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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화백과사전 (검색어) "발해" 글에서 [발해사 연구동향]과 [참고문헌] 내용을 가져왔음.
발해의 역사는 한국에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리고 발해가 빈번하게 사신을 파견했던 일본에서도 연구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발해사는 단순히 한국사의 일부라는 차원이 아닌, 국제적인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어 있다.
* 민족문화백과사전 (검색어) "발해" 글에서 [발해사 연구동향]과 [참고문헌] 내용을 가져왔음.
발해사 연구동향
발해의 역사는 한국에서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리고 발해가 빈번하게 사신을 파견했던 일본에서도 연구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발해사는 단순히 한국사의 일부라는 차원이 아닌, 국제적인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어 있다.
1. 국가별 연구 동향
(1) 한국
국내에서의 발해사 연구사를 보면, 조선 후기에 발해사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면서 처음으로 실증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당시 발해사에 대한 관심이 영토적인 데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연구는 자연히 韓鎭書)지리고증에 집중되었다. 이 방면의 대표적인 인물은 정약용(丁若鏞)·한치윤(韓致奫)·한진서(韓鎭書) 등이다. 이들이 발해사에 대한 단순한 관심의 차원을 넘어서 본격적인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것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앞선다. 따라서 발해사 연구는 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증적 연구는 19세기 중반부터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일제시대에도 실증적인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단지 장도빈(張道斌)의 연구 정도만 꼽을 수 있다.
해방이 되면서 발해사 연구는 남·북한에서 각기 재개되었다. 남한에서는 1960년대부터 이용범(李龍範)이 연구를 주도했다. 그는 1960년대에 기왕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여 한국사와의 연결 가능성을 모색했다. 또 1970년대에는 발해의 사회구성과 유민사의 연구에 남다른 업적을 남겼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송기호, 한규철, 노태돈 등이 참여했고, 1990년대에는 새로운 연구자들이 양성되었으며 연구 분야도 다양화되었다.
(2) 북한
북한에서의 발해사 연구도 1960년대에 시작되었다. 1962년 박시형이 논문에서 발해가 모든 면에서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명제를 제시한 것이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다. 문헌에 기초를 둔 그의 주장은 주영헌이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함으로써 더욱 강화되었다. 이렇게 1970년대 초까지 문헌사와 고고학의 두 방면에서 연구의 기본틀이 마련됨으로써, 그 후의 연구들은 이들의 주장을 보강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다.
1970년대에 침체되었던 북한에서의 연구는 1980년대 들어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발해사를 연구하는 기구와 인력이 대폭 확충되었다. 문헌학자로서 장국종, 손영종, 현명호, 채태형, 김혁철 등이 있고, 고고학자로서 김종혁, 리준걸, 김지철 등이 있다. 1980년대에 주체사상이 유일사상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면서 연구 방향도 특정 주제에 고정되었다. 고구려의 계승성, 그리고 고려에의 계승성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이다. 다만 1980년대에 함경도 지역에서 발해 유적들이 속속 확인된 것은 큰 성과이다. 그렇지만 북한에서 보고되는 유적 가운데 고구려 것은 평안도에 집중되고, 발해 것은 함경도에 집중되어, 북한의 시대 설정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3) 중국
중국에서의 발해사 연구는 19세기에 조정걸(曹廷杰), 경방창(景方昶) 등이 역사지리 고증을 하면서 단초를 열었다. 전문적인 연구는 20세기 초에 들어와 당연(唐宴), 황유한(黃維翰), 김육불(金毓黻)로부터 비롯되었다. 특히 김육불은 발해에 관한 거의 모든 문헌들을 망라하여 정밀하게 고증함으로써, 그 후의 발해사 연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는 발해사 연구의 침체기였고, 문화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 정책이 실시되는 1970년대 말부터 다시 발해사 연구가 활기를 띠었다. 이 무렵에 이미 발해는 말갈족이 주체가 된 지방정권이란 공식이 만들어졌다. 주요 유적이 중국에 속해 있어 고고 연구를 주도하는 입장에 있다. 주요 연구자로는 왕청리〔王承禮〕, 웨이궈중〔魏國忠〕, 주궈천〔朱國忱〕, 류샤오둥〔劉曉東〕, 쑨위량〔孫玉良〕, 웨이춘청〔魏存成〕, 쑨진지〔孫進己〕, 쑨슈런〔孫秀仁〕등이 있다. 또한 조선족 학자로서 방학봉(方學鳳), 정영진(鄭永振), 김태순(金太順) 등이 있다.
(4) 일본
일본에서의 발해사 연구는 특이한 점이 있다.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에서는 자기 역사의 일부로서 발해사를 다루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연구자가 제법 많은 것은 일본의 대외관계사라는 측면과 함께 일제시대에 만주를 지배했던 경험 때문이다.
실증적 연구는 19세기 말에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일제시대에 들어와 만주 침략과 연계되면서 주로 지리고증과 고고조사에 중점을 두었다.
고고학 성과로서 동경성(東京城, 상경성), 서고성, 반랍성(半拉城, 팔련성) 등을 조사해 발해의 주요 수도들을 처음 확인했던 점은 주목된다. 이 시기에는 도리야마〔鳥山喜一〕, 미카미〔三上次男〕, 고마이〔駒井和愛〕, 사이토〔齋藤優〕, 와다〔和田淸〕, 츠다〔津田左右吉〕등과 같은 연구자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1960년대까지는 소강 상태에 있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 전후 세대로 구성된 새로운 연구자들이 등장하였다. 이제는 문헌사가 중심이 되었다. 일본사 전공자로서 이시이〔石井正敏〕, 스즈키〔鈴木靖民〕, 사카요리〔酒寄雅志〕등이 있고, 한국사 내지 중국사 전공자로서 후루하타〔古畑徹〕, 가와카미〔河上洋〕, 이성시(李成市), 하마다〔濱田耕策〕등이 있으며, 고고학자로서 고지마〔小嶋芳孝〕가 있다.
(5) 러시아
러시아에서의 발해사에 대한 관심은 19세기에 활동한 엔. 야. 비추린(N. Ia. Bichurin) 등에서 이미 나타난다. 그로부터 20세기 전반까지는 연해주의 발해 유적들에 대한 산발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발해사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이다. 이때부터 아. 페. 오클라드니코프(A. P. Okladnikov)와 그의 제자인 에. 붸. 샤프쿠노프(E. V. Shavkunov)가 연구를 주도했다. 1958년에 코프이토(Kopyto) 절터를 발굴하면서 연해주에서의 체계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1960년대에 금나라 유적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발해사 연구가 부진했다.
조사와 연구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이 시기에 새로운 연구자로서 붸. 이. 볼딘(V. I. Boldin), 오. 붸. 디야코바(O. V. D’iakova), 아. 엘. 이블리예프(A. L. Ivliev) 등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러시아과학원 극동지부 극동민족 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다.
1990년대부터는 한국학자들과 공동으로 발해 유적을 조사하고 발굴해오고 있다. 공동으로 발굴된 유적에는 마리야노프카(Mar'ianovka) 성터, 크라스키노(Kraskino) 성터, 콕샤로프카(Koksharovka) 성터 등과 같은 성터가 주되며, 코르사코프카(Korsakovka) 절터, 체르냐티노(Cherniatino) 고분군 등도 있다. 이를 매개로 한국과 가장 활발히 교류해오고 있다.
2. 연구 주제
발해사 연구에서 중심을 이루어 온 주제로는 발해사의 귀속(歸屬) 문제, 지리 고증, 대외 관계, 고고 조사 및 연구, 사회 내부의 여러 양상들, 유민 활동 등이다.
(1) 귀속 문제
이 중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인 부분이 발해사의 귀속 문제이다. 이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고구려 계승국가로 보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말갈계 국가로 보는 관점이다. 전자는 주로 남·북한과 일본의 시각이고, 후자는 중국과 러시아의 시각이다.
(2) 지리 고증
그 다음으로 관심을 보인 분야가 지리고증이다. 발해사 연구가 시작되면서 조선시대 실학자나 청나라 학자들이 처음으로 연구한 부문이 바로 이 분야다. 발해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지나 영역 등이 미궁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과연 이 나라가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사실이 일차적인 관심이 되었다. 이 분야에서는 첫 도읍지의 위치와 천도 과정, 5경, 대외 교통로, 영역 등이 주요 주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문헌만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다가 20세기 들어 성터들이 다수 발견됨으로써 성터 자료와 문헌 기록이 결합되어 더욱 구체성을 띠었다.
(3) 대외 관계
발해의 대외 관계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발해인들이 남긴 사료가 거의 없고 중국, 일본, 신라에서 남긴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연히 대외 관계와 관련된 서술이 중심을 이루는 데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다.
(4) 고고 조사 및 연구
고고 조사와 발굴,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연구 성과가 수량 면에서 가장 많다. 발해 유적에 관한 체계적 조사는 1933년 동경성(상경성)을 발굴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일본인들의 조사는 팔련성, 서고성과 같은 도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해방이 되면서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 육정산 고분군이다. 그 뒤로 중국학자들의 조사는 성터를 비롯해 무덤·절터·가마터 등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지역적으로도 5경을 벗어나 지방의 유적에까지 조사가 이루어졌다.
연해주에서도 성터를 중심으로 집터·절터 등에 대한 조사가 병행되고 있다. 연해주에서는 한국학자들과 공동으로 성터와 절터, 무덤 등이 발굴되었다. 북한의 함경도 일대에서도 성터·고분·절터들이 다수 발견되었다.
(5) 사회 구조
발해 사회의 내부 구조를 밝히는 작업은 다른 어느 부문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방면의 연구는 다른 주제보다 뒤떨어져 있고 산발적이다. 이것은 발해 사료들이 대외 관계에 집중되어 있어서 내부 구조를 밝히는 데에 어려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부문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된 것이 대조영의 출자와 발해인의 종족 구성 문제이다. 이것은 물론 발해사의 귀속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데에 원인이 있다. 이외에도 부진하나마 지방사회, 경제, 정치제도, 문화에 대한 연구도 있다.
다음은 지방사회의 구성과 지방지배제도이다. 특히 지방사회의 지배자들인 수령(首領)의 정체가 무엇이고, 수령과 지방민의 상호 관계는 어떠하였는가, 지방의 지배구조가 전시대의 고구려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점들이 논의되고 있다.
발해의 경제를 연구할 수 있는 문헌자료는 거의 없어서 연구가 매우 취약하다. 정치제도에 관한 연구는 발해의 제도가 당나라 또는 고구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을 뿐이지, 정치 운영의 실상을 밝히지는 못하고 있다.
문화면에서는 벽화를 중심으로 한 회화와 불상, 그리고 불교·문학·음악·복식·건축·민속과 전설 등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방면의 연구도 발해사 귀속 문제와 연관되면서 당나라 문화 요소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지, 아니면 고구려 문화 요소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지에 관심을 주로 기울임으로써 발해문화 자체의 해명에는 미흡하다.
(6) 유민 연구
마지막으로 발해유민 활동에 관한 연구이다. 이 방면에 대해서는 일제시대 일본학자들과 근년의 국내 학자들이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 연구는 발해유민의 향방과 관련해 사민정책, 부흥운동과 요·금 및 고려에서의 활동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7) 발전 단계
이상과 같은 연구들이 체계적으로 진행된 다음에 과연 발해 사회가 고대국가에 속하는지 아니면 중세국가에 속하는지가 해명될 수 있다. 현재로서 중국에서는 노예제사회냐 봉건제사회냐 하는 사회 성격에 대한 논의가 가끔 제기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봉건제국가로, 러시아에서는 중세국가로 규정해 놓고 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원시사회에서 중세국가로 바로 이행하면서 처음으로 나타난 나라가 발해라고 해 ‘초기 중세국가’로 규정한다. 반면에 남한과 일본에서는 고대국가로 간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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