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왕의 고구려 부흥운동과 ‘영주말갈(營州靺鞨)’
임금표(Lin, Jinbiao) 고려대학교
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제72집 (2022) pp. 223-249 (27 pages)
본고는 보장왕의 부흥운동을 영주말갈과 관련하여 고찰한 것이다. 677년 보장왕은 당(唐)의 동북방 정세 변화에 따라 요동으로 귀환했고, 이후 말갈과 연계하려고 하였다. 이 무렵 돌궐은 당의 북변을 침공했고, 해와 거란을 선동하여 영주를 공격하였다. 679년에는 안동도호부의 남생이 사망하였다. 보장왕은 이러한 영주 주변의 혼란과 남생 등 견제 세력의 부재를 틈타 부흥운동을 도모한 것이다.
본고에서 말하는 ‘영주말갈’은 7세기 후반부터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친고구려적 말갈을 지칭한다. 고구려멸망 전후 속말말갈ㆍ백산말갈 등은 영주로 강제 이주됐고, 고구려 장수를 따라 항복한 말갈 세력도 영주 주변에 안치되었다. 그 안치된 지역을 살펴보면 대체로 영주에서 요동으로 나아가는 교통로에 해당했는데, 이 교통로를 따라 요동성의 보장왕과 영주말갈은 연계할 수 있었다.
영주말갈은 당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에 따라 정치적 차별을 받았으며, 당에 바치는 부세로 인해 경제적 부담도 심하였다. 보장왕은 그와 더불어 요동으로 귀환한 고구려 유민 집단 및 요동에 머물러 있던 일부 ‘유공자’와 연계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ㆍ종족ㆍ경제적 곤궁에 처해있던 영주말갈을 설득하여, 고구려 부흥을 시도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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