 오른쪽 기슭에 해당하는데, 와룡하(臥龍河)로 불리는 작은 강이 산성 동쪽과 남쪽을 에워싸면서 서쪽으로 흘러 대양하로 유입된다.



형태


낭랑 산성은 북서쪽이 높고 가파르며 남동쪽이 낮고 완만한 키 모양을 띤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성벽은 울퉁불퉁한 산 능선을 따라 축조하였다.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되며, 내성의 전체 둘레는 약 2.83㎞이다.

---

낭랑산성의 둘레는 약 3,500m 이상으로 내외성 구조이다. 외성은 성 둘레가 약 2,300m이다. 문은 동·서·남·북 4곳에 문이 있고 동쪽 골짜기 문이 정문이며 성벽 동남쪽 모서리에 치가 3개 있다.


낭랑산성은 해성과 봉성 그리고 압록강 하구의 모든 면에서 중간 부분에 있어 이들 모두와 연계하고 이들 성을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낭랑 산성의 내성 둘레는 2.83㎞로, 산성에는 기저부 너비는 5m, 잔고는 3~5m 내외인 석축 성벽이 남아있다. 성문은 모두 5곳으로, 너비는 대략 3m 가량이다. 동문이 정문인데, 성문의 한쪽 성벽은 잔고가 8m에 이른다. 동문지 북쪽 아래에는 석축 배수구와 저수지가 확인된다. 동남 모서리에서는 3개의 치(雉)가 확인되는데, 2호 치의 경우 기저부 너비 10m, 상단부 너비 6.4m, 길이는 기저부 16m, 상단부 7m, 잔고는 4m 가량이다. 북문 동쪽 성벽의 가장 높은 곳에는 지름 6m, 잔고 5m의 장대가 남아있다.


산성 내부에서는 고구려 연화문 와당, 승문(繩文) 암키와, 토기, 철촉(鐵鏃), 도자 등이 출토되었다.


낭랑 산성은 산성의 동남쪽을 둘러싸고 반원형의 외성이 덧붙여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레는 2.3㎞이며, 성벽은 작고 낮다고 한다.

---

낭랑산성의 성벽은 산 능선을 따라 다듬어진 돌로 쌓은 석축(石築) 산성인데, 문화 대혁명 당시 많이 파괴되었으나 서쪽의 산 능선 부근 약 300m가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 높이는 대략 3∼9m, 너비는 상단부가 2.5∼3m 정도이다.


성안에는 저수지가 있고 성의 서북쪽에는 3단으로 축조한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는데 지금은 상당히 무너진 상태이다. 또 성 남쪽의 험준한 곳에 연개소문(淵蓋蘇文)의 동생 연개소영(淵蓋蘇英)의 무덤으로 전하는 대형 분묘 유적이 있는데, 만주국 때 일본인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의의와 평가


낭랑 산성은 그 규모뿐만 아니라 고구려 와당 등이 출토되고 있다는 점에서, 요령의 수암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거점성으로 판단된다.

---

낭랑산성은 규모나 지리적 위치로 보아 고구려 당시에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요동 반도 남단 일대에 있었던 고구려의 적리성(積利城)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王綿厚, 『高句麗古城硏究』(文物出版社, 2002)

王禹浪·王宏北,『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上(哈爾濱出版社, 2007)

王禹浪·王文軼, 『遼東半島地區的高句麗山城』(哈爾濱出版社, 2008)

國家文物局,『中國文物地圖集』-遼寧分冊(西安地圖出版社, 2009)

--

『삼국사기(三國史記)』

『당서』

요령성 문물 관리 위원회, 『遼寧文物古蹟大觀』요령 대학 출판사, 1994

田中俊明·東潮, 『高句麗の歷史と遺蹟』(中央公論社, 1995)




관련글

낭랑산성/낭낭산성  https://tadream.tistory.com/4309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