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국정원... '발가벗고 뛰다' 꼬리 잡혔다
[경찰 사건 송치기록] 지난해 11월 28일 내곡동 국정원 청사서 두 차례 로그인
13.08.13 17:00 l 최종 업데이트 13.08.13 17:00 l 이병한(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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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심리전단 요원 이아무개씨가 국정원 청사 내에서 IP 변조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은 채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접속한 사실이 밝혀졌다. ⓒ sxc

검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국가정보원 심리전단 요원들은 인터넷을 통한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활동을 오피스텔이나 커피숍 등에서 해왔다. 이들은 IP 변조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 테더링 기능을 사용해 위치 추적을 회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은밀한 활동이 체질화된 정보기관의 조직원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한 요원은 버젓히 국정원 청사에서, IP 변조 프로그램도 사용하지 않은 채,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경찰 수사에서 꼬리가 잡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수년간 계속된 여론조작 행위로 요원들의 죄의식과 보안의식이 모두 희박해졌음을 시사한다.

지난 4월 18일 경찰이 검찰에 넘긴 국정원 사건 송치기록에 따르면, 심리전단 요원 이아무개씨가 닉네임 '별빛달빛햇빛(ID bangbang00)'으로 지난해 11월 28일 해당 사이트에 접속한 IP를 추적해 보니 서울 내곡동 주소지의 국정원이었다. 이는 매우 드문 경우로,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월척'을 낚은 경우다. 

그래서 경찰은 송치기록에 "특히"라는 단어를 앞에 붙인 후 "'별빛달빛햇빛'은 2012. 11. 28. 10:44:22과 같은 날 10:59:43 2회에 걸쳐 IP 210.183.×××.××로 '오늘의 유머'에 접속(로그인)한 내역 확인되고, 해당 IP 설치 주소는 서울 서초구 내곡동 ◯◯◯◯◯ 미래기획사로 국정원으로 확인되었다"라고 적시했다.

'미래기획사'는 예전부터 국정원이 외근 활동을 할 때 사용해온 여러 위장 명칭 가운데 하나다. 국정원 청사는 1급 보안시설로 각종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검찰이 공소장에 첨부한 범죄일람표를 보면, 지난해 11월 28일 해당 시간대 앞뒤로 '별빛달빛햇빛'이라는 닉네임으로 '오늘의 유머'에서 활동한 기록이 많이 나온다. 주로 박근혜 후보를 반대한 글이나 문재인·안철수 후보를 지지한 게시글에 반대 버튼을 눌렀다.

국정원의 흔적을 직접적으로 남긴 이씨에 대해 경찰은 불구속 기소(국정원법 위반)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기소유예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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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은 국정원 직원 이아무개씨가 사용한 IP를 조사한 결과 내곡동 국정원 청사였다는 내용을 아래와 같이 송치기록에 적시해 검찰에 넘겼다(위 기록). 하지만 사건 송치기록을 요구하는 국회 국정조사 여야 의원들의 요구에 경찰은 주소와 국정원으로 확인됐다는 부분을 모두 가려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 제출했다(아래 기록). ⓒ 이병한

경찰은 사건 송치기록을 요구하는 국회 국정조사 여야 의원들의 요구에 각종 개인정보 등을 먹띠로 가려 제출했는데, 위 내용을 적시한 부분에서 주소와 국정원으로 확인됐다는 부분까지 모두 가려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 없게 했다. 하지만 한 의원실에서 이를 복원해내 심리전단 요원이 국정원 안에서까지 여론조작 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국정원 요원은 경찰에 꼬리가 잡히고, 경찰은 국회의원에게 뒷덜미가 잡힌 모양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지난해 11월 28일은 시기적으로 안철수 후보의 사퇴 선언(11월 23일) 이후 '오늘의 유머'에서 국정원 계정의 활동이 급증했을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는 사이트 운영자의 각종 경고 등으로 국정원 계정이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는데, 야권 단일화 성공 이후에는 이것저것 눈치 안보고 막 활동했다"면서 "문제의 계정(사용자)들이 정말 발가벗고 뛰었다, 그 과정에서 국정원 IP가 남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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