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Contents?contents_id=E0003366
고노자 [高奴子]
대표관직(경력) 신성태수
집필자 권덕영
생몰년 미상. 고구려시대의 명신.
293년(봉상왕 2) 선비족(鮮卑族)인 모용부(慕容部)의 족장 모용외(慕容?)가 고구려를 침범하자 신성(新城 : 지금의 無順市 북쪽 北關山城)에서 방어하였다. 이때 북부소형(北部小兄)으로 500명의 기병을 이끌고 나아가 모용외의 군사를 격퇴시킨 공으로 관등이 소형(小兄)에서 대형(大兄)으로 올랐으며, 식읍(食邑)으로 곡림(鵠林)을 받았다.
그뒤 296년 모용외가 다시 침입하여 서천왕의 능묘를 파헤치는 등 고구려의 변경을 소란하게 하자 봉상왕은 이 문제로 고심하였다. 이에 당시의 국상(國相)이었던 창조리(倉助利)가 고노자는 어질고 용맹하여 적을 능히 막을 수 있다고 하므로, 고노자를 서쪽의 요충인 신성의 태수로 삼아 침입에 대비하였다. 이곳에서 고노자는 선정을 베풀고 위맹을 떨쳐 모용외가 다시는 고구려를 침입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한국사강좌(韓國史講座)』-고대편(古代篇)-Ⅰ(이기백·이기동, 일조각,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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