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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 발해의 외교와 문화에 대한 고찰 - 원광대  http://tadream.tistory.com/7738
* 발해의 외교와 문화에 대한 고찰 - 엄윤희"에서 "3. 발해의 문화" 중 "3) 묘제"을 가져오고 내용에 맞게 제목을 붙였습니다.


발해의 묘제

(1) 유형

그동안 발해 지역에서 조사된 무덤 자료는 적지 않다. 조사된 자료를 종합하면, 축조 재료를 달리하면서 묘제적으로 유형 구분할 수 있는 종류는 석축묘 외에 전축분, 토광묘 등이 있다. 그러나 후자는 소수에 불과하고 오히려 석축묘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이로써 발해 묘제는 석축묘만이 유일의 묘제로 인시되기도 한다. 또한 발해 무덤의 유형에 대한 논의가 다각도로 진행되지만 유형과 형식의 혼동이 있는가 하면, 분류 기준의 마련에 논자 간 차이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묘제 유형의 구분은 단순히 형태적 차이에 근거하는 형식 구분이 아니라 무덤 자체의 근본적 성격 차에 근거하여 실시되어야 한다. 따라서 유형은 묘제적 성격을 구분할 수 있는 상위 개념으로, 형식은 동일 유형 속에서 공통적 요소를 포함하면서 단지 이들 요소의 형태 차만 나타나는 범주에서 구분되는 유형의 하위 개념으로 인정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전제가 혼동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발해 묘제를 유형 구분하기 위해서는 분류 기분을 어떤 것으로 삼아야 하는가의 문제를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동안의 발해 무덤 검토는 대체로 중국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분류 기분으로 삼은 것은 무덤의 규모를 기준으로 한 것과 축조 재료와 외형 및 묘실의 형태를 기준으로 한 것, 그리고 축조 재료만을 근거로 한 것, 이렇게 세 가지 내용으로 요약된다.57)

먼저 무덤의 규모를 기준으로 한 것은 조사된 무덤의 규모를 상대 비교하여 대형, 중형, 소형으로 구분하고, 이를 피장자의 사회 신분의 위계성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묘실의 규모에 따라 무덤을 대 · 중 · 소로 구분하거나 규모 차에 근거, 피장자의 사회 신분을 추정하면서 왕실묘 · 귀족묘 · 평민묘로 구분하는 것은 오히려 유형 구분보다는 형식 구분의 점주에서 이해될 수 있는 내용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유형 구분은 묘제의 특성이 서로 이질적이라는 점에 기저를 두어야 하는데 규모 차는 오히려 피장자의 사회 신분적 위치만을 강조할 뿐이기 때문이다. 묘제는 규모가 다르더라도 공통성이 있을 경우 유형보다는 형식 구분이 오히려 타당하다. 그런데 발해 무덤의 유형화에서 대 · 소의 구분은 단지 규모 차이만 나타낼 뿐이고, 유형화의 정도까지 묘제 차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둘째는 규모는 물론이고 여기에 축조 재료, 외형 및 묘실의 형태 등 구조 특성을 종합하여 유형화하는 것으로, 최근의 발해 무덤 연구에서 상당 정도가 대체로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는 전체적으로 토광묘와 석축묘, 그리고 전축묘로 발해 무덤을 축조 재료에 따라 대분류 하고, 다시 석관과 석곽 그리고 석실이라는 매장부의 형태에 따라 재분류 한 것이다. 이처럼 발해 무덤을 규모와 더불어 축조 재료나 구조 형식 및 규모 등을 종합하여 분류 기준으로 설정하고, 이를 근거한 유형 분류는 발해 무덤을 총체적으로 포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선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에서도 축조 재료를 석축으로 꾸민 유형은 다시 세부 형태로 분류하고 이를 이질적 재료를 사용한 토광묘나 전축묘와 대비하여 이해할 수 있는가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즉, 석축묘의 범위에서 석실 · 석곽 석관 유형을 제시하고 이를 토광묘나 전축묘와 대비하여 하나의 유형으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다음은 축조 재료에 의한 구분이다. 이의 대표적인 견해는 전실 · 석실 · 토광의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어 전실은 무덤탑 혹은 능원식의 여부에 따라 2가지로, 석실은 천정 및 기타 구조적 요소를 결합하여 6가지 형식으로, 토광은 구축의 형태에 따라 3가지 형식으로 구분하여 비교적 세분된 상태로 고찰한 것이다. 이로써 발해 무덤에 대한 체계적 분류와 함께 발해 묘제 전반적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었지만 지나치게 세분한 감도 없지 않다.58)

그런데 기왕에 발해 무덤의 유형화와 관련된 논의를 종합하면 발해 묘제의 유형은 우선 크게 보아 전축분, 석축묘, 토광묘로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유형중에 토광묘는 초기에만 국지적으로 존재한 것으로 보는데 문제가 있다. 물론 석축묘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 전축분의 현황도 하나의 유형화하여 석축묘와 대비하는 데 문제가 없지 않다. 다만 토광묘와 전축분과 같은 자료는 발해 묘제가 매우 다양하게 조영되었음을 나타내는 자료이기에 이들이 발해 사회에서 보다 보편적으로 사용된 흔적이 어느 정도 확인되어 그 보편성만 인정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전축분은 등장뿐만 아니라 사용 주체나 시기상의 특수성을 인정, 이를 예외로 할 수도 있는데 문제는 토광묘가 남는다. 그런데 기왕에 발해 무덤의 조사 정황이나 토광묘로 알려진 자료의 존재 및 그 인식 정도를 감안할 경우 발해 무덤으로 토광묘는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발해의 묘제 유형은 우선 계통상 석축묘, 토광묘, 전축분으로 구분하고 이들 개별 계통 속에서 나름의 형식적 특성에 따라 유형 혹은 형식화가 가능하다. 즉, 석축묘는 무덤의 외형이나 매장부의 형태에 나름의 특징이 있는데, 외형은 봉토가 기본인 점에서 문제가 없으나 부분적으로 적석의 시설이 있기도 하다. 반면에 매장부는 횡혈식이 기본을 이루고 있지만 형태에서 이질적 요소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개별 요소의 유무나 형태 차에 따라 형식을 구분할 수 있다. 한편 토광묘도 육정산고분군의 토광묘나 크라스키노 토광묘는 기본적 형태에 차이가 있어 일단 형식화 할 수 있다. 물론 토광묘와 석축묘는 묘제뿐만 아니라 장제의 기본적 성격도 판이한 것이기에 유형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이들 각 유형의 매정 방식에서 수혈식과 횡혈식의 매장 기법, 다장과 단장의 차이 등은 사안에 따라 유형 혹은 형식의 구분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전축분은 구조 형식에서 석실분과 대동소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무덤탑의 존재 등을 고려할 때 발해 묘제로서 특수성이 있어 일단 유형으로 구분하여야 할 것이다. 즉, 전축분은 축조 재료가 벽돌이라는 특징을 근거로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구조 특성은 오히려 석축묘과 공통성이 많다.59)

(2) 연원

발해 무덤은 석축묘와 토광묘로 대별되고 이 외의 특수 형식으로 전축묘가 있다. 이중 석축묘를 다시 분류하여 석실형, 적석형, 석관형으로 유형화 할 수 있다. 이처럼 발해의 묘제는 계통적 구분과 함께 다시 석축묘가 세분된 유형으로 구분되고 있는 것처럼 단일의 유형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발해의 무덤들의 성격에 대해서, 특히 연원이나 사용 주체에 대해서, 발해 건국 주체가 누구인가의 해명에 초점되어 논의되어 왔다. 이외에 전축분과 같은 것은 발해가 당과의 교류 과정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는 다시 정효공주묘처럼 벽화나 축조술에서 이전 고구려의 봉토석실분의 수법이 상당히 잔존되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전축분의 외형적 구조, 즉 능원식(陵園式)이나 선탑식(禪塔式)의 형태를 근거로 말갈의 무덤 조영 전통을 지적하는가 하면, 오히려 고구려의 적석총 상부 시설에서 그 근거를 찾기도 한다. 이처럼 발해 묘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는 발해의 무덤 연원이나 사용 주체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60)

물론 발해 사회에서 사용된 묘제가 다양하다는 것은 사용 주체의 다양성뿐 아니라 발해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무덤의 구조도 변화 · 발전하였을 가능성도 부인하기 어렵다. 또 무덤의 성격, 즉 무덤은 전통성이 강하다는 점을 전제하면 이들 묘제의 사용 주체가 누구이든 간에 발해 이전의 묘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발해 묘제는 석축묘, 전축분, 토광묘로 분류되는데, 이들 묘제가 어떤 경로를 통해 발해 묘제로 정착된 것인가의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토광묘를 말갈 계통의 묘제에 연원을 두었다고 판단된다. 물론 이는 발해 구성원인 말갈의 묘제가 토광묘라는 점에 근거하는 것이다. 즉, 쑹화강 유역에서 발견된 말갈의 무덤으로 인정되는 토광묘는 대체로 목관 혹은 목곽을 갖춘 토광묘이다. 발해의 성립 초기에는 묘제로써 토광묘가 존재하고, 변경이지만 말기, 혹은 그 이후까지 동일한 지역에서 다수의 토광묘가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발해 사회에서 토광묘가 전 기간에 걸쳐 존속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무덤이 지닌 속성, 즉 강한 전통성으로 말미암아 한 사회 집단이 조영하던 무덤 유형은 변화가 쉽게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일반적 개념을 논외로 하더라도 발해의 멸망 후에 등장하는 요(遼)나 금(金)의 묘제가 석실분 계통이 아닌 토광묘라는 점, 그리고 이들도 발해의 후예이자 말갈의 후예들이란 일반적 사실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일단 토광묘가 발해의 묘제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발해 이전에 존재하던 말갈인의 묘제로도 토광묘가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61)

발해 묘제를 중심으로 이루고 있는 것이 석축묘이고, 이는 고구려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석축묘는 종전에 봉토석실분이란 형태에 근거하여 고구려의 석실봉토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데, 이를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문제도 있다. 즉, 이 발해 석축묘의 연원이 고구려에 있다는 판단은 고구려 후기의 묘제가 석실봉토분이란 사실에 기초한 것이지만, 고구려와 발해 석실분 간의 이질성에 따른 이견도 있어 이에 대한 극복이 필요하다.

발해 초기 석축묘의 구조 형식과 고구려 말기의 봉토 석실분을 대비하고, 그 계승의 정거로 발해 건국 초기의 정효공주묘  등 육정산고분을 예로 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구조 형식에서 고구려의 자료와 밀접한 유사성이 인정되기에 상호 관련을 논급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고구려 말기의 봉토석실분 구조 형식을 기초로 발해 초기 무덤을 대비할 경우 평면이나 축조 형식에서 일정한 차이가 있다. 물론 이는 국지적으로 나타나는 형상이고, 특히 정효공주 묘처럼 지하식으로 인식되던 것이 반지하식으로 재판명 되듯이 조사 자료의 정확도에 문제가 있다. 하지만 고구려 말기의 석실봉토문과 발해 초기의 무덤을 종합적으로 대비할 경우 차이가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발해 석축묘의 연원을 이의 해결 없이 일방적으로 고구려 석실봉토분과 관련하여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다만 고구려 묘제가 초기의 적석총 조영 관습에서 짧은 시기에 석실봉토분으로 완벽하게 전환되었는가의 문제와 전환되었다 하더라고 고구려 묘제의 모두가 주 묘제인 석실봉토분으로 완벽하게 표현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 인정되면 여타의 유형도 고구려 묘제에서 그 연원을 구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62)

먼저 적석총의 경우 고구려 적석총과 연계하여 연원을 구할 수 있는데, 고구려의 적석총 구조 특성을 그대로 모방한 발해 무덤으로 함경도의 궁심고분이 존재하는 점을 주목할 수 있다. 발해의 석축묘에서 적석형이라 분류된 것의 매장 주체부가 적석총의 유형과 유사한 점에 근거한 것으로, 고구려의 적석총 유형에서 동실묘로 구분되는 묘제 유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실묘는 다른 적석총과 달리 묘실을 적석하여 만들고 표면에 성토한 구조로서 봉토 석실분보다 적석총 유형으로 분류되기에 그에 연계하여 발해의 적석형 석축묘의 연원을 고구려 적석총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발해 묘제는 토광묘, 석축묘, 탑을 갖춘 전축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연원은 토광묘나 석축묘는 발해 이전의 고구려 묘제의 범주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고, 전축분으로 구분된 것은 발해의 발전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묘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토광묘는 말갈 문화와 관련하여 설명되지만, 이도 말갈과 고구려의 상관관계가 분명하게 정리될 경우 고구려의 묘제 범위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발해의 문화유산 중 양적으로 가장 풍부한 것이 무덤자료이고 이의 학술적 가치를 고려하면 발해 사회의 단면을 이해하는데 더 없이 유용한 자료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료의 편중성이나 선입견에 따른 해석으로 이의 이해에 적지 않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임을 고려하면 그에 대한 종합적 이해 기반의 마련은 무엇보다 시급한 형편이다.63)

발해의 묘제는 발해국의 계승성과 관련 있듯이 대체로 고구려의 묘제에 연원을 두고 있다. 물론 고구려 묘제의 이해가 지나치게 단선적이란 문제는 있지만 토광묘의 경우 고구려의 지배 아래에 있던 말갈의 묘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석축묘는 고구려 적석총이나 봉토 석실분에 연원이 있음은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난다. 여기에 전축분이 발해국의 문화 발전에 따라 새롭게 등장하는 묘제인 것은 발해 묘제도 거듭 변천하고 있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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