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afe.daum.net/jejuair040211/5BvA/4?docid=vscn5BvA420050201112501


고구려사람들의 손님맞이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輯安] 루산[如山]의 남쪽에는 5세기 후반의 것으로 알려진 고구려 고분이 한 기 있다. 이 고분에는 각각의 벽면에 당시 고구려인의 삶과 세계관을 볼 수 있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28~29쪽 그림 참조) 특히 오늘날도 최신의 패션에 속할 것 같은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옷을 입은 14명의 남녀가 대열을 짓고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려진 벽화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던 고구려인들의 실제 모습을 짐작케 한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이 고분을 ‘무용총(舞踊塚)’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 고분에는 동벽에 이 무용도가 그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북벽에는 접빈도, 서벽에는 수렵도가 그려져 있다. 그야말로 무덤 주인공이 손님을 맞이하면서 음악과 무용, 그리고 수렵을 즐긴 모습을 무덤 안의 벽화에도 남겼다. 특히 북벽의 접빈 장면에는 당시 고구려의 귀족들이 음식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를 상세히 알려주는 정보가 가득하다.
   
접빈도 벽화에는 여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상을 두고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주인이고 맞은 편에 앉은 두 사람이 손님이다. 두 사람의 손님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서 승려이거나 도교의 도사(道士)일 가능성이 많다. 나머지 세 사람은 하인으로 보인다. 두 하인은 주인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데 비해 가운데 무릎을 꿇은 하인은 음식을 접대하고 있다. 특히 그 크기를 주인과 손님에 비해 작게 그려 그가 음식 시중을 드는 하인임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주인과 손님 사이에는 음식상이 각각 3개씩 모두 6개가 있다. 주인 앞에 놓인 음식상에는 그릇이 모두 5개이다. 주인 가까이 있는 그릇 하나는 다른 것에 비해 크다. 분명히 밥을 담았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인의 주식은 쌀밥이 아니라 차좁쌀을 시루에 찐 차좁쌀 밥이었다. 혹은 기장쌀로 밥을 짓기도 하고 마[土著〕를 갈아서 좁쌀가루와 섞어 죽을 만들어 주식으로 먹기도 했다.

   
고구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 음식, 멧돼지 구이
   
그런데 주인의 밥상 앞에서 하인은 칼을 들고 시중을 들고 있다. 아마도 고기로 만든 음식이 주인의 상에 차려진 모양이다. 여름에 잡은 멧돼지를 통째로 간장에 절여 항아리에 넣어둔 것을 꺼내서 여기에 마늘과 아욱으로 양념을 한 후 그것을 숯불에 놓고 굽는다. 이 요리는 당시 고구려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다. 간이 깊게 배어 있고 구워낸 맛이 고소해서 이웃 중국에도 소문이 났다. 중국의 기록에는 이 고기음식을 ‘맥적(貊炙)’이라 적었다. 즉 맥족이 먹는 고기구이란 뜻이다. 오늘날의 너비아니와 비슷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음식은 너무 오랫동안 구워도 안 되고 덜 구워도 맛이 없다. 집에서 기른 돼지나 사냥을 해서 잡은 멧돼지를 잡아 항아리에 넣어 간장에 절인 이 육장(肉醬)을 손님이 오면 꺼내서 구워냈다. 특히 고구려인들은 노루·소·개 따위의 고기도 좋아했지만 돼지고기를 더욱 즐겨 먹었다. 당시 제천행사에서 조상신령에게 바쳐지는 제물 중 통돼지는 으뜸에 들었다. 
   
고구려의 맥적이 맛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간장 맛 때문이다. 대두(大豆)의 원산지가 바로 고구려 땅이기 때문에 가을에 콩을 삶아서 메주를 만드는 일은 당시에도 매우 흔한 일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둥근 공 모양으로 만든 메주를 방안의 화덕 가까이 두고 그 위에 차좁쌀 짚을 덮어두면 금세 메주 주위에 곰팡이가 붙었다. 봄이 되면 지금의 원산 근처에 있었던 옥저에서 구입해온 소금으로 메주를 띄워서 간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간장은 사냥을 가서 잡아온 노루나 멧돼지의 살코기를 절이는 데 쓰였다. 아마도 이 맥적이 시중 드는 하인 쪽 그릇에 담겨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만약 손님이 승려나 도사일 경우 이 맥적이 그들의 상에 놓였을 리가 없다. 그 대신에 아욱을 간장에 절인 장아찌가 놓이지 않았을까?
   
밥상 위에는 두 개의 다른 상이 놓여 있다. 발이 세 개 달린 상에는 입이 좁은 병이 놓였다. 아마도 중국에서 수입한 칠기로 된 목기 술병이 아니었을까? 고구려인들은 평소에 차좁쌀로 밥을 지어먹기도 했지만, 술을 만드는 데도 차좁쌀은 좋은 재료가 되었다. 먼저 차좁쌀을 디딜방아에서 곱게 빻아 가루를 낸다. 이 가루를 미지근한 물에 반죽을 한 후 시루에 앉혀서 떡이 되게 찐다. 이렇게 삶아 낸 차좁쌀 떡을 식힌 후 손으로 다시 반죽을 한다. 충분히 다진 후 그 위에 말린 메주에서 떼어낸 가루를 넣고 물을 간간이 부어가며 손으로 반죽을 하며 이리저리 잘 섞는다. 이것을 항아리에 넣고 우물에서 떠온 깨끗한 물을 부어 뚜껑을 꼭 덮고 화로 옆에 한 달쯤 두면 술독 맨 위로 맑은 청주가 떠오른다. 이웃 중국의 기록에는 이 술을 곡아주(曲阿酒)라 부르면서 고구려 술이라 적고 있다. 술병의 왼쪽에 놓인 상에는 오늘날의 고임음식과 닮은 것이 놓였다. 아마도 강정·산자·밤 따위를 고임한 곡아주의 안주가 아닐까 여겨진다. 일본의 고대 기록에는 이런 고임음식을 고구려병(高句麗餠)이라 불렀다고 적혀 있다. 

   
입식 생활하던 고구려인, 좌식생활 하던 중국 한족
   
사실 이 그림을 통해 고구려 음식을 완벽하게 복원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고구려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밥을 먹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먼저 그림에 보이는 식기는 옻칠을 한 칠기이다. 옻나무가 고구려 지역에서 나지 않기 때문에 이 칠기는 중국 남부로부터 수입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와 비슷한 시기로 알려진 평양 일대에서 오늘날 중국의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에서 생산되었다는 표시가 있는 칠기가 발굴되기도 했다. 또 그들은 오늘날 우리와 달리 의자에 앉아서 굽이 높은 사각 반상에 음식을 차려서 먹었다. 아울러 음식상도 한 사람마다 한 상이 차려졌다. 
   
오늘날 한국인은 좌식생활을 한다. 식사를 할 때도 교자상이나 소반에 음식을 차려서 쪼그리고 앉아 밥을 먹는다. 이에 비해 오늘날 중국의 한족은 입식생활을 한다. 사각이나 원형의 식탁에 의자를 놓고 식사를 한다. 하지만 고구려인들이 역사의 주무대를 차지하고 있을 때만해도 한족은 좌식생활을 했다. 그들은 도마[俎]에 음식을 차려놓고 쪼그리고 앉아 식사를 했다. 그래서 고구려 식으로 발이 높은 밥상을 그들은 ‘맥반((貊槃)’이라 불렀고, 의자를 오랑캐의 것이라 하여 호상(胡床)이라 불렀다. 그런데 당나라 이후 한족은 오랑캐의 풍속이라 비웃던 것을 수용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는 고려시대 이후 온돌이 퍼지면서 입식생활이 사라지고 좌식생활을 주로 하게 되었다. 그러다 최근 서구의 영향으로 다시 입식으로 식사를 하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글의 원출처인 "壁畵를 통해서 본 高句麗의 飮食風俗(국제학술대회 3일 A)-주영하-" (http://www.palhae.org/zb4/view.php?id=pds2&no=158)와 "입식 생활하던 고구려인, 좌식생활 하던 중국 한족 -제일 제당 생활 속의 이야기1-2월호" (http://cafe344.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WNG3&fldid=KI5A&contentval=00012zzzzzzzzzzzzzzzzzzzzzzzzz )에서 발췌한 글인 듯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