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344184.html

일본서 역수입되는 백제·고구려어
이재운의 우리말 탄생과 진화  
등록 : 2009.03.15 16:25수정 : 2009.03.15 16:25

모든 언어가 대개 그러하듯이 우리말도 홀로 고고하게 발전해 오지는 않았다. 정치적으로 단일민족을 주장한 적이 있지만 결코 사실일 수 없듯이 우리말만이 지상 최고의 언어요, 가장 과학적이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따금 한글을 지나치게 숭상하는 이들 중에서는 우리말을 세종 이도가 만든 것처럼 종종 사실 관계를 오해하는데, 이도는 표기법만 만든 인물이고 우리말은 수천 년간 한겨레가 쓰면서 다듬은 것이다. 이도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의 부모들이 쓰던 말이 곧 우리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은 완성된 말이요, 완전무결하다는 맹신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다듬고, 새 어휘를 만들거나 들여다 고쳐 써야 한다. 그러자면 이웃 나라들과 교류하고 소통해야 하는데, 여기에 민족주의가 끼어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우리나라가 교류하는 상대국이란 미국, 일본, 중국 세 나라가 대표적인데, 중국은 사대주의라 하여 안 되고, 일본은 친일이라 하여 안 되고, 요즘은 미국마저 친미라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에는 여진어·몽골어·거란어 등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때는 오랑캐라고 깔봐서 못하고, 오늘날에는 교류가 없어 역시 무시되고 있다.

몇몇 연구를 보면 고대 한국어는 신라어·가야어·백제어·고구려어 네 가지인데, 학자들은 이 중에서 가야어-백제어-고구려어 차례로 일본에 전파됐다고 본다. 나라가 망할 때마다 그 유민들이 열도로 집단 이주하면서 일본인과 일본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또 한반도에 남은 한국어는 신라어뿐이어서 일본어 속으로 스며든 가야어·백제어·고구려어의 원형을 찾아내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런 중에도 천년이 지난 뒤 고구려어 몇 개가 돌아와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옛 우리말이 많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서 요지라고 부르는 ‘양지’나 된장을 가리키는 ‘미소’가 그렇고, 또 백제어이자 고구려어인 ‘밀’(密=3), ‘우츠’(于次=5), ‘나는’(難隱=7), ‘덕’(德=10)이 멀쩡히 살아 있다가 돌아왔다. 고구려어의 미에(水), 나(國), 탄(谷)과 나머르(鉛)는 각각 고대 일본어의 미두, 나, 타니와 나마리라고 한다. 백제어의 고마(熊)와 키(城)는 고대 일본어의 쿠마와 키이며, 고대 한국어의 셤은 일본어 시마, 낟(鎌)은 나타, 밭은 파타, 바닿은 와타로 살아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에서는 우리말 멍텅구리를 ‘봉구라’라고 하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회골(위구르), 꾸러기 등을 보면 ‘굴’이 얼굴을 뜻하는 우리 옛말이라는 실마리가 잡힌다.

일본어는 이제 친일이니 극일이니 하는 개념으로 볼 게 아니라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간 동포들을 되찾아오던 마음으로, 일제에 징용되어 나가 살던 사할린 동포들을 모셔온 것처럼 정성 들여 하나하나 확인해 돌아오게 해야 한다. 천년이 더 지난 만큼 옛 모습이 온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말이니 찾아오기는 해야 한다. 이처럼 일제 때 압록강·두만강을 건넌 동포들을 따라 중국이나 러시아로 멀리 가버린 평안도·함경도의 조선 후기어를 찾는 일도 중요하다. 이와 함께 고구려어와 거의 비슷했을 여진어를 복원시켜야 할 간절한 소임이 우리나라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옛 조선의 백성이요, 고구려와 부여의 백성이었으니 여진어 속에 우리 고대어의 흔적이 적잖이 남아 있을 것이다. 말을 찾는 것은 우리 혼을 찾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재운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대표 저자·소설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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