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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의 실제 주인공 백파선은 서글프다, 왜?
[사극으로 역사읽기18] MBC 드라마 <불의 여신 정이> ①
13.07.15 11:35 l 최종 업데이트 13.07.15 11:35 l 김종성(qqqkim2000)

▲  <불의 여신 정이>의 주인공인 정이(문근영 역). ⓒ MBC

MBC <불의 여신 정이>는 조선 선조·광해군 시대의 여성 도자기 기술자를 소재로 한 드라마다. 주인공 정이(문근영 분)는 정상급 기술자인 이강천(전광렬 분)의 딸이지만, 그 사실을 모른 채 이강천의 라이벌인 유을담(이종원 분)의 딸로 성장한다. 

정이는 이강천의 정실부인의 몸에서 태어난 딸이 아니다. 이강천과 여자 후배 사이의 강압적이고 부적절한 관계에서 태어났다. 정이가 태어나기 직전에 이강천은 정이 모녀를 함께 죽이려 했다. 결국 정이 어머니는 죽었지만, 정이는 유을담의 도움으로 살아나 그의 손에서 성장한다. 

정이의 친부인 이강천은 도자기 자체보다는 출세에 눈이 먼 사람이다. 반면에, 양부인 유을담은 출세보다는 도자기 자체에 열정을 쏟는 사람이다. 그는 정이를 친딸처럼 키우면서 도자기 기술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도자기에 관심이 없었던 정이가 친부의 핏줄과 양부의 교육에 힘입어 점차 기술자로 성장한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줄거리다.

일본으로 끌려간 기술자들

<불의 여신 정이>의 실제 주인공인 백파선(1560~1656년)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어찌 보면 상당히 서글픈 일이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일본을 능가했던 한국의 경제력이 18세기 후반부터 일본에 뒤지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단서가 그의 삶 속에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백파선은 임진왜란(1592~1599) 때 남편인 김태도와 함께 일본에 끌려간 여성 도자기 기술자다. 그의 신상에 관한 정보는 대마도 동남쪽인 규슈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규슈섬의 서북쪽인 사가현의 보은사(일본명 호온지)에는 백파선의 법명인 만료묘태도파에서 이름을 딴 만료묘태도파지탑(萬了妙泰道婆之塔)이란 비석이 있다. 필자는 백파손의 후손이 운영하는 도자기 회사인 일본 심해상점의 홈페이지(http://www.enogu-fukaumi.co.jp)와 한국일어일문학회가 2002년에 발행한 <일어일문학> 제42집에 실린 노성환의 논문 '일본 사가현 아리타의 조선 도공에 관한 일고찰'에서 비석의 내용을 확인했다.   

백파선이 사망한 지 50년째인 1705년에 증손자인 심해당선(深海棠仙)에 의해 세워진 이 비석에서는 "증조모의 이름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름을 알 수 없다고 했으니, 백파선은 실명이 아닌 것이다. 


▲  김태도의 아역(박건태 분)과 정이의 아역(진지희 분). ⓒ MBC

그럼 백파선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비석에서는 "증조모는 얼굴이 온화하고 귀가 축 늘어졌으며 성격이 자애로웠기 때문에, 후손들이 존경하는 마음에서 백파선(百婆仙)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백파선은 칭호에 불과하다. 그의 실명을 모르는 후손들이 그런 칭호를 붙였던 것이다. 

그런데 백파선의 비석을 세운 증손자의 이름이 심해당선이다. 증손자의 성씨가 심해(深海)가 된 것은 백파선·김태도 부부가 조선 심해란 곳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심해란 지명은 없었다. 

심해의 위치에 관해서는 역사학자 김문길의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심해를 경상도 김해로 추정했다. 김태도의 고향인 김해가 심해로 잘못 발음되고, 이것이 일본에서 이 부부의 성씨가 되었다는 것이다. 김문길에 따르면, 김태도는 김해 상동면 대감리 출신이다. 

<불의 여신 정이>에서는 왕자 광해군과 궁궐 사람들이 정이 즉 백파선의 집에 수시로 출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김태도 역시 근처에서 살았던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백파선 부부는 경남 김해에서 살았으므로, 이 부부가 일찍부터 광해군과 인연을 맺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자랑 '아리타 도자기', 그 시작은?

일본으로 건너간 백파선 부부는 처음에는 오늘날의 사가현 다케오시시(市)에 정착하여 도자기를 생산했다. 이곳에서 김태도는 심해종전(深海宗傳)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임진왜란 종전 19년 뒤인 1618년에 김태도가 사망하자, 백파선은 인근 지역인 오늘날의 사가현 니시마츠우라군(郡) 아리타정(町)으로 이주했다. 당시의 아리타에는 조선인 기술자인 이참평에 의해 이미 도자기 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백파선이 그리로 이주한 것은 그곳 토질이 도자기 생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백파선은 자기 가족만 데리고 아리타에 간 게 아니다. 노성환의 논문에 인용된 김태준의 논문 '고려 자손들과 일본의 도자 문화'에 따르면, 백파선은 기술자 906명을 거느리고 아리타로 이주했다. 대규모 기술자들이 함께 이주했다는 것은, 이들이 아리타에서 이참평 집단에 흡수되기보다는 별개의 집단을 이루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이참평 못지않게 백파선도 아리타 도자기로 대표되는 일본 도자기의 발전에 기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파선은 이참평과 함께, '메이드 인 재팬' 도자기가 '메이드 인 차이나' 도자기를 추격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의 경기도자박물관 분원백자자료관에 전시된 조선시대 백자 파편. 이곳은 조선시대에 백자를 굽던 가마터였다. ⓒ 김종성

임진왜란 당시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도자기 하면 '메이드 인 차이나'가 단연 독보적이었다. 도자기는 차·비단과 더불어 중국의 전통적인 3대 수출품이었다. 

조선의 경우에는, 무역 상대국이 중국·대마도·일본·오키나와에 한정된 탓에 '메이드 인 조선' 도자기를 세계적 브랜드로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조선 도자기는 품질의 우수성과 관계없이 동아시아 시장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대마도와 일본을 각각 열거한 것은 1869년 이전의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양쪽의 속국으로서 사실상의 독립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조선에 밀렸던 일본 도자기 산업이 17세기 중반부터 동아시아를 벗어나 세계 시장에 진출한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6세기 후반의 임진왜란을 틈타 백파선·김태도·이참평 같은 조선인들을 끌고 가서 일본 도자기 산업의 초석을 놓은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와 함께, 16세기 초반부터 전 세계 바닷길이 통합된 것도 일본에 행운으로 작용했다. 바스코 다가마, 콜럼버스, 마젤란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전 세계에는 하나의 통합된 바닷길이 존재하지 않았다. 여러 개로 구획된 바닷길들이 저마다 제각각 활용되고 있었다. 

바닷길이 통합되기 이전에 일본은 안정적인 무역관계를 구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용할 수 있는 바닷길이 한정된 데다가 대륙국가인 조선과 중국이 대일 무역관계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명나라의 경우에는 일본 무역선이 10년에 한 번씩만 중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대명회전>이란 행정법전에 못을 박아 놓았다. 이 규정을 어기고 8년 만에 중국에 들어갔다가 쫓겨난 일본 무역선도 있었다. 이렇게 대륙의 견제를 받았기 때문에, 바닷길 세계화 이전의 일본은 경제적으로 심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 해적 왜구가 기승을 부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일본의 급성장에 기여한 조선 도자기 기술

그런데 16세기 초반부터 세계 바닷길이 통합되자 일본은 조선·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동남아·남아시아·중동·유럽과의 무역을 늘렸다. 이렇게 무역 루트가 확장되면서, 조선인들이 만든 '메이드 인 재팬' 도자기도 세계적 판로를 얻게 되었다. 이처럼 조선인 기술자와 바닷길 통합을 비롯한 복합적 요인들 덕분에 일본 도자기 산업은 세계 시장에 진출하여 중국 도자기와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백파선을 비롯한 조선인들이 일본 도자기에 얼마나 큰 공헌을 했는가는, 백파선이 활동하던 시기인 1645년경부터 일본이 중국제 도자기 수입량을 80%나 줄인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조선인 기술자들 덕분에 일본이 도자기 내수화에 성공했던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1650년대 후반부터 일본제 도자기는 아시아·중동유럽 시장에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이 중국 못지않은 도자기 수출국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도자기를 비롯한 일본 상품의 세계시장 진출은, 동아시아 변방에 불과했던 일본이 18세기 후반에 조선을 제치고 19세기 후반에 청나라마저 제치고 아시아 경제의 최강이 되는 데 기여했다. 

백파선의 삶은 여성 도자기 기술자의 삶이라서 중요한 게 아니다. 그의 삶은,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제치고 세계적 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그의 삶은 한국인이 보기에는 상당히 서글픈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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