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칼럼] 4대강 덕에 수해 면했다(?) 현장에 가 보니..
재난 대비 정책 초점 잃은 정부와 지자체, 책임 무겁다
SBS | 박수택 기자 | 입력 2013.08.12 19:36
<현장 1> '옥촌(玉村)'이라는 이름부터 넉넉하고 살기 좋은 마을일 거라는 느낌을 준다. 지세부터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옥촌1리, 뒤로는 우뚝한 산봉우리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쇠머리란 뜻의 우두산(牛頭山)이란다. 마을의 북에서 동, 남으로 산줄기가 이어 내린다. 편안하게 누워있는 소의 품 안에 마을이 포근히 안겨 있는 모양새다. 소의 앞발쯤 되는 야트막한 언덕 줄기 아래 축구장 절반만 한 넓이의 옥촌저수지는 텅 비었다. 계곡 위쪽에서 흘러내려오는 시냇물이 저수지 바닥으로 물골을 이루며 흐를 뿐이었다. 지난 7월 22일 오전 10시 반쯤, 여주 지역에 내린 300mm의 집중호우에 길이 42m, 높이 6m의 저수지 제방이 쓸려나갔다.
저수지 상류의 개울 둔덕 2층 벽돌집에 사는 원용춘(63)씨는 쏟아져 들어오는 계곡물에 저수지 수위가 차오르더니 하류 쪽 논밭으로 물이 넘쳐흘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방이 터지자 물이 몽땅 밀려나갔다고 말한다. 평생 농사지으며 살았지만 저수지 물 넘친 적은 처음이라면서, 저수지 없이는 농사짓기 힘든데 큰일이라고 한숨을 쉰다. 저수지 하류 쪽, 물 품어 올리는 펌프장 건물은 담쟁이 넝쿨에 뒤덮였고 빼꼼히 열린 출입문은 야윈 사람조차 간신히 비비고 들어갈 정도의 틈만 벌어졌을 뿐 더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다. 문걸이 쇠 손잡이엔 말벌이 집을 짓고 있다. 저수지 경고 안내판은 칠이 다 벗겨져 글씨를 알아보기조차 힘들다. 저수지 관리 상태가 어떤지 미뤄 짐작할 수 있겠다.
<현장 2> "새벽부터 비가 쏟아지더니 잠깐 사이 집 옆 개천이 넘치는 거예요, 집 뒤 남산 골짜기에서 토사, 나무, 돌, 바위가 밀려내려 오더니 우리 집 뒷벽을 꽝하고 때린 거예요!" 여주군 흥천면 하다리, 남산골이라는 마을 어귀 박승원(60) 조기연(60) 씨 부부의 황톳집은 뒷벽에 두 곳이나 구멍이 뚫려 집 안이 들여다보였다. 남편의 은퇴 후 서울을 떠나 이곳에 자리 잡은 부부가 1년 전에 손수 황토벽돌을 찍어 지은 25평 짜리 귀농 보금자리였다. 1억원이나 들어갔다. "참담하죠.. 복구 계획은 엄두도 못 내고 지금 주위 치우는 데만도 정신이 없어요. 또 비가 올까봐 쇠기둥 박고 철판 둘러쳤어요." 5백만 원이나 들어갔다고 아내 조 씨는 한숨을 쉰다. 왜 수해가 났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부부는 물 빠지는 소하천 물길이 좁아서 그런 것 같다고 답한다. 집 오른쪽 승용차 2대가 간신히 스쳐지나갈 정도 폭의 길을 따라 난 물길은 폭과 깊이가 1m 정도인 뚜껑 없는 상자 모양의 바닥과 양 벽은 콘크리트로 싸 발랐다.
물길 따라 150m쯤 올라가니 굴러 내린 바위와 돌, 뿌리째 뽑혀 휩쓸려 온 나뭇더미가 좁은 골짜기에 널부러져 있다. "이런 것들이 모여들어서 좁은 물길을 댐처럼 가로막고 있다가 계속 물이 차오르면서 압력을 못 견디고 일시에 터져 나온 거죠. 애시당초 계곡서 나오는 소하천 폭도 좁았고, 수해 당한 집 자리도 원래 물길이 지나가는 길목이었던 거죠." 현장을 안내한 이항진 여주환경운동연합 집행위원장의 진단이다. 큰비로 불어난 물은 자연스럽게 본디 제가 가던 길을 찾아 흐르려 한다. 인간이 무리하게 좁혀놓은 길을 거부하고 자연의 법칙에 맞게 넘쳐흐르는 것이 홍수다. 갇혔다 터져 나오는 물에는 에너지가 실려 있다. 가로거치는 것을 때리고 쓸어가 버린다. '수해'란 인간의 관점에서 내세우는 표현일 뿐이다.
4대강 사업을 담당한 한국수자원공사는 일부 언론을 통해 '4대강 사업으로 수해 없었다'는 주장을 폈다. 문화일보의 경우 8월7일(수)에도 '4대강 본류는 끄떡없었지만 지방하천에 호우 피해'라고 보도했다. 겉보기엔 맞는 말이다. 그런데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내세우는 저의가 뭘까? 4대강 사업 이전부터 여러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4대강 본류 지역의 홍수 대비가 대부분 완료됐으며 홍수 가뭄에 대비해야 할 곳은 본류가 아니라 중 상류 지류 지천임을 지적하고 나섰다. 그때는 외면하던 정부와 다수 언론이었다. 22조 2천억 원이나 쏟아부은 국책사업이니 사업을 마쳤으면 홍수 피해가 나서는 안 된다. 본류를 준설하고 보를 쌓으면 물그릇이 커지고 수위도 내려가서 지류 지천의 물이 더 잘 빠지게 되고, 홍수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정부와 수자원공사, 4대강 사업 찬성 전문가 그룹, 그리고 다수 언론은 주장하지 않았던가?
지난 7월 집중호우 피해는 다른 지자체보다 유독 '한강 살리기' 사업으로 댐 같은 보 3개를 모두 끌어안은 경기도 여주군에 집중됐다. 수해현장은 모두 강 본류가 아닌 곳이었다. 지난 몇 해 동안 4대강 사업에 집중하다보니 정작 재해에 취약한 곳에 대한 조사와 예방 투자를 소홀히 한 탓이다. 이제야말로 현장을 꼼꼼히 살펴서 원인을 제대로 짚어내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같은 한강 수계에 해당하는 이웃 이천시와 함께 여주군을 정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피해 산정액은 이천시 2백52억, 여주군 2백45억 원으로 50~80%를 국고로 지원하게 된다. 재정 상황도 좋지 않은 터라 복구 예산 짜내자니 국민 납세자 지갑만 더 얇아지게 생겼다. 재난 안전 정책의 초점을 바로 잡지 못한 이들은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무겁게 책임을 물어야 할 때다. 증거는 현장에 있다.(*)
박수택 기자ecopar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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