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korea.aks.ac.kr , http://terms.naver.com/entry.nhn?cid=1590&docId=1820230&categoryId=1590
* 민족문화백과사전 (검색어) "발해" 글에서 [강역과 행정구역] 내용만 가져왔음.

발해의 강역과 행정구역

발해의 [건국과 성쇠] 1. 건국 http://tadream.tistory.com/6937

2. 발전, 3. 내분, 4. 융성  http://tadream.tistory.com/6938
5. 멸망과 부흥  http://tadream.tistory.com/6939
[정치제도]  http://tadream.tistory.com/6940
[강역과 행정구역]  http://tadream.tistory.com/6941
[사회구성] http://tadream.tistory.com/6942
[경제] http://tadream.tistory.com/6943
[문화] http://tadream.tistory.com/6949

1. 강역
 
발해 영역은『구당서(舊唐書)』발해말갈전과『루이쥬코쿠시(類聚國史)』에 사방 2천 리에 이른다고 했고,『신당서』발해전에서는 사방 5천 리에 이른다고 했다. 양자의 차이는 시간적 흐름에 따른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니, 사방 5천 리는 융성기인 9세기의 상황이고, 사방 2천 리는 건국 직후의 상황이다. 발해는 통일신라보다 대략 4~5배, 고구려보다 1.5~2배 정도 큰 영토를 지녔다.
 
영토는 건국 및 발전기, 융성기에 확장되었고, 내분기와 멸망기에 축소되거나 상실되었다. 727년 무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國書)에서 “욕되게 여러 나라를 주관하고 외람되게 여러 번국(蕃國)을 병합해서 고구려의 옛 터전을 수복하고 부여의 풍속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남쪽과 서쪽으로 진출하여 옛날 고구려와 부여의 중심지를 수복했다는 말이 된다. 사실 732년에 발해 수군이 당나라 등주를 공략한 것은 이때에 이미 압록강 수로를 확보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북쪽과 동쪽의 말갈 땅도 공략했으니, 736년에 흑수말갈(黑水靺鞨)을 친 것은 그 사이에 있던 말갈 집단을 이미 손아귀에 넣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리하여 흑수말갈을 제외한 대부분의 말갈족이 복속되었으니, 문헌에도 “영토를 크게 개척하자 동북쪽의 여러 오랑캐가 두려워하여 신하가 되었다”고 적었다.
 
신라 방면으로도 진출했다. 721년 7월에 신라가 하슬라도(何瑟羅道, 현 강릉)의 장정 2천 명을 동원하여 북쪽 국경에 장성을 쌓은 것은 발해의 남진에 대응한 것으로써, 이때에 이미 이하(泥河)를 경계로 삼고 있었을 것이다. 또 735년에는 신라가 김사란(金思蘭)을 파견하여 패강(浿江, 대동강)에 수자리를 둘 수 있도록 요청하였으니, 이 또한 대동강까지 미친 발해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무왕의 뒤를 이어 문왕 때에도 말갈 정복이 계속되었으니, 8세기 중반에 철리부(鐵利部), 불열부(拂涅部), 월희부(越喜部), 우루부(虞婁部) 등이 복속되었다. 문왕 전반기에 오늘날의 연해주 땅도 발해로 편입된 것이다. 이때에 비로소 주변 지역에 대한 정복이 일단락되었다.
 
8세기 말 내분기가 도래하면서 일부 말갈 부락은 발해 조정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활동을 했으니, 우루말갈과 월희말갈이 802년에 당나라에 독자 조공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강왕이 즉위 후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영토가 처음과 같이 되었다”고 한 것은 저간의 이탈 사정을 암시해준다.
 
선왕이 즉위하면서 재차 영역을 회복했으니, 월희말갈을 복속시키고 흑수말갈을 통제했으며, 남쪽으로 요동지방과 한반도 서북부 쪽으로 다시 진출했다. 이리하여 선왕 시대에 발해의 대외 정복활동이 마무리되고, 9세기 전반에 비로소 최대 판도를 이루었다. 10세기 초에 들어서 요동지방을 거란에 빼앗기고, 그동안 지배해오던 보로국(寶露國)이나 달고(達姑)와 같은 집단들이 이탈해나가면서 멸망 때까지 영토가 축소되어갔다.
 
전성기의 강역은『신당서』발해전에 “남쪽은 이하(泥河)를 경계로 신라와 접했고, 동쪽은 바다까지, 서쪽은 거란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대체로 만주의 동부 지역에 중심을 두면서 서쪽으로 요동반도에 이르는 만주 중부 지역, 남쪽으로 대동강과 용흥강(龍興江)을 잇는 선, 동쪽으로 연해주 남부 일대, 북쪽으로 송화강(松花江)까지 포괄하였다.
 
2. 행정구역과 교통로
 
발해는 전국에 걸쳐 5경, 15부, 62주 및 다수의 현을 두었다. 5경은 15부 가운데에서 핵심적인 5부를 따로 선정해 주요 거점으로 삼은 것이다. 과거에 숙신이 있던 곳에 용천부(龍泉府)를 두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남서쪽으로 600리 떨어진 곳에 현덕부(顯德府)를 두었다. 예맥족이 살던 두만강 유역에는 용원부(龍原府)를 설치했는데, 고구려 책성이 있던 곳이어서 책성부(柵城府)라고도 한다. 용원부는 일본과 왕래하던 일본도(日本道)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신라의 국경지대인 천정군(泉井郡)까지 39개의 역(驛)을 설치하였다. 옥저가 있던 곳에는 남해부(南海府)를 두었는데, 신라와 왕래하던 신라도(新羅道)의 중심지였다. 고구려 땅에는 압록부(鴨淥府)를 설치했는데, 강과 바다를 통해 당나라 산동반도로 들어가는 조공도(朝貢道)의 중심지였다.
 
이상 용천부, 현덕부, 용원부, 남해부, 압록부의 5부에 5경이 병치되었다. 그 소재지를 보면, 상경(上京)은 현재의 헤이룽장성 닝안(寧安) 상경성(上京城), 중경(中京)은 지린성 허룽(和龍) 서고성(西古城), 동경(東京)은 지린성 훈춘(琿春) 팔련성(八連城), 남경(南京)은 함경남도 북청 청해토성(靑海土城), 서경(西京)은 지린성 린장(臨江) 지역으로 비정된다. 지리상으로 보면 각각 북·중·동·남·서에 해당되어 5경의 명칭과 실제 위치가 상호 일치한다. 5경은 문왕 통치기인 760년대 중반경에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설치되었다. 발해 멸망 후 요나라, 금나라에서는 발해를 본받아 5경제도를 실시했다.
 
나머지 10부는 5경의 주변 지역에 배치되었다. 고구려 영역에 속했던 곳에는 장령부(長嶺府)를 두었다. 장령부는 당나라로 연결되는 영주도(營州道)의 중심지였다. 부여가 있던 곳에는 부여부(扶餘府)와 막힐부(鄚頡府)를 두었다. 부여부에는 항상 군사를 주둔시켜 거란을 방비하게 했다.
 
읍루(挹婁) 지역에는 정리부(定理府)와 안변부(安邊府)를 설치했다. 읍루는 아마 우루말갈(虞婁靺鞨) 지역이라는 의미의 우루(虞婁)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솔빈말갈(率賓靺鞨) 지역에는 솔빈부(率賓府)를 두었다. 불열말갈(拂涅靺鞨) 지역에는 동평부(東平府)를, 철리말갈(鐵利靺鞨) 지역에는 철리부(鐵利府)를, 월희말갈(越喜靺鞨) 지역에는 회원부(懷遠府)와 안원부(安遠府)를 설치했다.
 
15부 아래에는 62주가 있었으나『신당서』발해전에는 60개만 나열되어 있다. 따라서 누락된 두 개의 주로서『요사(遼史)』지리지에 보이는 집주(集州), 녹주(麓州), 빈주(賓州)나,『요사』태조본기에 보이는 신주(愼州) 등이 거론된다.
 
62주 아래에는 상당수의 현이 있었다. 모두 몇 개의 현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200∼250개쯤으로 추정된다.『요사』지리지에 따르면 일부 주(州)가 군(郡)으로도 불린다. 이것은 어느 시기에 이르러 행정체계가 일부 변경되었음을 반영한다.
 
발해에는 5개의 주요 대외교통로가 있었다.『신당서』발해전에 “용원부는 동남쪽으로 바다에 접해 있는데, 일본도에 속한다. 남해부는 신라도에, 압록부는 조공도에, 장령부는 영주도에, 부여부는 거란도에 속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동경용원부는 일본으로 가는 거점이니, 동경 관할의 염주(鹽州, 현재의 크라스키노 성터)에서 배를 타고 일본의 서해안에 도착했다. 남경남해부는 신라로 가는 거점이니, 이곳에서 출발하여 국경인 이하(泥河)를 건너 신라의 천정군을 거쳐 신라 왕경으로 들어갔다. 서경압록부는 조공하는 경로이니, 여기서 압록강에 배를 타고 내려간 뒤에 해로로 요동반도의 연안을 따라 여순(旅順)에 도착했다. 여기서 묘도열도(廟島列島)를 따라 발해만을 횡단해 산동반도의 등주(登州)에 상륙한 뒤에 육로로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으로 향했다. 발해에서 당나라로 향하는 또 하나의 통로로서 영주로 가는 육로가 있었다. 휘발하 유역의 장령부에서 요령성의 무순, 심양을 거친 다음 요하를 건너 영주에 도달했는데, 조공도에 비해 활용도가 낮았다. 거란도는 부여부가 있던 농안(農安)에서 서쪽의 거란 거주지에 도달하는 길이었다. 이밖에 상경성에서 북쪽으로 목단강 상류와 송화강 하류를 거쳐 흑수말갈과 왕래하였다.
 
<발해의 15부와 그 속주 및 독주주>

15부(府)         속주(屬州)
용천부(상경) : 용주, 호주, 발주
현덕부(중경) : 현주, 노주, 철주, 탕주, 영주(숭주), 흥주
용원부(동경) : 경주, 염주, 목주, 하주
남해부(남경) : 옥주, 정주, 초주
압록부(서경) : 신주, 환주, 풍주, 정주
장령부 :          하주(瑕州), 하주(河州)
부여부 :          부주, 선주
막힐부 :          막주, 고주
정리부 :          정주, 반주(심주)
안변부 :          안주, 경주
솔빈부 :          화주, 익주, 건주
동평부 :          이주, 몽주, 타주, 흑주, 비주
철리부 :          광주, 분주, 포주, 해주, 의주, 귀주
회원부 :          달주, 월주, 회주, 기주, 부주, 미주, 복주, 사주, 지주
안원부 :          영주, 미주, 모주, 상주
독주주 :          영주, 동주, 속주
기타 집주:       녹주, 빈주, 신주 가운데 2개 주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