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549903.html
땅이름/ 졸본 ①
등록 :2004-06-24 00:00
146년, 태조대왕이 100살이 되어 동생 수성(차대왕)에게 임금 자리를 물려준다. 165년 연나부 조의 명림답부가 폭정을 한 차대왕을 죽이고 태조대왕의 막내동생 백고를 임금(신대왕)으로 모신다. 백성의 믿음을 얻은 신대왕은 167년 9월에 졸본(卒本)에 가서 시조 사당에 제를 올리고 시월에 돌아온다.
대무신왕이 서기 20년 시조 사당을 세운 뒤, 고구려 새 임금들은 시조 사당에 참배하는 절차를 밟는다. 고국천·동천·중천왕은 180년 9월, 228년 2월, 260년 9월에 졸본에 다녀오며, 고국원왕은 332년 2월에 가서 3월에 돌아온다. 평양으로 서울을 옮긴 뒤 안장·평원·영류왕은 각각 521년 4월, 560년 2월, 619년 4월에 가서 그 다음달에 돌아온다. 짐작건대 국내성에서 졸본을 왕복하는 데 한 달 안(20일 안팎), 평양에서는 한 달 이상(40일 안팎)이 걸린 듯하다.
임진란 때 선조의 몽진 행렬은 서울에서 평양에 이르는 데(250㎞) 여드레가 걸렸고(하루 31㎞꼴), 왜적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는 데 열아흐레가 걸렸다.(하루 21㎞꼴) 평양에서 국내성까지는 300㎞로, 고구려 임금행차 속도를 하루 25㎞씩 잡으면 열흘에 250㎞를 간 셈이다. 졸본은 국내성과 평양 사이 거리만큼 국내성에서 북으로 더 간 거리, 적어도 국내성과 길림(吉林) 사이에 있었다.
고구려말 ‘졸/절’(召尸/折)은 ‘목은/은’(木銀/銀)으로 적는데, 곧 ‘은’이 [졸]이었다. ‘졸본’의 ‘졸’(卒)이 소리로 읽혔다면 이런 말과 잇닿고, 率(솔)의 상용체자로 썼다면 봉우리를 가리킨다. 졸본은 ‘졸보노’(銀京) 또는 ‘솔보노’(봉우리 서울·峰京)인 셈이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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