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무죄, 시민단체 유죄? 경찰의 ‘안습’
선거법 위반을 선거법 위반이라 말하지 못하는 경찰
이철재 에코큐레이터/환경운동연합 정책위원입력 2013-04-19 08:32:50 l 수정 2013-04-19 09:09:38 기자 SNS http://www.facebook.com/newsvop

19대 총선을 20여 일 앞둔 지난 해 3월 21일, 4대강 범대위 등은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4대강 찬동후보 낙선운동 선포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낙선운동 대상 31명의 명단이 적힌 손팻말을 게시할 예정이었으나, 한 무리의 선관위 관계자들이 나타나 특정 후보를 직접 게시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며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선관위는 앞선 2010년 지방선거 등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특정 정책과 특정 후보를 거론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 했었지만, 기자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기자회견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었다. 이는 내가 환경운동연합 상근 활동가로서 2008년 총선과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반도 대운하 및 4대강 반대 활동을 벌였던 시기 선관위 관계자들에게 직접 확인한 내용이다. 선관위가 기자회견 내용을 두고 선거법 위반이라 운운하는 것은 작년이 처음이었다. 

4대강 반대 선거법 위반 논란
지난해 3월 21일 4대강 찬동후보 낙선 대상 발표 기자회견 모습. 선관위가 특정 후보 게시가 선거법 위반이라고 발표해 이름을 가린 채 '심판하자'만 들고 있다.ⓒ이철제 제공

기자회견에서 4대강 사업 반대해도 선거법 위반이라더니

어제(18일)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경찰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김 모(29‧여)씨 등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 ‘국정원 직원들이 정치에는 관여했지만, 대선 개입이나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에서 특정 후보를 지칭하는 것은 선거법 위반이라더니, 황당하게도 일반 시민이 아닌 국가 공무원이 대선 기간 동안 4대강 사업 등 특정 정책을 홍보하고, 특정 후보(당시 이정희 후보)에 대한 비난성 글을 올리는 등의 정치관련 활동은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 김 씨 등은 지난 해 8월부터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대선과 관련된 게시 글에 99회에 걸쳐 ‘찬반 표시’를 하고 게시물 120여건을 올렸다고 한다. 경찰은 이러한 행위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선거운동으로 보긴 어렵다’면서 ‘국가정보원법 위반(정치 관여)’으로만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 상식에 비춰볼 때 쉽게 수긍되지 않는다. 

국정원 직원이 대선 기간 동안 MB 정권이 강행한 4대강 사업 등을 홍보한 것은 공직선거법 제86조 (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금지)의 ‘소속직원 또는 선거구민에게 교육 기타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업적을 홍보하는 행위’ 규정을 어긴 것에 해당될 수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동법 255조 (부정선거운동죄)에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정치에 개입하는 행위 자체는 제9조(공무원의 중립의무 등)의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와 제87조 (단체의 선거개입금지)를 위반한 것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서울 수서경찰서
이광석 서울 수서경찰서장(자료사진)ⓒ뉴시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수원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4대강 반대를 손팻말로 홍보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앞서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도 선거법 위반이라 규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립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국가공무원의 정치 개입을 두고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경찰이 스스로 비난을 자초하는 상황이다. 

불법적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해 온 국정원 못지 않게 ‘호부호형’을 못하는, 아니 선거법 위반을 선거법 위반이라 말하지 못하는 경찰도 국민의 지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어제 이광석 서울 수서경찰서장의 ‘국정원 직원이 정치는 개입했지만,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라는 수사 결과 발표를 보면서 ‘경찰 제복을 입었지만, 경찰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나만 든 것은 아닐 듯하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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