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현장] 농민 울리는 '농지 리모델링'
영산강 준설토 복토 후 벼 생육 저하·고사… 2년째 농사 망쳐
세계일보 | 입력 2013.07.15 19:04 | 수정 2013.07.15 20:19

"문전옥답이 황무지가 돼 버리면서 2년째 농사를 못져 빚더미에 나앉게 됐어요."

14일 전남 나주시 동강면 옥정리 들판에서 만난 이 마을 주민 안승복(56)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한창 자라야 할 모가 누렇게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안씨 논의 벼는 모내기를 마친 지 석달이 돼 가지만 전혀 자라지 않아 모내기 당시 그대로다. 인근 논도 모가 자라지 않아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논바닥을 한 삽 떠 뒤집어 보니 흙이 검은 색으로, 정상적인 농경지의 누런 빛과 대조를 보였다. 4대강 사업인 영산강을 정비하면서 나온 준설토로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을 마친 후 벌어진 일이다. 정부가 영산강 준설토로 저지대의 농경지를 복토해 기름진 땅으로 만들어준다는 말만 믿고 따랐던 농민들은 오히려 농경지를 망쳐놓았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더욱이 2년째 벼가 고사되는 명확한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해 앞으로 어떤 피해가 더 나올지 몰라 농심이 타들어가고 있다.

나주 옥정지구 인근 들판에서 벼가 정상적으로 자라 바닥 흙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벼 잎이 무성한 반면(오른쪽) 한쪽선 한 농민이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 이후 고사돼가는 모를 보며 한숨을 짓고 있다.

◆문전 옥답이 황무지로… 걱정만 커져

영산강 간척지인 나주 옥정지구는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2010년 농경지 리모델링을 했다. 영산강을 정비하면서 나온 준설토로 저지대 농경지의 침수예방을 위해 지반을 높이는 복토작업을 한 것이다. 리모델링 사업 대상지는 옥정리 들판 전체 면적 71.4ha 가운데 60.4ha 256필지다. 시행기관인 익산지방국토관리청과 전남도, 한국농어촌공사는 2010년 6월부터 2012년 6월까지 2년간 영산강 하천 정비로 생긴 준설토 66만7000㎥를 옥정리 농경지의 복토 작업에 활용했다. 리모델링 사업에 든 사업비 89억6600만원은 전액 국비로 지원됐다. 농경지 맨 위의 흙인 표토를 걷어낸 뒤 준설토를 넣고 다시 그 표토를 덮는 작업이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이다. 이 사업을 마치면 저지대의 농경지 지반이 1m 정도 높아져 침수피해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농경지 리모델링을 끝낸 옥정지구 들판에서는 애끓는 듯한 농민의 한숨소리만 나오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벼가 모가 자라지 않거나 누렇게 죽어가는 피해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벼 수확이 리모델링 전보다 절반으로 뚝 떨어져 풍년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올해도 풍년가를 부르지 못할 상황이다.

7, 8월의 뙤약볕을 받으며 한창 자라야 할 벼가 모내기 수준에 머물러 수확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옥정지구에서 남의 논을 빌려 농사를 짓는 임차농가들은 빚더미에 나앉을 판이다. 임차농가들은 200평당 25만원 정도의 임차료를 내고 농사를 짓고 있지만 지난해 이어 올해 수확이 불확실해 고스란히 빚으로 남게 됐다. 더욱이 지금까지 들어간 영농비까지 빚에 더해지면서 생계조차 막막하게 됐다.

옥정지구 들판의 절반가량은 이씨처럼 임차농이다. 올가을 수확기에 임차료를 놓고 소유주와 임차농 간의 분쟁이 우려된다.

농민들은 이미 지난해 리모델링 사업의 준공이 늦어지는 바람에 모내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큰 피해를 보았다. 당초 리모델링 사업은 2011년 12월 30일 마치기로 했지만 준설토를 구하지 못하면서 모내기가 한창인 2012년 6월30일에나 완공됐다. 준공일자가 늦어지면서 복토 이후 충분한 다짐기간을 거치지 않아 옥답은 수렁논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농어촌공사-농민 원인 둘러싸고 2년째 공방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을 마친 지 2년째를 맞고 있지만 아직까지 벼의 고사 원인을 규명하지 못해 농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농민들은 리모델링 사업 후 생긴 벼 고사 현상 원인으로 염분이 섞여 있는 영산강 준설토를 꼽고 있다. 영산강은 당초 바닷물이 드나들었지만 목포 하굿둑을 설치하면서 하천으로 변해 준설토에는 염분이 많이 들어 있지만 어떤 여과 과정 없이 준설토를 그대로 옥정지구에 사용했다는 게 농민들의 주장이다. 농민들은 지난해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 초기에 준설토가 복토용으로 적합하지 않은 '개흙'이라며 반입을 반대했다.

전남도와 농어촌공사가 최근 농경지 시료 채취 검사 결과도 농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번 검사에서는 염분 농도가 평균 5.6ds/m(미터당 데시시멘스)로 기준치 1.56ds/m보다 3배 이상 높게 나왔다. 또 ph는 4.0의 약산성으로 벼농사에 적합한 기준인 ph 5.5∼6.5보다는 낮은 편이다. 이처럼 옥정지구의 농경지가 각종 조사에서 염도와 ph가 기준치보다 높거나 낮게 나온 것이다.

전남도농업기술원 관계자는 "각종 검사 결과를 보면 농사를 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농경지라는 것이 확인됐다"며 "복토나 객토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 같은 염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남도와 농어촌공사는 벼 피해 현상이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준설토에 문제가 있다면 리모델링 사업을 한 농경지 전체에서 피해가 발생해야 되는데, 벼 이상 발육 현상은 일부에 불과해 준설토와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각종 검사 결과를 보면 염분 농도가 높게 나오고 있다"며 "옥정지구의 경우 간척지로 원래부터 염도가 높은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 문제는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농민들이 4월 농어촌공사를 상대로 영농손실보상금 청구 소송을 냈기 때문이다.

나주=한현묵 기자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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