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naver.com/spiritcorea/130047172987
"하나도 모르고 쓰는 역사 이야기<98>후고려기(後高麗記)(11)"에서 상경 내용을 가져오고 제목은 내용에서 따 왔습니다.


흠무왕이 수도를 옮긴 것은 천보 말년

[天寶末, 徙上京. 訖玄宗之世, 凡二十九朝唐.]
천보 말년에 수도를 상경(上京)으로 옮겼다. 현종이 다스리는 동안 모두 스물 아홉 번을 당에 조공하였다.
《발해고》 군고(君考), 문왕
 
흠무왕이 수도를 옮긴 것은 천보 말년ㅡ대략 대흥 19년 을미(755년)쯤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흔히 '상경용천부'로 기억하는 상경은 이후 대흥 48년(785)에 잠시 동경으로 옮겼던 것을 빼고는 인선왕 때에 이르러 발해가 거란에게 공격당해 파괴되기까지, 발해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간 동안 수도로서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지금의 중국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동경성진)에 상경의 옛 터가 있다. 주위로 수백 리 되는 널찍한 분지 한복판에다 고려식의 도성을 만들고, 주위에는 왕릉급 고분군과 대목단둔성 같은 방어성을 두었다. 기분나쁘게도 이곳이 상경 옛 터라고 밝혀낸 것은 일본 학자들이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 도리야마 기이치, 사이토 진베이 같은 학자들이 이곳을 답사했고, 일본이 만주 지역을 점령해 만주국을 세우고서 한창 대륙침략에 열을 올리던 1933년과 1934년에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1940년과 1942년에 도리야마 기이치가 상경의 절터를 발굴하면서 이곳이 옛 상경 터임이 명확해졌다.
 
고려 때에는 이곳이 다소 미개발지역으로 남아있었던 듯 싶지만, 상경은 발해가 수도로 삼았던 다른 지역들에 비해서 훨씬 수도로서의 입지조건을 유리하게 갖춘 곳이었다. 특히 이곳에는 사방이 탁 트여있는 넓은 평지가 있었고, 중경 못지 않게 질 좋은 곡식이 많이 나오는 곳이었다. 상경 지역은 비교적 추운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논밭 수온이 벼의 성장에 알맞단다. 벼농사도 잘되고 벼의 질도 좋고. 만주국 시대에도 황제 부의가 여기서 쌀을 가져다 먹었다던가? 오늘날까지도 만주 지역에서 이곳 쌀은 좋은 품종으로 표창까지 받을 정도의 고품질을 자랑한다.
 
연변 지역 동포들의 구전에 보면, 상경을 수도로 삼게 된 데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옥루하(목단강) 안변에 김씨성을 가진 유명한 풍수가 살고 있었다. 어느 하루 풍수가 아침 노을을 바라보면서 천기를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번개불처럼 눈부신 빛이 번쩍하고 비치더니 맑은 하늘에서 꽝하고 우뢰소리가 들려왔다.
"웬일일까?"
풍수는 하도 이상스러워 지붕에 올라가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살펴보았다. 저 멀리 쑥대우거진 벌판에 실안개가 일고 그 우에 자기가 떠돌고 있었다.
"야! 저렇게 좋은 명당이 코 앞에 있는 줄을 몰랐댔구나."
풍수는 자신을 책망하면서 지붕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던 풍수가 해질녘부터 갑자기 사지를 못쓰고 자리에 눕더니 밤중 해시경이 되면서부터 신음소리 한마디 못하고 저승으로 가게 되였다. 아들과 며느리는 아버지 앞에 꿇어앉아 대성통곡 하면서 재삼 물어 보았다.
"아버지 이렇게 갑자기 떠나시면 우리는 아버지를 어데다 모셔야 합니까? 미리 보아두신 혈이 있으면 어서 말씀하시고 눈을 감으시오."
풍수는 기진맥진한 입속말로 말했다.
"저 쑥대 우거진 벌판 한복판에 나를 묻어다오. 그러면 너의 후손들은 화를 면하고 복할 것이다."
아들 내외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쑥밭 한복판에 아버지를 모셨다. 다음해 단오날 아들 내외는 첫아들을 보았는데, 갓난애의 몸에는 령기가 차넘치고 눈부신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과연 아버지의 말씀이 틀림없구나."
두 내외는 기뻐서 어쩔 바를 몰라했다.
<중국조선족구전설화> p322~323, '상경용천부' 中
 
하지만 누가 그랬었지 좋은 일엔 항상 액이 낀다고.
 
그런데 바로 이날 이때 당나라 서울 장안에 있던 감천사가 천기를 살펴보니 북녘의 홀한수 주변에서 진룡이 태여난 기상이 보였다.
"이 놈을 더 크기 전에 없애 버려야 내 나라가 태평무사하겠다."
감천사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이 일을 상주했다. 이리하여 감천사가 통솔하는 당나라 군졸들이 홀한수에 몰려와 쏘다니면서 진룡이 태여난 곳을 찾게 되였다. 어느 하루 옥루하를 따라 내려오던 그들은 강 건너에서 자기가 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놈이 여기에 있었구나!"
감천사는 말을 달려 강을 건넜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어느 한집 지붕 우에 삼척동자가 서있는데, 그애의 몸에서 빛이 반짝이고 주변에는 자기가 돌고 있었다.
"이놈이 하루에 한 자씩 자랐구나!"
감천사는 그 집에 불을 지르고 진룡을 태워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이 일을 예감한 아이는 급히 어머니를 부르며 지붕에서 굴러내려왔다.
"어머니, 나쁜 놈들이 나를 죽이려구 집 뒤에 숨어 있어요."
이 소리에 어머니가 달려나와 보니 땅바닥에 쓰러진 어린애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거의 숨져가고 있었다. 아이의 몸에서 빛나던 광채는 사라져가고 점점 흑황색 룡무늬가 돋아나더니 숨지고 말았다. 마당에서 통곡소리가 나자 감천사는 군졸을 데리고 급히 달려왔다. 땅바닥에 쓰러진 진룡을 보고 나서야 감천사는 일이 뜻대로 되였다고 기뻐하면서 군졸들을 휘몰아가지고 서울 장안으로 돌아갔다.
<중국조선족구전설화> p323~324 '상경용천부' 中
 
이 전승 속에서 당에 대한 시각은 고려인들이 당을 대하던 시각 그대로다. 조국을 멸한 나라에 대한 반감. 장차 나라에 큰일을 하게 될 인물이라, 자국에 위협을 가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적국에서 사람을 시켜서 끝내 그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재미있는 건 여기에서는 예의 그, 당의 감천사(監天使?)라는 사람이나 그가 데려온 당병은 아무 것도 한게 없다는 거. 애는 그냥 죽은 거다. 병도 없고 칼이나 활로 치지도 않았는데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손 안 대고 코 풀었으니 지네들만 횡재한거지 뭐.
 
내외는 죽어서 구렝이로 변한 아들이였지만 관 속에 넣어서 지성껏 장사를 치렀다. 그들은 아들애의 시체를 아버지의 무덤 앞에 묻어 주었다. 백날이 지나서 추석날이 되였다. 내외는 아버지의 산소에 찾아가 제사를 지내면서 고통스러운 사연을 털어 놓았다.
"아이고, 아버지께서는 어찌하여 그리도 무정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갓난 손자마저 다려가시나이까. 아이고, 아이고, 무정도 하시외다."
그 애절한 울음소리에 산천초목도 슬퍼했으리라. 그런데 이때 아들의 무덤 속에서 우뢰소리 같은 굉음이 울리더니 무덤이 쫙 갈라지면서 눈부신 빛이 번쩍하며 진룡이 솟아나와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면서 말하는 것이였다.
"부모님들이 룡천에 묻어 준 덕분으로 저는 백날 동안 수련하고 오늘 진룡이 되여 승천하게 되였습니다."
내외는 승천하는 진룡을 대견스레 우러러보다가 아들의 무덤자리에 가 보았다. 무덤자리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이때로부터 내외는 진룡을 낳아 키운 부부라고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였고 가난하던 살림살이도 펴이게 되였다.
<중국조선족구전설화> p324 '상경용천부' 中
 
5월 5일 수릿날에 태어난 아이는 죽고 석 달이 지난 8월 보름에 다시 살아나 하늘에 올랐다. 예수는 사흘 만에 무덤에서 스스로 나와서 제자들 만나고 하늘로 올라갔다던가. 어차피 구전설화니 구태여 사실 여부 따져보고 합리적인 해석이랍시고 갖다대고 할 것은 없지만 본인 입으로 백날이라 했는데 8월 보름을 기점으로 1백 일을 톺아(북한말로 '거슬러'라는 뜻) 계산해보면 한 달을 30일이라고 쳐도 보름(15일)+7월 한 달(30일)+6월 한 달(30일)+5월 한 달에서 닷새 빼고 나머지 날들(25일)인데, 5일로부터 꼭 1백 일이 되기는 하지만 시간대가 도저히 맞지 않는다. 당의 감천사가 알고 군사를 보냈어도 장안에서만 한 달을 걸려야 상경까지 올 수 있는 거리인데 태어나고 바로 군사를 보내고 있잖아 저건. 민간전승이었기 망정이지 다른 거였으면 큰일날뻔 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이 소문은 드디여 발해왕 대흠무의 귀에까지 미치게 되였다. 문왕 대흠무는 이 소문을 듣고 하도 신기하여 문무재상들과 풍수를 거느리고 진룡이 승천했다는 룡천을 찾아떠났다. 어느 하루 수행하던 풍수가 문왕 앞에 무릎을 꿇고 상주하였다.
"전하께 아뢰나이다. 소신이 산국(山局)을 살펴본즉 북쪽에 조종산이 우뚝 솟아있고 그 밑에 주산이 서 있으며 좌우에 청룡백호가 둘러싸고 그 안으로 옥루하, 마련하가 흐르며 남쪽으로 조산이 바라보이니 저곳은 과연 천하에 둘도 없는 명당성지라고 아뢰나이다."
문왕이 룡마를 달려 쑥대 우거진 벌판에 가 보니 과연 진룡이 승천한 룡천이 있었다. 문왕은 룡안에 희색을 띠우며 문무재상들에게 성지를 내렸다.
"발해의 성지는 과연 여기로다. 동원부를 파하고 여기에 상경을 세워 용천부라 할지어다."
이렇게 되여 이곳에 재간있는 목수, 석공들이 모여와서 궁전을 짓고 토성을 쌓았는데, 몇 년 후에는 동방에서 두 번째로 큰 도읍지로 되였고 발해국은 날로 흥성하여 세상사람들로부터 해동성국이라는 미명을 받게 되였다고 한다.
<중국조선족구전설화> p324~325 '상경용천부' 中
 
 뭐, '용천부(龍泉府)'라는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는 데는 하나의 자료가 될수 있겠지.
 
상경으로 천도하면서 흠무왕은 호실이나 월희, 불열, 그리고 흑수 같은 말갈 제족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고자 했고, 이곳에 당의 왕경제를 모방한 장방형의 대규모 도성을 건립하게 된다. 상경의 도성은 북쪽의 궁성(황궁 권역)과 남쪽의 황성(관청 권역)을 합쳐서 내성이라 부르고, 다시 방어용으로 둘러쳐서 쌓은 외성의 크기는 총 16,296.5M. 이곳에서는 적어도 80만, 많게는 120만 명 정도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성 주위로는 장광재령과 노야령 같은 언덕이 있고, 성 서쪽으로는 홀한해(경박호)와 홀한수(목단강)가 돌아 흐르고 있어 해자 구실도 한다. 상경의 구조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조사를 해서 말을 해야 되겠지만, 단순히 내정개혁만을 위해서 도읍을 옮긴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주변에서 일어나던 불온한 정세와도 관련이 있다.
 
천보 말년, 엄청난 광풍이 중국 대륙을 휩쓴다. 당 현종의 근신이었던 안록산과 사사명이 일으킨, 이른바 '안사의 난'이 그것이다. 화려한 성당(盛唐) 시대의 몰락과 함께 당조의 운명이 상향에서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는 분기점이 되었다고 전하는 이 반란은, 당조가 그 화려한 '성세'의 이면에 숨기고 있던 대내외적 모순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상경 - 상경성/동경성 목록  http://tadream.tistory.com/14378
발해의 지방과 성 목록 http://tadream.tistory.com/4502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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