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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국지’ 동이전의 마한 제국 : 마한 54국은 바다와 강을 따라 연결되었다

고고학자 임영진 교수가 본 마한

2020년 01월 29일(수) 00:00 


중국 ‘삼국지’ ‘후한서’에 국명 기재

경기17·충청12·전북11·전남14국 추정

바다와 강을 낀 해양교류 요충지 분포



나주 반남고분군(사적 제513호) 전경. 광주·전남 마한 소국 가운데 중심이 되는 소국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 문헌에 기재되어 있는 마한 제국의 명칭


기원전 3세기초 발해만 지역 고조선인의 디아스포라로 인해 아산만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성립되었던 마한 사회는 점차 주변지역으로 확장되어 나갔다. 3세기 후엽에 작성된 ‘삼국지’에는 50여국이 있었다고 하면서 목지국, 백제국 등 55국이 기록되어 있고, 5세기 중엽에 쓰인 ‘후한서’에는 54국이 기록되어 있어 학계에서는 ‘후한서’ 기록이 정확한 것으로 본다.


마한 54국의 위치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매우 크지만 적지 않은 견해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문헌에 기재된 한자 국명들이 지금의 어느 지명에 해당하는지가 관건인데 한자 발음의 유사성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가려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국과 소국 사이의 규모와 구조 차이에 대한 기록도 남아 있지만 각국의 위치를 파악하는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고학적으로도 54국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한 전체 지역에 대해 균등한 조사가 이루어졌다면 손쉽게 54개 지역을 선별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균등한 조사가 이루어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아있는 기록을 바탕으로 54국의 평균적인 규모나 성격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그에 합치되는 고고학적 증거가 확인된 지역들을 선정해 나가야 한다. 그에 앞서 경기·충청·전라지역에 걸쳐있는 54국을 권역별로 나누어 파악한다면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삼국지’에 나열된 마한 제국의 명칭.


◇ 권역별 마한 제국의 분포


마한 54국은 3세기와 5세기에 기록된 것이므로 권역별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고고학 자료를 이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조사된 당시 자료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자료까지 활용해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마한 54국들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만 백제 지방 조직의 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마한을 토대로 성장하였던 백제의 지방 조직은 521년에 22개 담로였다가[중국 양직공도 기록] 660년 멸망시에는 37군으로 변해 있었지만[삼국사기 기록] 언제,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백제 37군이 신라에 병합된 다음 웅주 13군(충청권), 전주 10군(전북권), 무주 13군(전남권)으로 개편되었던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웅주와 전주를 합하면 23군인데 이는 22개 담로와 상통한다. 당시의 인구 밀도와 고고학 자료를 감안하면 전남권은 22담로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전남권의 마지막 마한 제국은 530년경에 백제에 편입됨으로써 기존 22개 담로에 새로운 15개 단위지역이 합해져서 37군으로 편성되었다고 판단된다(백제 편입 시기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로 다룰 예정임).


이는 3세기대 54국이 개별 권역에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주며, 충청권에 12국, 전북권에 10국, 전남권에 15국 정도가 있었음을 암시한다. 54국 가운데 나머지 17국은 경기지역에 해당하는데 이는 475년 고구려가 백제로부터 빼앗은 다음 16개 행정구역을 두었던 사실과도 맞아 떨어진다.


고고학 자료로 본 광주·전남 14개국 추정 위치.


◇ 광주전남지역 마한 제국의 분포


지면 관계상 가장 늦은 시기까지 남아 있었던 전남권 15국의 분포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이 지역에는 고고학적으로 전북 고창지역이 포함되므로 광주·전남지역에는 14국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조사된 고분 가운데 목관묘, 옹관묘, 영산강식 석실묘는 마한 제국이 남긴 것인데 서부지역에 9개, 남해안지역에 5개 지역이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이 14개 지역은 6세기 중엽부터 백제식 석실묘의 중심지에도 해당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단위 지역을 이루고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마을 유적에 있어서도 14개 지역은 지역별 중심지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보성강유역, 장성지역, 신안지역 등지도 주목되는데 4세기 중엽 근초고왕의 전북권 병합에 따라 그 지역 마한 세력 일부가 이주해 온 지역도 있다.


청주 송절동에서 출토된 청동방울.


◇ 청동기 시대 사회와의 관계


마한 54개국의 위치에 대해서는 지석묘 사회와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공간적으로 동일한 지역에서 시간적으로 선후관계를 가지는 양자 사이에 전혀 관계가 없을 수는 없다. 농경을 기반으로 발전하였던 지석묘 사회는 새로운 마한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기후 악화로 인해 정체되거나 와해되기도 하였지만 3세기경부터 온난한 환경 속에서 새롭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고고학적으로 보면 김포에서부터 바다와 대하천을 따라 여수·광양에 이르기까지 분포하였으며 물길을 이용한 교류가 중요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미호천을 낀 청주 송절동에서는 ‘王’자를 가진 청동방울이 출토되어 國을 표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고고학적으로 비정되는 각 지역들이 문헌 기록 속의 어떤 명칭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고고학, 문헌학 뿐만 아니라 언어학, 지명학 등 여러 분야가 함께 밝혀 나가야 할 것이다.


임영진 /전남대 문화인류고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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