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joongboo.com/news/articleView.html?idxno=392279
http://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27679
당 백만대군도 떨던 전신같은 연개소문 설화이어져
역사의 숨결어린 요동 - 고구려 유적 답사기행<43>
중부일보 2010.12.13 남도일보 2012.10.31 20:20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령조선문보기자
<전략거점의 수호성 백암성③>
당나라 백만대군도 두려워했던 전신(戰神) 같은 인물
中소설 ‘수당양조지전’ 설인귀 등과 전투 사실적 묘사
적대적 인물 과장하거나 미화했을 가능성 낮아 ‘주목’
중국에 여·당(麗唐·고구려와 당나라)전쟁과 관련한 책이 더러 있다. 그중에 당나라군이 요동성을 함락한 후 백암성을 공격할 때 벌어진 싸움을 써놓은 것도 있다. 중국소설 《수당양조지전(隋唐兩朝志傳)》 (하) 제89회 “백암성 아래서 홍포와 백포가 싸우다”란 장절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장절에서 고구려 장수 연개소문이 당나라 설인귀 등 장수들과 백암성에서 싸운 장면을 리얼하게 묘사해 놓았다.
… (당)군이 출발하려는데 앞에서 한 떼의 군사가 나타났다. 군기에는 (고구려군의) 홍포(紅袍) 연개소문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세적이 좌우를 둘러보며 누가 나가 싸우겠는가고 물었다. 설인귀가 나서며 “제가 가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세적이 말했다. “그대는 선봉장이니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되오.” 그러자 이번에는 단지현(段志賢)이 나섰다. 세적은 군사 5천을 단지현에게 내어주며 나가 싸우게 했다. “비록 단지현이 나서기는 했지만 확실치가 않으니 누가 나가 접응을 하겠는고.” 세적이 좌우를 돌아보니 소정방(蘇定方)이 나선다. 세적은 소정방에게도 군사 5천을 내어주며 단지현을 접응하게 하였다.
이때 말을 타고 창을 꼬나 잡은 단지현이 군사를 몰고 앞으로 나가 요동군(고구려군을 가리킴) 마중켠에 진을 쳤다. 요동군은 개소문(연개소문)이 앞장 섰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몸에는 사슬갑옷에 붉은 전포를 입고 있었다. 허리에는 비도 다섯 자루를 질렀고, 좌우로 활과 화살을 엇매었으며, 손에는 큰 도끼를 비껴들고 불색 연지마를 타고 있었다. 지현은 이를 보고 마음이 덜컹했다. 놀라는 빛이 역력했다.
개소문이 호통 쳤다. “이 도적놈아, 멀리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감히 죽으러 왔느냐.” 지현이 이에 대답했다. “우리 당나라 황제는 인덕의 주인으로 위세와 덕망이 사해에 넘치고 만방에 이름을 떨쳤다. 너는 고려의 역적으로서 주군을 죽이고 공로를 가로챘다. 오늘 천병 백만과 수천의 장수들이 역적을 멸하러 왔거늘 어찌 감히 거들먹거리며 죽으러 왔단 말인가.” 개소문이 크게 노하여 도끼를 휘두르며 지현을 향해 달려 나왔다. 그러나 몇 합을 겨루지 않아 개소문은 지현을 말 아래 거꾸러뜨렸다. 이를 보고 소정방이 개소문을 주시하며 말을 달려 나왔다. 개소문과 20합을 싸우다 소정방은 기력이 딸리는지라 말머리를 돌려 진중으로 퇴각했다. 개소문은 도끼를 들고 바짝 뒤쫓아서 진중으로 쳐들어가는데 마치 무인지경에 이른 듯하였다. 당나라군은 대패하여 사방으로 도망쳤다. 패병이 세적에게 보고하자 세적은 태종에게 상주하였다. 태종은 대장 배행검(裵行儉)과 이사마(李思摩), 왕손악(王孫岳)에게 명하여 군사 1만을 이끌고 개소문을 맞아 싸우게 하였다.
이때, 요동군은 이미 백암성에 이르렀다. 그들은 원병으로 달려온 당나라군과 마주쳤다. 이사마가 나서자 개소문이 말을 몰고 나왔다. 두 장수가 어울려 20합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때 개소문이 패한 체하며 말머리를 돌려 진중으로 향했다. 이사마가 말을 몰아 바짝 뒤를 쫓았다. 왕손악과 배행검은 이것이 개소문의 계책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급히 외쳤다. “따라가지 마시오. 계책이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개소문이 홀연 말머리를 돌리며 이사마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살은 바로 그의 등에 꽂혔다. 이사마는 말안장 위에 쓰러졌다. 개소문이 도끼를 꼬나 잡고 이사마를 향해 달려가자 배행검과 왕손악이 맞받아 나와 이사마를 구해 진으로 달아났다. 개소문은 군사를 몰아 쳐들어가니 당군은 크게 패하여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배행검, 왕손악이 활을 맞은 사마와 함께 진중으로 돌아와 태종을 뵈니 태종이 말했다. “개소문이 영용무쌍하다는 소리는 일찍이 들어왔는데 과연 명성그대로구만.” 모두들 크게 놀랐다. 태종은 이사마의 몸에 박힌 살촉을 빼어주고 몸소 그 피를 빨아내니 장졸들은 감동받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단지현이 죽고 이사마가 활에 맞자 태종은 이세적을 불러 대책을 상의했다. 세적이 말했다. “설인귀가 아니고는 안 될 듯싶습니다.” 태종도 옳다고 여겨 설인귀를 불러들였다. 세적이 말했다. “요동군 장수 개소문이 여러 장수를 이기고 용맹을 당할 자가 없으니 그대가 한 번 나서 보게. 위지보림(尉遲寶林)이 곧 이를 것이니.” 설인귀는 두말없이 말에 올라 군사를 이끌고 나가 적진과 마주섰다. 요동군 앞장에 선 개소문은 금 투구와 금 갑옷에 붉은 전포를 입고 연지마를 타고 있었고, 설인귀는 은빛 갑옷에 흰 전포를 입고 철극을 들고 백마를 타고 있었다. 그 뒤로는 위지보림이 따랐다. 설인귀가 꾸짖었다. “군주를 죽인 역적 놈아, 소몰이나 할 놈이 어찌 일찌감치 항복하지 않는 거냐.”
개소문이 옆에 있는 흑사미(고구려장수)에게 저자가 누군가고 묻자 흑소미가 대답했다. “일찍이 백포 설인귀의 말을 들은 적 있는데 아마 그자일 것입니다.” 개소문이 크게 웃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너는 일개 무명 소졸이 아니냐. 내 이 도끼가 너희 같은 쥐새끼를 베어야 한다니 애석하구나.” 말을 마치자 도끼를 휘두르며 말을 달려 곧장 설인귀를 향하였다. 설인귀도 말에 박차를 가하며 달려 나왔다. 두 장수는 진시부터 오시까지 백여 합을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당나라군의 진중에서 군사를 불러들이는 징을 울려서야 두 장수가 갈라져 제각기 회군하였다. 설인귀는 돌아가자 이세적에게 말했다. “오늘 제가 개소문과 승부를 가리지 못하였으나 내일은 반드시 적을 사로잡겠습니다.”
한편 진중으로 돌아간 연개소문도 흑사미에게 말했다. “모두들 설인귀가 용맹하여 당할 자가 없다고 하더니 오늘에야 그 말을 믿겠네.” 흑사미가 말했다.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했으니 저자를 죽인다 해도 무명 소졸에 불과하니 언짢아 할 것 없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요. 저들의 뒤에는 천군만마가 있으니 내가 여기서 설인귀를 죽이지 못한다면 어찌 저들을 제압하리오. 내일은 기필코 그를 죽일 것이오.” 개소문의 대답이었다.
이튿날 개소문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니 설인귀도 나왔다. 개소문이 말했다. “오늘은 네 놈과 승부를 가리기 전에는 군사를 돌리지 않을 것이다.” 말을 마치자 서로 맞붙어 50여 합을 싸웠다. 개소문이 다섯 자루의 비도를 날리자 설인귀는 활을 쏘았다. 화살과 비도가 공중에서 부딪치며 땅에 떨어졌다. 두 장수는 또다시 맞붙어 싸우다가 설인귀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철극을 끌며 달아났다. 개소문이 바짝 뒤쫓았다. 이를 본 흑사미가 개소문을 뒤따랐다. 원래 패한 척 하며 달아나던 설인귀는 몰래 활시위에 살을 먹이고 있었다. 이를 본 흑사미가 “적장이 활을 쏘려 합니다” 하고 외쳤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살이 날아와 개소문의 오른팔에 꽂혔다. 흑사미가 개소문을 구해 퇴각하자 설인귀가 승세해 뒤쫓았고 그 뒤에서 위지보림이 합세해 요동군은 대패해 수십 리 밖으로 물러났다. 이때 당나라군의 진영에서 회군 징소리가 울렸다. 설인귀가 퇴각해 보니 원래 악국공(鄂國公) 위지경덕이 설인귀와 위지보림이 무슨 실수라도 할까봐 걱정되어 회군령을 내린 것이었다. 설인귀가 연유를 물으니 위지경덕이 대답했다. “내가 보니 개소문은 지용을 겸비한 자이므로 화살에 맞았다 하더라도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 몰라 회군하도록 한 것이오.”
한편 진중으로 돌아온 개소문은 화살 맞은 팔에서 피가 그칠 줄 모르고 퍼렇게 멍이 들어 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흑사미는 근심어린 얼굴로 제장을 모아놓고 상의했다. “지금 주장께서 팔을 상하여 적과 싸울 수 없게 되었고 우리도 장수를 적지 않게 잃었으니 안시성으로 회군하여 휴식하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개소문이 말했다. “당나라군이 이 성을 취하는 것은 눈앞의 일이오. 이때 내가 만약 퇴각한다면 적들은 승승장구로 쳐들어올 것이오. 그대들이 협력하여 성을 굳게 지키면서 나의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린다면 방법이 생길 것이오.” 소지호(蕭地虎)가 말했다. “승패는 병가상사라 했으므로 두려울 게 없습니다. 우리가 험준한 산세를 지키면서 저들이 싸움을 걸어도 나가지 않고 사람을 파견해 소로로 부상국(扶桑國)에 가 화친을 허락하고 원병을 구한다면 부상국은 필히 적들의 배후를 칠 것이니 그때 우리가 정면에서 공격한다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개소문은 이 계책에 따르기로 하고 부상국으로 사람을 파견하기로 했다. …
위에 서술한 것은 소설이어서 역사사실이 완전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소설은 꾸며낼 수도 있으므로 사실이 아닐 수 있는 만큼 어떤 특정적인 사실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 특히 역사소설은 대체적으로 역사사실에 근거해 추리, 허구, 과장 등 문학적 수법으로 다루기 때문에 다소 보태거나 과장할 수는 있지만 사실을 완전히 뒤바꾸지는 못하리라 생각된다. 하물며 소설의 저자가 자국의 지난시대의 적대적 인물을 과장하거나 미화(美化)하는 일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위 소설에서 서술한 것을 본다면 지혜가 풍부하고 계략이 많으며 천군만마를 호령할 수 있는 기백과 재능을 지닌 연개소문이 용맹과 무예도 뛰어나 대적할 자가 거의 없는, 강한 적들마저 우러러보고 두려워하는 전신(戰神)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 사실은, 그때 요동성에 이어 백암성이 함락되자 고구려는 매우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 연개소문이 고구려군사들을 지휘하여 신성(무순 고이산성)과 건안성(개주 고려성산성), 안시성(해성 영성자산성) 등 중요한 전략거점을 굳건히 지켜내 정세를 역전시켰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