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59039

공주의 도공 이삼평, 아리타 도자기를 만들다
[대한해협과 현해탄 건너뛰기: 큐슈 북부 답사 ⑨] 아리타 1
08.03.20 10:20 l 최종 업데이트 08.04.02 09:19 l 이상기(skrie)

아리타에 정착한 조선 도공들의 자취를 찾아


▲ 도산 신사에서 만난 도자기 도리이 ⓒ 이상기
 
요시노가리에서 아리타(有田) 가는 길은 나가사키(長崎) 자동차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어진다. 야마토(大和)와 다쿠(多久)를 지나 다케오(武雄)에 이르러 차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온다. 차는 다시 35번 국도를 따라 사세보(佐世保) 방향으로 향한다. 이 길은 사세보로 이어지는 기찻길과 나란히 달린다. 요시노가리를 떠난 지 45분 만에 차는 아리타 시내 중심부에 닿는다.
 
아리타는 이마리(伊萬里) 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아리타 강 상류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1만2600명의 소읍이다. 그래서인지 도시가 골짜기를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다. 본행평구(本幸平區)에서 내린 우리는 조선시대 이곳에 정착한 조선 도공들의 자취를 찾아본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이삼평(李參平)이다.
 

▲ 아리타 시내의 이정표 이삼평의 이름이 보인다. ⓒ 이상기
 
우리는 먼저 조선 도공 이삼평을 도조(陶祖)로 모신 '도산(陶山) 신사'로 향한다. 도산 신사는 이곳 시내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100m쯤 떨어져 있다. 가는 길에 우리는 철로를 지나간다. 이 철로는 사세보(佐世保)나 나가사키(長崎)로 가는 기차가 주로 다닌다. 철로를 건너기 전에 도산 신사임을 알리는 석주가 서 있다. 철로 아래를 지나 언덕에 오르자 도산 신사의 도리이가 보이고 그 너머로 본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두 개의 도리이가 차례로 서있는데 앞의 것은 이끼가 끼어 고색창연한 모습이다. 상단에 팔루궁(八樓宮)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뒤의 것에는 도산 신사라는 편액과 함께 상하로 두 줄의 글귀가 선명하다. '향산영요천추옥(鄕山榮耀千秋沃) 홍택분방만고녕(鴻澤芬芳萬古寧)'이라는 글자로, '고향 마을의 영화와 빛남이 천 년간 이루어지고, 큰 은혜와 좋은 냄새가 만고에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 도산 신사 입구의 석조 도리이 ⓒ 이상기
 
도잔 진자를 우리식으로 읽으면 도산 신사
 
도리이를 지나 왼쪽을 보니 도산 신사에 대한 설명이 나무판과 도자기판에 자세하게 되어 있다. 도산 신사의 주제신(主祭神)은 오진천황(應神天皇, 270~310))이고 상전신(上殿神)이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와 이삼평이다. 오진천황은 야요이시대 후반에서 야마토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 왜국의 왕이었고 백제의 왕인박사를 통해 한문학을 수용했다. 그리고 나베시마는 임진왜란 때 이삼평 등 조선 도공을 끌고간 사가번(佐賀藩)의 번주다.
 
도산 신사는 아리타에서 도자기를 만든 할아버지(陶祖) 신들을 위해 1658년 만들어졌다. 특히 이삼평의 혼령이 이곳 아리타 명산(皿山)에 살면서 신명을 불러 일으켜 아리타 도자기가 번창하기를 바라고 있다. 도산 신사의 일본식 발음은 '도잔 진자'이며, 현재는 '수에야마 진자'라 부르기도 한다.
 

▲ 백자로 만든 사자(좌)와 청화백자(우) ⓒ 이상기

현판을 지나면 본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면 다시 도자기로 만든 도리이를 지나 본전으로 가게 되어 있다. 도리이에는 '도산사(陶山社)'라는 현판이 보이는데, 현판을 감싸고 있는 문양과 기둥의 무늬가 참 아름답다. 도자기로 만든 장식은 이것만이 아니다. 도리이와 본전 사이에 큰 청화백자가 하나 세워져 있고, 좌우에는 백자로 만든 사자가 두 마리 신사를 지키고 있다. 도자기 고장다운 모습이다.
 
도산 신사의 본전은 어째 이렇게 쓸쓸한 걸까?
 

▲ 도산신사 본전 ⓒ 이상기

이들을 지나니 세 칸짜리 목조 건물이 우리를 맞는다. 가운데 칸 위로 금줄이 처져 있고, 금줄에는 소원지가 끼워져 있다. 건물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부식되어서인지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으나 잠겨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유리창으로 되어 있지만 어쩐 일인지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다.
 
건물이 서향을 하고 있어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빛이 비쳐든다. 2월 하순의 찬 기운과 은은한 석양빛이 비쳐들어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이곳을 찾는 사람도 우리 일행 밖에는 없다. 그나마 봄을 알리는 매화꽃이 있어 쓸쓸함이 조금은 상쇄된다. 본전 뒤로 가니 곡물의 신들을 모시는 작은 규모의 또 다른 신전이 보인다. 이곳은 일본 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나무와 기둥에 붉은 색을 칠했다. 본전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 이삼평비에 오르면서 내려다 본 아리타 ⓒ 이상기
 
이곳에서 우리는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이삼평비를 찾아간다. 신사에서 비까지는 가파른 산길로 300m를 올라가야 한다. 또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S자형으로 왔다갔다 올라가야 한다. 산에 오르면서 보니 저 아래로 아리타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아리타는 산 속에 둘러싸인 아주 작은 소읍이다. 만약 이곳에 도자기 산업이 번창하지 않았다면 시골의 작은 마을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도공 이삼평이 이곳에서 고령토를 발견하여 도자기 산업을 일으킴으로써 경제력을 가진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산에 오르면서 보니 서쪽 산으로 해가 내려가면서 붉은 빛을 토해낸다. 우리가 요시노가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곳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벌써 해가 지고 있는 것이다. 방향을 돌려 위쪽을 보니 저 멀리 도조 이삼평비가 보인다.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좁아져 사각뿔을 모양을 하고 있는 비로 파란 하늘과 저녁의 어스름과 어울려 예술적인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비까지는 아직 2층의 계단을 더 올라가야 한다.
 

▲ 아리타 산 너머로 떨어지는 해 ⓒ 이상기
 
이삼평 비석에서 보고 느낀 것     
 

▲ 쌍사자석등 뒤로 비가 보인다. ⓒ 이상기
 
계단을 한 층 올라가니 가운데 쌍사자석등이 있고 좌우로 계단을 통해 다시 또 한 층을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쌍사자석등은 일본 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등롱과는 다른 우리의 양식이다. 계단을 오르니 화강석에 위에서 아래로 써내려간 '도조이삼평비(陶祖李參平碑)'라는 예서체의 반듯한 글씨를 볼 수 있다. 일본 땅에 와서 한 개인을 기리는 이렇게 큰 비석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또 이 비석을 통해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된다. 만약 이삼평이 조선의 도공으로 평생을 살았다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 고향인 공주 땅 어딘가에 묻혔을 텐데, 일본에 포로로 잡혀옴으로써 그의 이름이 일본과 유럽에까지 알려지고 신사에까지 모셔지게 되었으니 아니러니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그리고 조선 중기의 도공치고 지금까지 이름을 남긴 이 그 어디 있단 말인가? 고향에서는 잊혀진 이삼평이 이곳에서는 신이 되어 있었다.
 

▲ 도조 이삼평비 ⓒ 이상기
 
도조 이삼평(1579~1655)은 공주군 반포면에서 태어나 도공으로 활동하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사가번 번주(藩主) 나베시마 나오시게의 포로가 되었으며 1598년 일본의 가라쓰(唐津)에 상륙하였다. 그는 1605년 도공들을 이끌고 아리타의 뎅구다니(天狗谷)에 정착했으며, 1616년 근처의 이즈미야마에서 고령토를 발견함으로써 뎅구다니요를 열 수 있었다. 이때부터 아리타 도자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아리타 지역이 일본 도자기의 원조가 되기에 이른다.
 
이곳에서 만든 도자기는 지명을 따 아리카 도자기로 이름 붙여졌으며, 12km 떨어진 이마리(伊萬里) 항을 통해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아리타 도자기는 반출항의 이름을 따 '이마리 도자기'로 불리기도 한다. 아리타 도자기의 명성은 점차 일본을 찾은 유럽 사람들에게 알려져 유럽에까지 수출되기에 이른다. 더욱이 아리타 도자기는 독일의 마이센 지역으로 들어가 유럽 최초의 도자기가 만들어지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를 인연으로 아리타시와 마이센 시는 현재 자매도시가 되어 교류를 계속하고 있다.
 

▲ 전기줄과 철로 그리고 도리이 너머로 보이는 도산 ⓒ 이상기
 
아리타에 정착한 이삼평은 이름을 일본식인 카나가에 산페이(金ヶ江三兵衛)로 바꾸고 도자기 제작에 온 정열을 바쳤던 것 같다. 아리타 시민들은 그가 가마를 연 지 300년이 되는 1916년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비를 세웠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7년부터 도조제(陶祖祭)와 함께 도자기 축제를 열고 있다.
 
나는 비석을 한 바퀴 돌면서 사면을 살펴본다. 그러나 특별한 내용은 적혀있지 않다. 전면의 비명, 측면의 건립연월일, 후면의 기부자 명단이 전부다. 그를 기리는 글귀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좀 아쉽다. 아리타가 골짜기 도시인지라 해는 이미 산 너머로 사라졌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비석에도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다. 아직도 2월의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우리는 이삼평 비를 뒤로 하고 아쉽지만 산을 내려온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월23일 큐슈의 아리타를 방문하고 쓴 글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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