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edia.daum.net/culture/art/newsview?newsid=20071123090112122

서고성 성터, 발해 중경현덕부 자리 맞다
연합뉴스 | 입력 2007.11.23 09:01 | 수정 2007.11.23 14:19

中 학자들, 고고발굴 성과 보고서 통해 단언
"都城 건설도 중원 漢문화 영향 크게 받아"
국내 학계서도 관련 논의 활성화 계기 될듯

(서울=연합뉴스) 이돈관 편집위원 = 현재의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일대는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강역이었다. '간도(間島)'로도 불린 이 지역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일제가 1909년 9월 4일 청(淸)나라와 체결한 '중한계무조관(中韓界務條款ㆍ간도협약)'에 의해 중국의 영토가 된 곳이다.




지린성 내의 수많은 고구려ㆍ발해 유적 중 옌볜자치주 허룽(和龍)시 시청(西城)진 청난(城南)촌에 있는 서고성(西古城) 유적은 이미 1940년대에 경성제국대 교수였던 동양사학자 도리야마 기이치(鳥山喜一)등 일본의 학자들에 의해 발해 5경(五京)의 한 곳인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로 비정됐다.

지린성 문물고고연구소, 옌볜자치주 문화국, 옌볜자치주박물관, 허룽시박물관은 2000-2005년 사이 두 차례에 걸쳐 이 서고성에 대해 대대적인 고고발굴작업을 벌였으며 그 성과를 '서고성 - 2000∼2005년도 발해국 중경현덕부 고지(故址) 야외고고 보고'라는 이름으로 최근 펴냈다.

중국의 고고학자들은 이 보고서에서 서고성 성터가 바로 중경현덕부 자리였다는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면서 서고성 성터에 대한 고고발굴과, 이 성터에서 대량 출토된 연꽃무늬 기와와 문자 기와 등을 통해 중원의 한문화(漢文化)가 발해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일본인들에 의해 상당 부분이 '도굴'되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도 심층적인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보호관리가 허술했던 서고성에 대한 중국의 전면적 고고발굴 작업과 보고서 발간은 모두 이번이 처음이다. 서고성에 대한 부분적 조사는 1964년 북ㆍ중 양국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공동으로 진행된 바 있으나 그 보고서는 발표되지 않았다.

중경은 발해 3대왕인 대흠무(大欽茂ㆍ문왕)가 자신의 재위 때(서기 737-793년)인 대흥 5년(742년)부터 대흥 19년(755년) 상경으로 천도할 때까지 14년 간 발해의 수도였던 곳.

그 위치와 관련해서는 대조영이 처음 터를 잡은 구국(舊國)과 동일한 지역인지, 중경현덕부의 소재지가 그 아래의 노주(盧州)인지 현주(顯州)인지를 놓고 학설이 분분했다. 그러나 1980년 10월 서고성 가까운 곳에서 대흠무의 넷째 딸 정효공주(貞孝)의 묘가 발견됨으로써 서고성이 중경현덕부라는 학설이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됐다.

발굴보고서는 서고성이 중경현덕부였다는 기존의 '통설'이 실물 증거자료 부족으로 추론단계에 머물러 있었으나 이번 고고발굴에서 나타난 자료와 기존의 연구성과를 근거로 "발해국 중격현덕부의 옛터를 서고성 성터로 충분히 확정지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발해 강역이었던 지역에서 확인된 발해 성터 중 규모면에서 도성의 조건을 갖춘 곳은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의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유적과,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 자리였던 지린성 훈춘(琿春)시 팔련성(八連城) 성터를 제외하고는 서고성 성터밖에 없다.

지리적인 위치로 보아도 서고성은 팔련성과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문헌에 기록된 발해 5경의 방위와 대체로 부합하며, 유적ㆍ유물면에서는 궁전의 크기라든가 건축 장식물로 사용된 유약도기 등이 도성의 조건에 부합한다.

이러한 도성의 조건은 지린시 화뎬(樺甸)에 있는 발해 장령부(長嶺府) 소밀성(蘇密城) 성터, 염주(鹽州) 크라스키노성 성터(러시아 하산지방) 같은, 발해의 부(府)급과 주(州)급 성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서고성 성터의 중경현덕부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보고서는 '학술적인 추론'임을 전제로 "발해정권이 이미 대흠무 재위 시기에 5경제도(5경.15부.62주)를 수립했으며, 서고성이 중경현덕부의 옛터인 동시에 현주로 비정하고 있다"면서 고고학 연구를 통해 중경현덕부와 현주의 관계도 머지않아 밝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산 경성대 역사학과 한규철 교수(발해사)는 "이번 발굴을 통해 서고성이 중경현덕부의 옛터라는 학설이 정설로 굳어졌다고 본다"면서 "발해 연구를 위한 자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학계에서도 서고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밖에 "서고성 성터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 성터의 도성 건설에 중원 한문화의 선진적인 도성 건설 경험과 영양분을 대량으로 흡수ㆍ섭취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하고 했다.

또 "여덟 잎 연꽃무늬 기와는 발해인들이 다소간 중원지구 육조(六朝) 연꽃무의 기와의 모티브와 도안을 직접 차용한 것"이며 "서고성에서 발견된 치미(망새)역시 육조와 수ㆍ당 시기의 치미가 갖고 있는 형태적.구조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 서고성 = 서고성 성터는 두만강의 최대 지류인 해란강 중류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관통하는 터우다오(頭道)평원 서북부의 개활지와 구릉에 걸쳐 자리잡고 있다. 평균해발은 320m. 동남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해란강이 흐른다.

직사각형인 성터는 내성와 외성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고, 내성은 외성 북반부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 총면적은 약 0.46㎞이고, 외성의 전체 길이는 2천720m, 내성의 전체 길이는 992.8m이다. 중국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주로 다섯 곳의 궁전터와 그 부속건물터, 외성 성벽과 남문(南門)터, 내성 성벽 사이벽과 문터에 대한 발굴작업을 벌였다.

중국 당국은 1981년 서고성 성터를 지린성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한 데 이어 1996년에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보호ㆍ관리하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격상시켰다. 2000년에는 3개년 계획으로, 2004년에는 2개년 계획으로 서고성에 대한 본격적인 고고발굴작업을 벌였다.

2005년에는 서고성 외성 북벽 인근을 통과하는 옌지(延吉)-허룽 1급도로를 140-180m 북쪽으로 이동시켜 확장했고, 지난해에는 서고성 성터를 보호하기 위해 내성과 외성의 농경지를 모두 정리하는 동시에 62가구를 모두 다른 곳으로 이주시켰다.

일부 관측통들은 이러한 조치에 대해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경용천부 유적지 등 일련의 발해 시대 유적지와 함께 서고성을 복원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기 위한 준비작업일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

don@yna.co.kr 



중경 - 서고성 목록   http://tadream.tistory.com/14377
발해의 지방과 성 목록 http://tadream.tistory.com/4502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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