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보도 비판 어림없어’ KBS 보복인사
등록 : 2013.06.30 14:25수정 : 2013.06.30 15:18 

KBS 사옥

‘시청자데스크’, ‘뉴스 9’ 부실 보도 비판하자 담당 국장과 부장 보직 해임…기자협회 등 반발
사쪽 “국장 15명 인사 보복 인사라 볼 수 없다”

<와이티엔>(YTN), <문화방송>(MBC) 등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을 축소 보도했다는 비판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방송>(KBS)이 자사의 국정원 관련 보도를 비판한 매체비평(옴부즈만) 프로그램의 담당 간부들을 보직해임시켜 파문이 일고 있다. 한국방송 기자협회 등 직능단체들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단체들이 성명을 내어 보복인사로 규정하고 인사 철회를 요구했다.

한국방송은 지난 28일 낸 인사발령에서 매체비평 프로그램인 <시청자데스크>를 맡고 있던 시청자본부의 고영규 시청자국장과 홍성민 시청자서비스부장을 보직에서 해임했다.

시청자데스크는 이에 앞서 지난 22일 ‘클로즈업 티브이’라는 코너를 통해 한국방송의 간판 뉴스프로그램 ‘뉴스9’의 국정원 관련 보도의 문제점을 30분 동안 짚은 바 있어, ‘보복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한국방송 안팎에서는 방송이 나간 뒤 길환영 한국방송 사장이 임원회의 등에서 시청자데스크의 방송 제작 과정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했다는 말도 나온다.

22일 방송된 ‘클로즈업 티브이’의 내용을 보면, 이 프로그램은 공영방송인 자사 보도가 국정원 댓글 공작 의혹에서부터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발표까지 단순한 사실 전달에만 그쳤을 뿐 그 의미를 제대로 짚지 못해, 권력의 눈치를 보는 듯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간판 프로그램인 ‘뉴스 9’에서 국정원 관련한 단독 보도는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국정원의 반값등록금 대응 문건’, ‘경찰의 수사 축소 지시’ 등의 중요한 뉴스들을 단신으로만 짚는 등 공영방송으로서의 기능과 책무를 제대로 못했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길환영 사장은 방송 다음날인 23일 간부들에게 방송이 나간 경위를 따져 물었고, 그 다음날인 24일 임원회의에서 방송 제작 과정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고 알려져 한국방송 안팎의 반발을 부른 바 있다. 그러던 가운데 해당 부서의 간부인 시청자국장과 시청자부장을 경질하는 인사를 낸 것이다.

이 같은 조처를 두고 한국방송 내부에서 또다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시청자데스크 담당 피디인 현상윤 피디는 28일 한국방송 내부 게시판에 ‘부장, 국장 잡아먹은 피디의 변’이라는 글을 올려, “30분 동안 한국방송 9시 뉴스의 국정원 관련 보도 문제점에 대해 방송 나간 지 1주일이 안 돼 칼을 맞았다. 사장께서는 그 문제와는 맹세코 관련이 없는 정규인사라고 말씀하시겠지만 당하는 저희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다. 법으로 보장된 옴부즈맨 프로에서 한국방송 보도의 문제점을 씹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라고 썼다.

경영협회·기자협회·방송기술인협회·촬영감독협회·피디협회 등 한국방송의 5개 협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사쪽이) 방송법으로 보장된 ‘티브이비평 시청자데스크’에서 방송한 ‘국정원 보도의 문제점’과 관련해 해당 부장과 국장을 일주일만에 경질했다. 수신료 인상이 될 때까지 어떤 불만도 잠재우겠다는 교묘한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깥에서도 문제 제기가 잇따른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언론인권센터 등 언론 관련 시민단체들도 성명을 내고 “시청자 주권을 훼손하고 시청자 의견을 무시하는 한국방송은 옴부즈만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징계조치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민언련은 성명에서 “한국방송이 왜곡·편파 보도를 일삼을 뿐만 아니라 시청자의 정당한 비판에 대해서까지 시시콜콜 탄압하려 드는 것은 시청자에 대한 용납할 수 있는 도발이자 모욕이고, 방송법으로 구체화된 방송의 기본 책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파괴하는 범죄”라며 “시청자데스크 프로그램에 대한 부당한 조사 지시와 간섭을 즉각 중단하고 담당 국장과 부장의 보직 해임을 당장 철회하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방송 홍보팀 관계자는 “이번 인사발령은 7월1일부터 시작하는 조직개편을 앞두고 15명의 국장이 인사 대상자가 되는 등 대대적인 발령이라 ‘보복인사’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시청자데스크 제작 과정에 대한 길 사장의 조사 지시에 대해서는 “시청자데스크 방송이 균형을 갖추지 못했다는 보도본부에서의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나온 말로, 시청자데스크를 표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게이트 키핑’을 점검하기 위한 방송국의 일상적인 내부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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