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시국선언’ 대학까지 사찰
등록 : 2013.06.27 08:06수정 : 2013.06.27 11:29

인하대 총장실 직원에 전화 “시국선언 등 활동 없나”
로스쿨 인권법학회원 “교직원이 촛불시위 가냐 물어”

국가정보원이 대학가의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 시국선언’과 관련한 동향 파악을 대학 총장실에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선거·정치 개입 공작과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불법 공개에 이어 대학가 사찰까지 벌인 것이어서 국정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비판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26일 인하대학교 관계자와 학생들의 말을 종합하면, 인하대를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은 이번주 초 인하대 총장실에 전화를 걸어 “서울에 있는 대학들이 시국선언을 하는 등 움직임이 많은데 인하대에서는 특별한 활동이 없느냐”고 물었다. 전화를 받은 총장실 직원은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인권법학회가 다른 5개 로스쿨 인권법학회와 함께 국정원 규탄 성명서를 낸 사실을 확인하고, 로스쿨 교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성명서가 나온 배경을 물었고, 이 교직원은 인권법학회 회원인 학생에게 “촛불시위에 나가느냐? 외부 단체와 연계가 있느냐? 혹시 민주노총과 함께하냐?” 등의 질문을 했다.

인하대 로스쿨 인권법학회는 이번 인권법학회 공동 성명 발표를 주도한 곳이어서, 국정원이 이를 알고 본격적인 사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 학회 소속 한 학생은 “성명서에는 로스쿨 6곳의 인권법학회가 함께했는데, 인하대 학회가 초안을 만들고 각 학교 입장을 모았다. 국정원이 우리 학회가 성명을 주도한다는 것을 알고 연락을 취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다른 로스쿨 학회 쪽에선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국정원이 학교에 연락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깜짝 놀랐고 무서웠다.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활동까지 사찰하는 데 분노한다”고 말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인천 지역 담당자가 최근 바뀌어서 인사차 총장실에 전화를 건 것뿐이다. 학생들의 동향에 대해 물어본 것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인하대 쪽은 “(국정원 직원의 전화를 받고) 단순히 동향 파악 차원에서 인권법학회에 전화했다. 학생들에게 성명서 발표에 참여한 사실만 확인했고 외부 단체 연계 여부 등은 묻지 않았다. 인권법학회 성명서와 관련해 파악된 내용은 국정원에 따로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인하대를 비롯해 서울대·건국대·제주대·전남대 등 전국 17개 로스쿨의 인권법학회는 26일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비판하는 2차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민주주의 근간인 국민 주권행사를 유린한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범죄 의혹에 비통함을 느낀다. 헌법질서를 파괴한 국정원의 행동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고 진실을 규명하라”고 주장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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