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gimhae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28

일본 '아리타 도자기'의 어머니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의 대모 백파선 (1560 ~ 1656)
2012년 07월 19일 (목) 09:57:20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전쟁은 많은 것을 파괴하지만, 한 국가나 지역의 문화를 다른 곳으로 전파하고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임진왜란을 달리 '도자기전쟁'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런 맥락에서다. 전란 중 일본은 조선의 사기장들을 무수히 끌고 갔다. 도자기 생산 기법을 몰랐던 일본은 이들 덕에 비로소 도자기를 생산하게 됐고, 도자기 발전의 혁명적 계기를 맞았다. 일본 규슈 사가현 아리타쵸(有田町)는 일본의 전통 공예품 가운데 하나인 '아리타도자기(아리타야키)'의 산지이다. 그런데 아리타쵸의 조선사기장 중에 '백파선'이라는 조선 여성이 있었다. 아리타쵸 조선사기장들의 대모이자 지도자였던 백파선(白婆仙·1560~1656), 그는 김해 사람이다.


▲ 일본 호온지 경내에 있는 백파선의 법탑(왼쪽)과 뒷편의 설명문. 사진제공=사가현관광연맹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가장 먼저 보낸 전리품이 김해향교의 도자기 제기라는 말이 있다. 왜군이 조선의 도자기를 약탈했고, 900여 명에 이르는 조선의 사기장들을 끌고 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말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주로 규슈를 중심으로 한 서일본지역의 영주들은 경쟁적으로 조선사기장들을 끌고 갔으며, 영지마다 도자기 생산을 위한 요를 만들었다. 현재 규슈 아리타쵸와 혼슈 야마구치현(山口縣)의 도자기가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이는 조선사기장과 그 후예들의 공헌 덕분이다.
 
반면, 조선은 전란으로 인해 전국의 가마터가 파괴되고 사기장들이 대거 일본에 끌려가는 바람에 도자기 발전과 관련해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광해군 시절에는 궁중연례 때 사용할 청화백자항아리가 없어 전국에 수배령을 내려 이를 구하고자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조선이 상당 기간 청화안료를 확보하고 도자기 가마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사가현 타케오 지방의 영주 이에노부에게 끌려간 조선 사기장 중에는 김태도(일본식 이름은 심해종전, 深海宗傳)라는 인물이 있었다. 김태도의 부인이 바로 백파선이다. 김태도와 백파선은 자손들에게 '심해(일본식 발음 후카우미)'라는 성을 물려주었는데, '심해'라는 성에는 고향 김해를 마음 깊이 그리워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니까 심해는 김해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임란때 남편 김태도와 함께 끌려가 사가현 타케오에서 백자 제작 몰두
조선인 이참평 백자도광 발견하자 아리타로 옮겨 아리타 도자기 제작
이참평 죽은 1655년 이듬해 사망, 아리타 보은사 경내 동쪽편에 묻혀
증손자가 50년 뒤 법탑 세워 기려

'백파선'이 본명인지 어떤지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백파선'은 훗날 손자가 붙인 이름이다. 김태도는 백파선과 함께 조선막사발(일본은 가루녹차인 말차를 마실 때 조선막사발을 말차다완으로 썼다)과 향로 등을 만들었다. 이에노부 영주에게 상납된 말차다완과 향로는 걸작이었다고 한다. 김태도와 백파선이 사용한 요는 우치다요(內田窯) 또는 쿠로무다요(黑牟田窯)의 원조로 불리고 있다.
 

▲ 이참평이 발견한 백자석 도광. 백파선은 이 도광의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었다. <김해뉴스> 김병찬 기자가 지난 2009년 12월 사가현에서 직접 찍은 사진. 김태도는 1618년 10월 29일 세상을 떠났고, 남편이 죽은 후에도 백파선은 아들 종해(일본 이름 헤이자에몬)와 함께 백자 제작에 몰두했다. 그러나 조선과 타케오 지방의 토질이 달라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가 없었다. 백파선은 영주의 허가를 얻어 조선사기장 일족을 데리고 아리타로 옮겨 도자기 제작을 계속했다.
 
분청도자기축제 추진위원회 위원인 이우상 한국국제대학교 호텔관광학과 교수는 "아리타도자기 발전의 최대 공로자로서 일본 도예업자들이 숭배하는 이참평(李參平)이란 인물이 있는데, 1616년 아리타의 이즈미야마(泉山)에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백자석(白磁石) 도광을 발견했다. 백파선은 이참평이 발견한 이 백자석 도광 때문에 타케오에서 아리타로 옮겨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참평이 발견한 백자석 도광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이 곳의 백자석은 외부 유출이 철저히 금지돼 있다. 
 
백파선은 아리타에서 조선사기장들과 함께 백자 도자기 제작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연대 기록을 보면 백파선은 이참평과 약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아리타 지역에서 함께 도자기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참평은 1655년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 3월 10일에 백파선이 96세라는 긴 인생의 여정을 마감했다.
 

▲ 백파선의 후손이 만든 작품. 백파선은 온화한 얼굴에 귀에서 어깨까지 내려오는 귀걸이를 했으며, 큰 소리로 웃었고, 사람들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덕을 지녔다고 한다. 효심이 깊은 손자가 그 자취와 덕을 기려 '백파선'이라 칭했는데, 그게 이름처럼 되어버렸다. 이우상 교수는 "백파선은 96세까지 장수하며 조선의 사기장들을 이끌어 왔으니, 백발이 성성하고 또 성스러운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백파선이라는 이름에서 그런 모습을 연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백파선이 죽자 그의 공적을 기려 '아리타 도업의 어머니'라 불렀고, 지금도 아리타쵸의 주민들은 그를 기리고 있다. 또한 후손들은 김해의 지명을 딴 '심해'를 성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우상 교수는 "백파선의 후손 중 실제로 도자기를 만든 세대는 13대까지로 보인다. 후카우미 요시하루 씨 등 현재 아리타쵸에 있는 후손들은 도자기 상사와 가게를 운영 중이다"라고 전했다.
 
이참평·백파선 외에도 수많은 조선의 사기장들이 아리타로 이주해 살았으나 이름을 오늘날까지 전해주는 이는 드물다. 그들은 아리타의 호온지(보은사) 경내에 있는 작은 바위산인 관음산에 올라 고향쪽 하늘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랬고, 그 한을 도자기 안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백파선은 호온지 경내의 동쪽편 땅에 묻혔다. 백파선을 기리는 법탑 '만료묘태도파지탑(萬了妙泰道婆之塔)'이 그가 죽은 지 50년이 지난 1705년 3월 10일, 증손인 심해종선에 의해 세워졌다. 140㎝ 정도 높이의 이 탑에는, 지난 몇 백년의 세월을 웅변하듯 푸른 이끼가 끼어있다. 한국 관광객들은 물론, 도자기를 사랑하는 많은 관광객들이 이 법탑 앞에서 백파선을 기리며 참배를 하고 있다.
 
호온지의 주지스님은 매월 말 아침 독경 시간에 백파선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 "아리타의 은인이시여! 수호신이여! 도자기가 번성하도록 지켜주소서"라고 기도한다.

▶'사기장'이란
일본에서는 보통 '도공'이라 하는데, 우리나라 고문헌은 사기장이라 쓰고 있다. '차사발 명장'인 김해 지암요의 안홍관 작가는 이 시기 장인들이 사용한 흙의 성질과 작품의 성격상 사기장이라 부르는 게 적절하다고 말한다. 이 기사에서는 사기장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2005년 초연 후 일본 전역서 150회 공연된 뮤지컬 '백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들의 삶과 갈등



백파선은 도자기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인물이다. 일본의 작가 무라타 키요코는 백파선을 주인공으로 해 조선에서 건너 온 사기장들의 기질과 미학을 담은 장편소설 '용비어천가'를 썼다. 이 소설은 1999년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예술선장 문부대신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다시 요시모토 각본 연출로 극단 '와라비좌'에서 뮤지컬 '백파(햐쿠바·사진)'로 제작됐다. 2005년 5월 8일 아리타쵸에서 초연된 후, 일본 전역에서 150회 상연됐다.
 
이 뮤지컬은 일본에 끌려간 조선 사기장의 후손들이 겪는 세대 간, 민족 간 갈등을 그리고 있다. 남편 김태도가 죽었을 때 백파선이 조선식 장례를 원하면서 일어나는 혼란과, 후손들이 조선인과 혼인하기를 원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을 풀어냈다. '죽음'과 '결혼'이라는, 사람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일에서 조선과 일본의 이질적 문화와 생각이 충돌한다. 후손들의 생각도 세대 간에 차이를 보인다.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을 담은 뮤지컬이다.
 
가야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숱한 문화와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국의 것으로 만들어갔는지를 엿볼 수 있는 뮤지컬이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