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19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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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기사라 현재와 좀 차이가 있을 겁니다.

[민족의 혼,고구려는 지금 ⑺] 중원 고구려비…비문훼손 ‘역사’가 사라진다
국민일보 | 기사입력 2005-02-22 17:28 | 최종수정 2005-02-22 17:28

고구려는 기원전 37년부터 700여년간 한반도와 만주지역에 걸친 대제국을 일으켰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고구려비는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현의 광개토대왕비와 국내 충북 충주시 중원고구려비 뿐이다. 광개토대왕비가 대륙 북쪽으로 확대된 고구려 영토와 당시 삼국 정세를 보여준다면 중원고구려비는 고구려가 한반도 남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백제를 경계하고 신라를 포섭했던 대외관계를 담고 있다.


이런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중원고구려비에 대한 연구는 1979년 발견 당시 전체 400자 중 200여자를 판독해 낸 이후 거의 제자리걸음 상태다. 26년 동안 추가 판독된 글자는 10여자에 불과하고 비를 세운 목적과 시기 등에 대한 학계 의문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반면 국보 지정 후에도 수십차례 이뤄진 무허가 탁본으로 비문 훼손이 심화돼 판독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비석에 대한 보다 철저한 관리와 체계적인 추가 학술조사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중원고구려비가 간직한 고구려사는 빛을 보지 못한채 고사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 미흡한 연구조사

중원고구려비는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고구려 비석으로 450년 장수왕 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 203㎝,너비 55㎝의 석비로서 단국대학술조사단이 1979년 처음 조사했다.

문화재당국은 광개토대왕비에 이어 당시 고구려의 대외관계를 보여주는 유적이라는 위상을 고려해 1981년 국보 제205호로 지정했다. 하지만 국보지정을 위해 학술조사를 토대로 간단한 현지 조사를 한 이후 제대로 예산을 투입한 조사를 단 1차례도 실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원고구려비에 대한 학술 연구는 발견 당시 단국대조사단 탁본과 연구 발표에 의존해 이뤄져 새로운 논문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발견 20여년만에 처음 이뤄진 2000년 학술조사도 당국이 아닌 민간 학술모임이 추진했다. 고구려연구학자 모임인 고구려연구회(당시 회장 서길수)가 자체 비용으로 문화재청에 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던 것이다. 연구회는 당시 과학적 분석을 위해 처음으로 적외선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기존 탁본 수집분과 함께 컴퓨터 영상을 제작했다. 연구회는 사학,고고학,한문학자 등 55명을 동원해 석문 작업을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11자를 새로 읽어냈고 논란이 되는 글자 6자를 확정지었다. 또 글씨가 거의 없던 2개 면에서도 글자를 확인해 중원비가 4면비라는 결론을 내렸다. 같은 해 11월 열린 학술대회에서는 비 건립의 시기와 목적에 대한 새로운 논문 15편이 발표됐다.

최근 찾아간 중원고구려비는 누각 아래 속에 보존돼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누각 앞에 설치된 비석 안내문과 비문 해설문은 첫 조사 이후 추가된 내용이 거의 없었다. 정부당국이 비각 관리에만 신경쓸 뿐 정작 비석의 존재 가치를 규명하는데는 소홀해 중원비가 사장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에대해 충북시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설명문에는 학계에서 인정된 부분만 기록하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로 올리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 무허가 탁본으로 훼손 가속

발견 당시 중원고구려비는 4면으로 이뤄져있었지만 2개 면에는 거의 글자가 남아있지 않았다. 글자가 있던 2개 면도 훼손이 심해 어느 면이 첫번째 면인지조차 확정할 수 없는 상태였다.

비는 발견 당시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 회관 앞에 입석으로 세워져 있었다. 비석 한 면이 동쪽으로 향하도록 세워져 있어 서북향 계곡을 타고 1000년 넘게 불어온 비바람에 2개면이 마모됐다고 단국대조사단은 추정했다. 또 비석은 한때 대장간에서 벽과 기둥 역할을 했다고 당시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대장간 안쪽의 2개 면은 삽과 호미를 손질하면서 이 석비를 두드려 날을 벼른 탓에 훼손 정도가 심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국보 지정 이후에도 중원비는 무허가 탁본으로 남아있던 글자마저 점점 닳아가고 있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누각에 채워진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 마구 탁본을 했고 그 과정에서 비문은 과거보다 더 빠른 속도로 훼손됐다고 학계는 지적했다. 탁본지에 묻은 풀기가 글자에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 탁본 원리이기 때문에 탁본 후 풀기를 솔로 깨끗이 닦아내지 않으면 곰팡이가 슬고 글씨가 닳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숱한 사람들이 문화재위원회 정식 허가없이 마구잡이로 탁본을 한 뒤 풀기와 먹기를 석비에 그대로 남기면서 시커먼 곰팡이가 군데군데 피어있어 지금은 육안으로 비문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곰팡이를 제거하려면 글씨 마모를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학계는 2000년 고구려연구회의 조사에 이어 또다른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고구려연구회측은 “중원고구려비 마모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일반 학술모임에서 비석을 연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체계적 지원을 해 첨단기술 등을 통한 재조명을 서둘러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화재 당국은 아직 특별한 계획이 없는 상태다. 

충주=강주화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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