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이 반란을 꾀하다가 처형당하다 ( 684년 11월(음) )
한국사DB > 고대사료DB > 삼국사기 > 신라본기 제8 > 신문왕(神文王) > 대문이 반란을 꾀하다가 처형당하다
十一月, 安勝族子將軍大文, 在金馬渚謀叛, 事發伏誅. 餘人見大文誅死, 殺害官吏, 據邑叛. 王命將士討之, 逆闘幢主逼實死之. 䧟其城, 徙其人於國南州郡, 以其地爲金馬郡. 大文或云悉伏.
11월에 안승(安勝)의 조카뻘[族子] 되는 장군(將軍) 대문(大文)註 001이 금마저(金馬渚)註 002에서 반란을 꾀하다가 일이 발각되어 처형당하였다. 남은 사람들이 대문이 목 베여 죽는 것을 보고, 관리들을 죽이고 읍[邑城]을 장악하고 반란을 일으켰다.註 003 왕이 장사(將士)들에게 명하여 이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맞서 싸우던 당주(幢主)註 004 핍실(逼實)註 005이 전사하였다. 그 읍성을 함락하여 그곳 사람들을 나라 남쪽의 주(州)·군(郡)으로 옮기고註 006 그 땅을 금마군(金馬郡)으로 삼았다대문(大文)은 혹은 실복(悉伏)이라고도 이른다.註 007.註 008
주
註) 001
대문(大文): 대문은 보덕국왕(報德國王) 안승(安勝)의 조카뻘로서 신라 정부가 신문왕 3년(683) 10월 보덕국을 해체하고, 안승을 신라 왕경(경주)으로 옮겨 살게 하자, 이에 반발하여 신문왕 4년(684)에 반란을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註) 002
금마저(金馬渚):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 해당한다. 본서 권제36 잡지제5 지리3 전주(全州) 금마군조에 “금마군은 본래 백제 금마저군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금마군(金馬郡)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註) 003
남은 사람들이 …… 반란을 일으켰다: 본서 권제47 열전제7 취도(驟徒)조에 “문명(文明) 원년(신문왕4; 684) 갑신(甲申)에 고구려의 남은 적(賊)이 보덕성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전하고, 김영윤(金令胤)조에는 “신문대왕 때에 고구려의 남은 세력 실복(悉伏)이 보덕성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전한다. 대문이 처형된 후에 실복이 보덕성의 유민을 이끌고 신라에 반기를 들었음을 알 수 있다. 김영윤조에 따르면, 이때 실복이 이끄는 고구려 유민은 보덕성에서 가잠성(椵岑城) 남쪽 7리에 나아가 진을 치고 신라 관군과 대치하였다고 하였다. 현재까지 가잠성이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김태식, 1997; 1964), 충북 보은 방면(津田左右吉, 1913; 1964, 155쪽), 충북 진천이나 괴산 부근(문안식, 2006, 388쪽), 경남 거창군(이병도, 1977, 362쪽), 전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나제통문(羅濟通門)’과 연결되는 교통로(윤선태, 2010), 충북 영동군 양산면(전덕재, 2013), 미호천 유역(윤성호, 2017, 218쪽)에 위치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일반적으로 대문과 실복 등은 고구려의 유민으로서 고구려의 계승과 귀속 의식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10여 년간 누려오던 보덕국의 자치권을 신라 정부가 박탈한 데에 대해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임기환, 2004). 이후 신라는 신문왕 6년(686)에 보덕국의 고구려 유민을 중심으로 벽금서당(碧衿誓幢)과 적금서당(赤衿誓幢)을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고구려 유민의 반발을 무마하고, 그들을 신라인과 융합하기 위한 정책과 관련이 깊다고 판단된다.
〈참고문헌〉
이병도, 1977,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문안식, 2006, 『백제의 흥망과 전쟁』, 혜안
윤성호, 2017, 『신라의 한강유역 영역화 과정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1964, 『쓰다 소키치 전집(津田左右吉全集)』 제11권, 이와나미서점(岩波書店)
김태식, 1997, 「백제의 가야지역 관계사: 교섭과 정복」, 『백제의 중앙과 지방』,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임기환, 2004, 「고구려 유민의 활동과 보덕국」, 『고구려 정치사 연구』, 한나래
윤선태, 2010, 「무왕과 미륵사-익산의 역사지리적 환경과 관련하여-」, 『백제문화의 보고, 미륵사』, 국립문화재연구소 국제학술심포지엄
전덕재, 2013, 「가잠성의 위치와 그 전투의 역사적 성격」, 『역사와 경계』 87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1913, 「나제경계고(羅濟境界考)」, 『만선역사지리연구(滿鮮歷史地理硏究)』1(조선역사지리/朝鮮歷史地理)
註) 004
당주(幢主): 540년대 후반 진흥왕 때에 건립된 「단양 신라 적성비」에 ‘추문촌당주(鄒文村幢主)’, ‘물사벌성당주(勿思伐城幢主)’가 전하고, 본서 권제47 열전제7 해론조에서 진평왕 40년(618)에 해론(奚論)이 금산당주(金山幢主)에 임명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이에 근거하여 당주는 중고기에 군의 중심 행정촌에 파견된 지방관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전덕재, 2007, 「중고기 신라의 지방행정체계와 군의 성격」, 『한국고대사연구』 48). 한편 본서 권제47 열전제7 취도(驟徒)조에는 핍실(逼實)이 귀당제감(貴幢弟監)이었다고 전하여 차이를 보인다. 이에 따르면, 핍실이 중고기에 지방관의 하나인 당주에 임명되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본래 핍실이 귀당제감을 역임한 것을 후대에 당주를 역임한 것으로 개서(改書)하였고, 이와 같은 전승이 신라본기에 수용되어 기술된 것으로 이해된다.
註) 005
핍실(逼實): 신라의 왕경(경주) 사량부 사람으로 아버지는 나마 취복(聚福)이다. 성씨는 전하지 않아 알 수 없다. 맏형 부과(夫果)는 문무왕 11년(671)에 웅진(熊津: 충남 공주시)의 남쪽에서 백제부흥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고, 둘째 형 취도(驟徒)는 처음에 승려였다가 환속한 후에 태종무열왕 2년(655) 조천성(助川城: 충북 영동군 양산면)에서 백제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본서 권제47 열전제7 취도(驟徒)조에 신문왕 4년(684)에 고구려의 남은 적(賊)이 반란을 일으키자, 귀당제감(貴幢弟監)에 임명된 핍실이 아내에게 “나의 두 형(부과와 취도)이 이미 나라 일에 죽어 이름을 길이 남겼는데, 나는 비록 어질지 못하나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여 구차히 살겠소? 오늘 그대와 살아서 헤어지면, 결국 사별(死別)하는 것이니, 상심하지 말고 잘 있으시오.”라고 말한 다음, 홀로 반란군 앞에 나아가 용감히 싸워 수십 명을 죽이고 전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신문왕은 핍실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였으며, 취도와 부과, 핍실 등 세 형제에게 모두 사찬의 관등을 추증(追贈)하였다고 하였다. 본 기록에는 핍실이 당주(幢主)라고 전하지만, 열전 취도조에는 귀당제감이라고 전하여 차이를 보인다. 이를 통해 신라본기와 열전 취도조 기록의 저본자료가 달랐음을 엿볼 수 있다.
註) 006
그 읍성을 함락하여 그곳 사람들을 나라 남쪽의 주(州)·군(郡)으로 옮기고: 본서 권제47 열전제7 김영윤(金令胤)조에서 신문왕 때에 고구려의 남은 세력 실복(悉伏)이 보덕성(報德城)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신문왕이 토벌을 명할 때에 김유신의 동생 김흠춘(金欽春)의 손자인 김영윤을 황금서당(黃衿誓幢) 보기감(步騎監)으로 삼았으며, 반란군이 가잠성(椵岑城) 7리에 나와 진을 치고 신라군과 대치하였는데, 이때 김영윤이 반란군에게 나아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신라 관군이 가잠성 7리에 진출한 반란군을 무찌른 다음, 이어 보덕성을 공격하여 함락하고 반란에 가담한 보덕성의 고구려 유민을 남쪽의 주와 군으로 옮긴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註) 007
대문(大文)은 혹은 실복(悉伏)이라고도 이른다: 대문은 안승(安勝)의 조카뻘로서 신문왕 4년(684)에 보덕성(報德城)의 고구려 유민과 함께 신라 정부에 반란을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처형되었고, 이후 실복이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신라 정부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었다. 이에 따른다면, 본 기록의 세주(細注)는 본서의 찬자가 대문과 실복을 동일인으로 착각하여 잘못 기술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註) 008
그 땅을 금마군(金馬郡)으로 삼았다: 본서 권제36 잡지제5 지리3 전주(全州) 금마군조에 “금마군은 본래 백제 금마저군(金馬渚郡)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금마군(金馬郡)으로 고쳤다.”고 전하는 것을 보건대, 신문왕 4년에 보덕성민의 반란을 진압한 뒤에 신라가 보덕성을 금마저군(金馬渚郡)으로 삼았다고 보는 것이 올바르다. 후에 금마저군을 금마군으로 개서(改書)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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