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하는 도중 박이 고개를 돌리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등록 : 2012.12.05 20:20수정 : 2012.12.05 23:07
대선후보 리더십 탐구 : 박근혜
‘불쌍한 근혜’서 출발, ‘선거의 여왕’으로‘보수 보루’ 자리잡아
‘원칙과 신뢰’가 간판상표, ‘박은 언행일치’ 인상, 이해관계 걸리면 흔들
‘부드러운 매너’ 몸에 뱄지만, 한번 마음떠나면 단호히 선그어
“권위에 도전하면 가차없다”, 아버지 후광 업은 카리스마
비공개 말을 전하는 건 금기,
측근도 쉽게 못다가가, 핵심에게도 전권 주지 않아
“쓴소리하는 책사는 없고 오직 말 따르는 측근만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뒤 지난 2002년에 이어 두번째 보수 단일후보다. 김종필·이회창 전 총리, 이인제 의원 같은 제2의 보수 후보는 이번엔 없다. 보수 진영에서 지닌 그의 위상은 강력하다. 그러나 박근혜 리더십에 대해서는 ‘원칙과 신뢰, 절제’라는 빛과 ‘불통과 시대착오적 권위주의’라는 그림자가 동시에 어른거린다.
■ 리더십의 기원-‘불쌍한 근혜’와 ‘선거의 여왕’
박근혜 후보는 1998년 대구 달성 보궐 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단숨에 중앙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기반은 ‘딱한 우리 근혜’라는 정서였다. 대통령 딸이지만 부모를 총탄에 잃은 삶은 동정심을 자아냈다.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2년 뒤 단숨에 당 서열 2위의 부총재가 된 것은 이런 특수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배경’으로 한 걸음에 유력 정치인 반열에 오른 박 후보는 이후 ‘실적’으로 자신의 아우라(후광)를 만들어갔다.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이 그것이다. 2004년 3월 당 대표 취임 한 달 뒤 치른 총선에서 121석을 얻어 탄핵 역풍으로 다 죽어가던 당을 살려냈다. 당명이 새겨진 현판을 들고 천막당사로 향하던 사진은 아직도 회자된다. 2006년 6월 대표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그는 각종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전승했다. 이 기간 동안 당시 여당 대표 8명이 바뀌었다. 패색이 짙던 4·11 총선에서도 승리해 ‘괴력’을 입증했다.
‘보수 본성’은 그가 지닌 또다른 힘이다. 한나라당 대표시절 노무현 정부가 4대 개혁입법으로 내건 법안을 ‘4대 악법’으로 규정해 좌절시켰다. 특히 사학법은 예산 국회까지 거부하며 장외투쟁을 벌여 3대 7 가량으로 밀리던 여론을 팽팽하게 끌어올렸다. 보수의 ‘핵심 이익’도 민생 이상으로 심혈을 기울여 지켜내는 모습을 통해 그는 ‘보수의 마지막 보루’, ‘수성(守城)의 군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 원칙과 신뢰냐, 이해에 좌우되는 무원칙이냐
박 후보의 리더십을 떠받치는 중심축은 신뢰와 원칙이다.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 ‘신뢰 외교’, ‘신뢰 자본’ 등 신뢰와 원칙은 그의 간판 상표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이미지는 아니다. 지방선거 당시 금품 수수논란에 말린 김덕룡, 박성범 전 의원 등 중진의원 퇴출, 상향식 공천 도입 등 한나라당 대표 시절 그는 ‘곧이곧대로’ 했다. 그러면서 ‘박근혜는 언행이 일치한다’는 인상을 심었다.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듯한 ‘선당후사’의 이미지도 리더십을 배가시켰다. 당 대표시절 측근인 김무성 당시 사무총장이 서류를 집어던지며 “이건 속는 거다. 절대 안 된다”고 만류했던 홍준표 당 혁신위원장의 개혁안도 받았다.
2010년 세종시법 수정안 반대 본회의 연설은 ‘원칙’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측근들은 “후보가 천만 수도권 표를 버려도 원칙은 지킨다”고 했다. 대선에서도 공약의 참신함보다 ‘실천’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자산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의 원칙이 이해관계에 좌우되고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복지확대를 주장한 그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상급식 반대’를 내세운 나경원 후보를 지원했다. 4대강, 언론관계법 등 불리한 이슈에 대해선 언급을 피하거나 절충으로 비켜갔다. 찬반양론이 갈려 정치적 부담이 있는 사안에는 자기입장을 분명하게 내세우지 않고 늘 “여야가 합의해서”, “잘 논의해서” 등 하나 마나 한 말만 반복하는 게 ‘박근혜식 답변’이 되고 있다.
‘박근혜 원칙’은 친인척이나 측근 앞에는 무뎌진다는 지적도 있다. 동생 박지만씨가 저축은행 관련 의혹에 휩싸였을 때 그는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 끝난 것 아니냐”고 일축했다. 총선 공천 때는 2007년 경선 캠프에 참여했던 김형태 후보의 성 추문 논란이 불거졌지만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당·청 분리 원칙을 주장했지만, 그가 비대위원장이 된 뒤 ‘사당화 논란’이 이어졌다.
■ 절제와 권위냐, 불통과 독단이냐?
절제와 권위는 박근혜 리더십의 또다른 요체다. 그의 말은 짧고 강하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등의 말은 한마디로 현실정치의 구도를 정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강력한 후광, 높은 대중적 인기, 독보적인 차기 대권 주자라는 위상, 특유의 절제와 엄격함 등은 ‘박근혜 카리스마’를 형성하면서 여성 정치인이지만, ‘마초’적 분위기가 강한 새누리당 의원들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세련되고 부드러운 매너가 몸에 배어있지만, 한 번 마음이 떠나면 다시 돌아보지 않는 단호한 냉정함은 공포감을 심어줬다. 한 친박 의원은 “보고를 하는 도중 박 후보가 창 밖을 보거나 고개를 돌리면,(‘마음에 안 드나보다’라는 생각에) 목소리가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라고 했다.
그의 권위와 절제를 더욱 위력적이게 하는 또 하나의 장치는 몸에 밴 보안주의다. 공개발언이 아닌 박 후보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건 금기로 여겨진다. 인사나 정책도 마지막 결정과정은 철저한 보안 속에 결정된다. 선대위 소속 의원들끼리도 저마다 하는 일은 ‘칸막이’로 나누어져 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밖에 옮겼다가 “이렇게 해서 같이 일을 하시겠느냐”는 경고 전화를 받은 측근들도 여럿이다.
보안은 박 후보에게 ‘보호막’ 구실을 하는 동시에 권위를 배가하는 구실을 한다. 자신의 정치적 속내나 의도를 철저히 가려주는 데다 여론의 흐름을 살필 시간도 확보해 준다. 흔히 지적하는 “답이 나온 뒤에 답을 말한다”는 말은 보안이란 ‘숙성’ 과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는 불통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 선대위 핵심 간부는 “안을 올려도 가타부타 말이 없다. 안을 만든 사람들조차 후보가 발표를 하고 난 뒤에야 확정된 안을 알 정도다”라고 했다. 측근들조차 “주요 현안에 관한 보스의 생각을 모르겠다”고 하는 사례가 숱하다. 정윤회 전 비서실장을 비롯해, 측근 보좌관 그룹 등 비선 개입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후보는 “팔이 아플 정도”로 전화하며 소통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친박 측근들조차 쉽게 다가갈 수 없고, 편하게 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 여전한 물음표, 용인술
“(대통령) 안돼도 걱정, 되면 더 걱정”이라는 말은 박 후보 주변과 박 후보의 인사 스타일에 관한 우려다. 선대위 핵심 인사조차 “박 후보 주변에 인물이 없다”, “괜찮은 사람은 다 떠났다”, “쓴 소리하는 책사는 없고 오직 말을 따르는 측근만 있다”고 말한다. 김종인 행복추진위원장과 이한구 정책위의장 사이의 경제민주화 논쟁 와중에는 “서로 다른 게 아니다”며 혼선을 조정하지 않았다. 박 후보는 핵심들에게도 좀체 전권을 주지 않는다. ‘경제민주화 원조’라며 삼고초려해온 김종인 위원장도 계속 반발하자 가차없이 내쳤다.
한 새누리당 핵심 인사는 “박 후보의 용인술을 해석하는 코드는 ‘역린’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후보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의문을 달며 대기업으로부터 로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순간, 그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박 후보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면 가차없다”고 말했다. 한 참모는 “박 후보에게서 받는 상처는 그와의 거리에 비례한다. 가까울수록 상처는 더 크다”고 말했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이란 혹평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배신에 대한 생래적인 거부반응도 그의 용인술을 읽는 열쇳말이다. 한 친박 의원은 “대선에 도움이 될 친이계 인사를 박 후보에게 언급했더니 단칼에 ‘됐다. 쉬시라고 하시라’고 물리치더라”고 전했다. 인재풀이 이명박 정부보다도 좁은 것 같다는 지적은 박 후보의 포용력 부족과 닿아 있다. 박 후보가 ‘보수 대통합’이라며 내세운 인물들은 이회창, 이인제, 한광옥 등 세대, 계층 통합과는 거리가 있는 지역의 옛 맹주들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면, 전혀 새로운 인사를 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박 후보는 “대탕평 인사”를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 후보의 한 참모는 “두고보라. 박 후보가 집권하는 순간 총리, 장관 등 행정부 진용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짜일 것이다. 후보가 되기까지는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나서길 꺼린 전문가나 관료들이 새롭게 등장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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