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naver.com/spiritcorea/130070697727
"하나도 모르고 쓰는 역사 이야기<106>후고려기(後高麗記)(19) - 광인"에서 팔련성 관련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팔련성

덕종은 이듬해인 흥원 2년(785)에 다시 연호를 정원(貞元)으로 고쳤는데, 이 연호는 804년까지 쓰였다. 이 시기에 맞춰서 흠무왕은 상경을 떠나 동경으로 '환도'하기에 이른다.
 

<동경성의 항공지도. 지금의 길림성 혼춘 팔련성 소재.>

 
지금까지 잘 살아오던 상경을 버리고 동경으로 천도한 이유를 이제와서 밝히기에는 문헌이 너무 모자란다. 다만 흠무왕이 천도한 '동경' 즉 동경용원부의 치소는 유득공이 《발해고》를 지을 때에는 동경성의 위치를 봉황성으로 비정했다가, 나중에 수정하면서 함경북도 경성이라고 했는데 (북한에서는 함경북도 청진의 부거리를 동경용원부로 지목하고 있다) 지금의 길림성 혼춘에 있는 팔련성으로 보고 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7.5km쯤 가면 두만강이 나오고, 이 강변에 온특혁부(溫特赫部) 성이 있다. 동서로 468m, 남북으로 710m 되는 장방형 토성인데 발굴조사로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고려와 발해, 나아가 요나라나 금나라 때까지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고려 때부터 이곳을 사용했던 것은 사실인 반면에 팔련성은 발해에서 새로 쌓은 성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팔련성을 쌓아 발해 조정이 '새로운 동경'을 조성하기 이전의 '옛 동경'이 이 온특혁부 성이라는 얘기다.
 

<팔련성에서 나오는 와당은 대부분 상경성의 것보다 늦은 시기의 것들이다.>
 
팔련성은 혼춘하와 두만강 사이에 있는 삼각평원지대 서북쪽, 길림성 혼춘시 국영우량종농장 남부 경작지에 있다. 동쪽으로는 산맥을 경계로 연해주(러시아령)와 마주보고, 서북쪽으로는 노야령 산맥이 이어져 있는데, 여기서 확인된 유적으로는 팔련성을 비롯해 영성자성ㆍ석두하자성ㆍ온특혁성 등 평지에 쌓은 성이 네 곳, 산성이 두 곳, 절터(사당 포함)가 네 곳, 탑터가 한 곳, 주거지가 한 곳, 무덤 흔적이 한 곳 발굴되었다.
 
 

성은 남향에서 서쪽으로 10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바깥을 외성(외성)으로 둘러싸고 안에 여러 개의 내성(內城)을 쌓았는데, 지금 남아있는 외성의 전체 길이는 2,894m.(북쪽 712m, 남쪽 701m, 동쪽 746m, 서쪽 735m) 성벽마다 문터의 흔적이 남아있고 외곽에는 해자를 둘러쳤다.
 
'팔련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성의 구획된 구조 때문이다. 북쪽벽에서 132m 되는 곳에 동서로 북쪽벽과 평행을 이룬 성벽이 있고 여기까지를 성의 '북쪽구역', 북쪽구역의 남쪽벽 중심부에 세 개의 작은 구역이 남북방향으로 연이어 있는데 이것이 제1, 제2, 제3구역이고 한데 묶어서 보면 '중심구역'을 이루며, 중심구역 좌우로 성벽을 쌓은 '동쪽구역'과 '서쪽구역'이 있으니(각자 '작은구역' 두 개씩으로 이루어졌다) 북쪽구역ㆍ중심구역(3)ㆍ동쪽구역(2)ㆍ서쪽구역(2)로 1 + 3 + 2 + 2 = 8. 여덟 개(八)의 구역이 서로 이어져 맞닿아(連) 있는 곳이 바로 동경용원부의 치소인 것이다.
 
동경용원부의 중심부 즉 궁성은 네모진 동경성 한가운데에 있다(일본 후지와라쿄藤原京처럼). 둘레길이가 1,072m로 동서 318m, 남북 218m로 남쪽 성벽 한가운데 약 80m 되는 곳이 안쪽으로 5m 가량 들어갔고 그 가운데 너비 25m 정도의 대문터가 있다. 여기서부터 남쪽으로 직선으로 쭉 그으면 그게 곧 동경성의 '주작대로'가 되는 셈이다.
 
 
 
궁성구역 안에서도 건물터가 확인됐는데 기단부를 자갈하고 황토를 섞어 다졌다. 주춧돌이 원래 위치에서 이동된 듯한 흔적이 없진 않지만 건물크기를 추정할 때 동서 45m에 남북 30m, 높이 2m 정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지금 남아있는 '팔련성' 즉 동경성의 규모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동경성의 '내성'에 불과하며, 바깥에 진짜 '외성'이 더 있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원래 팔련성 남쪽벽 바깥에는 동서로 긴 외성벽이 하나 더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는 보고 기록이 있다.
 
《당서》에서는 흠무왕이 동경으로 천도한 것이 정원 연간이라고만 기록해놨지 정확히 어느 시점에 동경으로의 천도를 실행했는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동경으로의 천도에는 흠무왕 치세 말년에 벌어졌던 모종의 '정치적 암투'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만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발해 국왕들 가운데 가장 오래 재위한 것으로 기록되는 흠무왕의 재위 기간 동안에 다른 황족들이 불만을 품지 않았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가독부가 빨리 죽어줘야 자신들이 기를 펴고 살아도 살고, 차기 대권을 노릴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흠무왕 사후 발해 조정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동경 - 팔련성 목록  http://tadream.tistory.com/14376
발해의 지방과 성 목록 http://tadream.tistory.com/4502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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