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joins.com/article/3109964


<만주대륙 고구려성> 5.鳳凰山城

[중앙일보] 입력 1995.08.08 00:00 | 종합 9면 


옛 기록에 오골성(烏骨城)으로 지칭된 봉황산성(鳳凰山城)은 만주에 있는 고구려산성중 가장 규모가 크다.


고구려의 서북 변경에 위치한 요동.백암.안시성등이 장렬했던 고구려의 항쟁을 증언하고 있다면 봉황산성은 강대했던 고구려의 국력을 웅변하고 있다.


험준하기 짝이 없는,따라서 참으로 수려한 봉황의 칼날 능선과봉황산 맞은 편 역시 침릉의 성자산을 각각 좌우로 돌아가는 자연의 성벽으로 활용하고,봉우리 사이사이 낮은 곳과 능선 아래 산록.평지에 성벽을 둘러쳐 조성한 이 성의 둘레 는 약 15㎞에 이른다.그 아래 분지인 성내는 10만명 이상의 군사를 능히주둔시킬 만큼 드넓다.성안은 마치 거대한 암벽의 병풍에 둘러싸인 듯 안온한 느낌을 준다.


봉황산성은 압록강과 불과 1백리 정도 상거한 만주 내륙의 최요충지에 있다.요동의 고구려산성들은 봉황산성을 중심으로 서에서북으로,지리상으로는 발해만에서 요하 계선을 따라오르며 부챗살처럼 퍼져있다.


따라서 이 성은 그 규모와 위치에 비춰볼 때 당시 일종의 병참기지 또는 오늘의 군 편제로 보면 요동 일대를 관장하는 군사령부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짐작된다.


『자치통감』을 보면 645년 당의 이세적 군대가 백암성을 공격할 때 『오골성(봉황산성)에서 군사를 출동시켜 백암성을 지원했다』는 기록이 나오고,또 648년 당이 박작성을 포위.압박할때 『고구려는 장군 고문(高文)으로 하여금 오골 성등에서 군사3만명을 이끌고 와 지원했다』는 기록이 나와 이같은 추정을 뒷받침한다.


당 태종은 안시성 전투가 지지부진하자 안시성을 포기하고 바로봉황산성을 치고 평양으로 진격하려 했다고 한다.그러나 그는 배후에 포진한 무순 신성.건안성.안시성의 고구려 병력이 퇴로를 끊고 공격해오는 것이 두려워 봉황산성 전투는 시 도조차 못한채결국 안시성에서 잔존병력을 이끌고 패주했다는 것이다.


아마 당 태종이 봉황산성을 쳤다면 그는 과거 수 양제가 당한전멸적 상황을 재현했을 것이라는 가정도 가능하다.612년 수는요동성 공략에 실패하자 우문술(宇文述).우중문(宇仲文)이 30만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었다가 살수(청천강) 에서 섬멸당했었다. 봉황산은 도봉산의 정상부를 이루는 선인.자운.만장봉의 암벽군이 줄지어 늘어선 것을 연상하면 비슷하다.성자산의 능선도 도봉산의 포대능선과 얼마만큼은 닮았다.서울의 바위쟁이들이 보면꽤나 몸이 근질거리겠구나,싱거운 생각이 얼핏 든다.


정문인 서남문址옆 개천을 낀 들은 낭랑산성을 오르는 산록보다더 하얗게 할미꽃 천지였다.문지 옆 평지에 2개의 작은 언덕이아무래도 주위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도드라져있다.이진희(李進熙)교수의 눈살이 잠깐 찌푸려지더니 인공의 둑이 라고 단정한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일종의 옹성 형태의 흙성벽인 것이다.흙성벽중 하나의 크기는 가로 40,세로 25,높이 10고 위 폭은 8쯤이었다.


봉황산성의 성벽중 남문쪽 편편한 곳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고 칼날 능선 사이 들어간 곳과 북문터옆은 돌로 축조했다.현재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은 성벽은 북문터에서 치올라간 능선에 있다.


서남문터에 들어서 마을의 큰 길을 지나 이어지는 산길의 고개끝에 있는 북문터도 역시 옹성으로 좌우 성벽이 엇갈려 쌓여있다.성벽의 높이는 6~8,위의 폭은 2남짓 되었다.


현재 봉황산 정상에는 방송 송신소가 자리잡고 있다.기록에는 성의 북쪽에 고구려의 적석묘들이 있다고 하나 시간에 쫓겨 가서확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성내 평지 주위를 두르며 완강하게 비탈진 능선중 성의 가운데에서 서쪽으로 약 간 치우쳐 내려온 능선 중간부분의 높이 솟은 곳이 전투지휘소로 추정됐다.


***산성안 마을이름이 「고려」 봉황산성은 그 규모에 걸맞게옛날부터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고구려의 한 상징으로 인식돼 온것으로 보인다.산성내 마을 이름이 고려(고대 중국은 고구려를 고려라고 부르기도 했다)마을인 것과 남쪽으로 2.5㎞ 떨어진 읍의 옛 역 이름 이 「고려역」인 것이 단적인 예다.


고려마을에 혹시 조선족이 살고 있을까,몇 집의 문을 두드려봤으나 중국말만 되돌아온다.고구려가 사라진 뒤 세월이 흐르며 고구려인들은 자연스레 만족화(滿族化)되어갔다.지금 이들은 그들이아닌가,문득 비애스러웠다.석양을 등진 봉황산성은 거대한 침묵의언어로 취재팀의 발길을 잡고 있었다.


□ 취재팀 □ 글:李憲益기자 사진:金璟彬기자 도움말:李進熙 (일본和光大교수.고고학) 林起煥(경희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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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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