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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산성

고구려는 산성의 나라라고 지칭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성들이 존재한다. 고구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어느새 1,300년이 지났지만, 상당수의 성들은 여전히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고구려의 성곽은 돌무지무덤(적석총)과 돌방무덤(석실분)으로 대표되는 고구려 고분과 돌방무덤에서 확인되는 화려한 고분벽화와 함께 오늘날 남아있는 귀중한 문화유산 중의 하나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구려 성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되고 있지는 않지만 200기가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대략 170여기가 확인되고 있는데, 성곽 전체의 둘레의 길이가 1km가 넘는 중형급 이상의 산성이 많다. 이들 상성은 고구려 당시의 변경 지역과 하천을 따라 도성으로 향하는 주요 통로의 길목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북한지역의 경우에는 제대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대력 40여기 정도가 알려져 있다. 남한지역은 40여기가 확인되었는데, 대부분 둘레가 200m 미만으로 규모가 작은 성곽(보루)이 대부분이다. 이들 성은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따라 축조된 것으로, 주로 임진강 일대, 양주분지 일대, 한강일대, 금강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한편, 돌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쌓는 고구려의 발달된 축성기술은 백제와 신라를 포함한 삼국시대 이후의 석성들에 영향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성곽은 입지에 따라 평지성과 산성 그러고 평지성과 산성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평산성으로 나뉘는데, 평지성은 중국 집안의 군내성이, 평산성은 북한 평양의 장안성(평양성)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편, 대부분의 고구려 성은 산성에 해당되는데, 이는 고구려 산성이 방어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지방통치의 단위로서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곽은 축조 재료에 따라 보통토성, 석성, 토석혼축성, 목책성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축성 재료는 성이 위치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나 성벽의 입지조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고구려 성에서는 하나의 성곽 내에서도 구간에 따라 축성재료와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토성의 경우에는 성문과 같이 적의 공격이 집중되어지는 구간에는 흙을 층층이 다져 쌓아 올리는 판축법을 이용하여 매우 견고한 성벽을 축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환도산성의 남문지


복원된 대성산성 성벽
 
고구려 산성의 대부분은 석축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입지조건에 따라 산비탈을 깎아 석축을 하고 안쪽은 흙이나 돌로 채워 넣는 내탁식(단면축조법)이나 내외의 성벽을 모두 돌로 쌓는 협축식(양면축조법)으로 구분된다. 성벽은 바닥을 파거나 정지하는 방식으로 기초공사를 하여 성돌을 쌓아 올리는데, 고구려 성곽은 성벽의 기초부분에 성돌의 쌓을 때 한 단마다 약간씩 안으로 들여쌓는(물려쌓는)방식을 채택하여, 성벽이 높이 올라가더라도 무거운 하중을 무리없이 받칠 수 있게 하였다. 또 고구려의 석축 성벽의 겉면은 잘 다듬어진 쐐기형 형태의 성돌을 이용하여 가지런히 쌓는데, 안쪽에는 길쭉한 형태의 마름모 형태의 성돌을 바깥쪽의 쐐기형 성돌과 맞물리게 쌓아 견고하게 하였다. 

 

장대(산성자산성)                                                      득리사산성의 서벽과 옹성문

이 밖에도 고구려 성곽에는 성문, 성문보호를 위한 옹성 시설, 다각적 방어가 가능한 치, 몸을 숨길 수 있는 성가퀴, 배수를 위한 수구 및 배수로, 저수시설, 지휘소의 일종인 장대 등과 같은 다양한 시설이 있고, 성의 내부에는 각종 건물이 위치한다. 평지성의 경우에는 여기에 방어용 해자 등이 더해진다. 
 
또한 산성은 전통적으로 지세에 따라 고로봉형(栲栳峰式)․산봉형(䔉峰形)․사모봉형(紗帽峰形)․마안봉형(馬鞍峰形) 등으로 분류된다. 고로봉형은 4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막히고 가운데가 우묵히 들어간 지형이며, 산봉식은 산 정상부가 넓고 평탄하며 사방은 절벽으로 된 지형이다. 사모봉식은 뒤에 산봉우리가 있어 그 곳에 장대를 둘 수 있고, 마안봉식은 양 끝이 높고 가운데가 낮아진 형태의 지형이다. 이러한 여러 형태의 산성 가운데 압록강 상․중류 일대에는 산봉형과 유사한 산정식산성(山頂式山城)과 고로봉형과 유사한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고구려산성들은 대체로 고로봉형의 지형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봉형 지형에 쌓은 산성은 환인의 오녀산성과 궁원에 있는 평저산성 등이 있을 뿐이라고 하여 고로봉형의 입지조건이 고구려 산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오녀산성 동문지 
 
고구려의 산정식산성은 일반적으로 산정상 아래쪽의 낭떠러지나 산마루를 둘러싸고 있는 절벽을 자연성벽으로 삼고, 인공성벽을 부분적으로 축조하였다. 오녀산성(五女山城)의 경우 서․남․북은 낭떠러지와 절벽을 자연성벽으로 삼고 지세가 험준하지 않은 동쪽과 동남쪽에만 인공성벽을 축조하였다. 흑구산성(黑溝山城)도 수십 미터 높이로 우뚝 솟은 절벽 8개를 자연성벽으로 삼고 그 사이의 트인 곳이나 골짜기 입구, 지세가 낮은 산등성이 등에 인공성벽을 축성하였다. 이러한 산정식산성은 험준한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성을 축조하던 고구려인의 지혜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산정식산성은 산성의 기본적인 입지조건인 수원(水源) 확보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에 산정식산성에는 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우물이나 비교적 큰 저수지를 설치하였고, 오녀산성의 경우 서벽 부근에 장방형 저수지와 작은 우물이 있었으며, 흑구산성에도 동벽 부근에 두 개의 우물을 설치했다고 한다. 
 

오녀산성평면도(《博物館硏究》,1992-1,65쪽)
 
고로봉식산성에 비유되는 포곡식산성은 산골짜기 또는 산기슭의 완만한 경사지를 감싸면서 산마루나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조하였다. 세 방향은 대체로 높고 한 방향은 낮아 전체적으로 키 모양을 이루는 경우가 많으며, 대체로 성벽 바깥면은 급경사이거나 절벽인 반면, 안쪽면에서는 경사가 완만하고 비교적 넓은 산기슭이나 분지가 펼쳐진다. 또한 산정식산성처럼 자연지형을 적절히 이용하여 낭떠러지나 절벽을 자연성벽으로 삼기도 하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인공성벽의 비중이 높다. 
 

산성자 산성의 위치(위성사진)
 
대표적인 포곡식산성으로는 집안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을 비롯하여 패왕조산성(覇王朝山城), 고검지산성(高儉地山城) 등이 있다. 산성자산성의 경우, 서․북․동 삼면은 산등성이로 둘러싸여 있고, 남동쪽만 통구하(通溝河) 쪽으로 트여 있는데, 바깥쪽 경사면은 가파른 자연절벽인 반면 안쪽에는 완만한 경사지와 평지가 비교적 넓게 펼쳐져 있다. 패왕조산성도 북쪽이 높고 계곡 입구인 남쪽이 낮아 키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북․동․서면의 산등성이가 계곡을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고검지산성도 동․서․북 삼면은 산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남쪽은 탁 트인 완만하게 경사진 산비탈로서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은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산성자산성은 사면에 거의 전부 인공성벽을 축조하였지만, 패왕조산성이나 고검지산성은 낭떠러지와 절벽을 자연성벽으로 삼기도 하였다. 
 

고검지산성의 동벽
 
포곡식산성은 계곡이나 완만한 경사지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산정식산성 보다 규모가 크며, 수원(水源)을 확보하기에도 유리하다. 산성자산성은 전체 둘레가 6,951m나 되며, 패왕조산성이나 고검지산성도 전체 둘레가 1.5km에 이른다. 이들 성 내부에는 작은 계곡이나 샘이 있어 수원도 비교적 풍부하다. 이러한 포곡식산성은 가장 낮은 입구 쪽이 평지와 잇닿아 있어 군사방어상으로 불리한 측면도 있지만, 이를 통해 평지 쪽과 쉽게 왕래할 수 있어 보급품 조달 등에 유리한 장점도 있다. 따라서 포곡식산성 가운데는 군사방어뿐 아니라 일상적인 거주 또는 행정 중심지로 기능한 경우도 많다. 그밖에 환인 성장립자산성(桓仁 城墻砬子山城), 환인 와방구산성(桓仁 瓦房溝山城), 통화 태평구문고성(通化 太平溝門古城) 등도 포곡식산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비교적 소규모인 것으로 보아 주로 군사방어상의 기능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 산성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요 교통로에 축조된 것들이 많은데, 이는 고구려의 전투방식 및 지배양상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적들이 고구려의 산성을 공격하지 않고 진군할 수는 있으나, 군대 후미의 보급이 차단될 우려가 있어서 산성을 점령하지 않고는 지나갈 수가 없었다. 또한 산성은 특성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적의 동태 파악이 용이하고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방어하기 쉽고, 또한 대형 산성의 경우 계곡을 끼고 있기 때문에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이 오랜 기간 동안 머무를 수 있어, 적은 병력으로도 많은 적을 상대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방어체계는 6세기 후반~7세기 전반 네 차례에 걸친 수나라 대군을 격퇴할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백암성의 서남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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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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