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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지, 통구성(國內城址, 通溝城)


시대 : 고구려 초기~고구려 후기

유형 : 성곽>평지성 

형태사항 : 동서 길이 약 800m, 남북 너비 약600m 73점 

위치 : 집안시 통구분지 (集安市 洞溝盆地)


                                                                   https://bit.ly/3oKJjst 

조사내용


연도조사기관조사현황
1905 鳥居龍藏이 조사에 참여함. 개략적인 현황 조사. 鳥居龍藏, 1906 「滿洲調査復命書」『史學雜誌』17 東京大學文學部內史學會을 발표.
1913조선총독부
(朝鮮總督府)
關野貞, 谷井濟一, 今西龍, 栗山俊一 등이 조선총독부의 위탁을 받아 11일간 통구 부근 고구려 시대의 유적 조사.
개략적인 현황 조사 및 부분 실측. 關野貞, 1914 「滿洲輯安縣及び平壤附近に於ける高句麗時代の遺跡(1·2)」『考古學雜誌』5-3·4 ; 1914 『朝鮮古蹟調査略報告』朝鮮總督府 ; 1915 『朝鮮古蹟圖譜』1, 2
1936 池內宏·水野淸一가 조사에 참여함. 10월 3일 성의 외곽을 조사함. 水野淸一은 실측을, 池內宏은 각 부분을 점검함. 池內宏·梅原末治, 1938 『通溝』上 日滿文化協會를 발표함.
1963 목욕탕 건축 중 건물터 발견.
1971 운동장 서쪽에서 굴착 작업 중 건물터 발견.
1975 집안현 청사 건축 중 건물지 발견.
1980집안현문물보관소
(集安縣文物保管所)
孫長金, 林至德, 閻毅之, 韓永利, 董長富, 超書勤, 周云台등이 조사에 참여함. 국내성 실측. 集安縣文物保管所, 1984 「集安高句麗國內城址的調査與試掘」『文物』1984-1을 발표.
1985집안시문물보관소
(集安市文物保管所)
1985년 5월 15일: 국내성 동북 모서리의 청량음료 공장 부근에서 가옥을 신축하다가 건물지 발견. 1985년 8-9월 인민회의당 동측에서 유물 출토.
1987집안시문물보관소
(集安市文物保管所)
老道德會터 민가 신축 중 유물 출토.
1988집안시문물보관소
(集安市文物保管所)
단결대로 남측 채소시장 건물 공사중 유물 촐토. 제2시장 건물 신축 중 건물지 발견.
1990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문물보관소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文物保管所)
何明, 耿鐵華, 張雪岩등이 조사에 참여함. 국내성 북벽 중문 동측의 치(馬面) 발굴. 발굴 면적 150㎡.
何明, 1992 「集安市高句麗國內城馬面基址」『中國考古學年鑒 1991』文物出版社 1992-8; 何明·張雪岩, 2003 「吉林集安高句麗國內城馬面址淸理簡報」『北方文物』2003-3을 발표.
2000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문물보관소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文物保管所)
宋玉彬, 劉景文, 李光日, 張建宇, 聶勇, 孫仁杰, 董峰, 遲勇, 林世賢등이 조사에 참여함. 국내성 북벽 시굴조사 및 성내 8곳 지점 발굴. 총 발굴면적은 1,439㎡.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2004 『國內城, 2000-2003年集安國內城與民主遺址試掘報告』文物出版社을 발표함.
2001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집안시문물보관소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集安市文物保管所)
李東, 董峰, 張建등이 참여함. 국내성 성내 9곳 지점 발굴. 총 발굴 면적 1,235㎡.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2004 『國內城, 2000-2003年集安國內城與民主遺址試掘報告』文物出版社을 발표함.
전국 중점문물보호단위가 됨.
2003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 전성문물부문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 全省文物部門)
宋玉彬, 劉景文, 何明, 庸志國, 唐音, 石肖原, 程建民, 張建宇, 全仁學, 丁宏毅, 楊俊峰, 翟敬源, 劉雪山, 谷德平, 馬洪, 王新勝, 王昭, 郝海波, 林世香등이 조사에 참여함. 국내성 북벽과 서벽의 일부 구간 및 성내 건물지 2곳 발굴. 총 발굴면적 2,545.5㎡.
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集安市博物館, 2004 『國內城, 2000-2003年集安國內城與民主遺址試掘報告』文物出版社을 발표.
1975~1977집안현문물보관소
(集安縣文物保管所)
孫長金, 林至德, 閻毅之, 韓永利, 董長富, 超書勤, 周云台등이 조사에 참여함. 성곽의 전체 현황 조사 및 성벽단면 발굴. 성벽 단면은 남벽 5곳(T1-T5), 동벽 1곳(T6), 북벽 2곳(T7, T8), 서벽 남단 2개(T9, T10) 등 10곳 발굴, 총 노출 면적 960㎡.
集安縣文物保管所, 1984 「集安高句麗國內城址的調査與試掘」『文物』1984-1를 발표.



구조특징


국내성지의 성벽은 대략 세 종류로 나뉨. 먼저 잘 다듬은 쐐기형 돌로 가지런하게 쌓은 부분인데, 고구려 시기 성벽으로 하단부에 많이 남아 있음. 다음으로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성돌로 불규칙하게 쌓은 부분인데, 20세기 초에 개축한 성벽으로 중간이나 상단부에 많이 남아 있음. 마지막으로 크기나 석질이 다른 성돌을 무질서하게 쌓은 부분인데, 만주국이나 중국 내전기에 수리한 성벽임.


1975-1977년에 성벽 10곳을 발굴하여 고구려 시기에 석축 성벽을 한 차례 이상 개축한 사실을 확인했음. 또한 석성 아래에서 토성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발굴자들은 이를 한 현도군의 군현성과 관련시켜 파악했음. 만약 석축성벽 아래에 실제로 토축성벽이 존재했다면 이는 국내성의 축조시기와 관련하여 매우 주목되는 현상임. 그런데 2000-2003년도 발굴시에는 토축 부분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함. 이에 최근에는 석성 아래에서 발견되었다는 토축성벽 부분을 석성과 구별되는 별개의 토성이 아니라 석성 기초부로 파악하기도 함. 현재까지의 발굴성과만으로는 성벽의 축조시기를 단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임.


 

역사적 의미


현재까지의 고고학 조사성과로는 국내성지의 초축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움. 따라서 국내 천도 초기 도성의 구체적인 위치도 정확하게 비정하기 어려운 상태이며, 동천왕대나 고국원왕대에 환도성 함락 이후 잠시 移居했다는 平壤城의 위치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움. 다만 늦어도 3세기 중반에는 通溝분지의 국내성지와 산성자산성[환도산성]으로 이루어진 도성체계를 확립한 것으로 파악됨. 그리고 이 무렵 각지의 유력 세력이 중앙귀족으로 전환하면서 도성의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음. 국내성지가 늦어도 3세기 중엽경에는 고구려 도성으로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높음. 다만 인구증가에 따라 거주구역이 국내성 외곽으로 확장되고, 고분 조영도 급격히 늘어났을 것임. 대규모 인구를 갖춘 도시로 발전한 것인데, 국내성지 외곽의 건물지나 주변의 무수한 적석묘는 이를 잘 보여줌. 한편 427년 평양천도에 따라 국내성은 고구려 전체를 총괄하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라는 위상을 상실하며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됨. 그렇지만 평양천도 이후에도 국내성지는 別都로서 도성인 평양성에 버금가는 번영을 누렸을 것으로 보이는데, 5세기 이후로 추정되는 국내성지 내부의 건물지나 5회분 등 6-7세기로 비정되는 초대형 벽화고분은 이를 잘 보여줌. 또한 국내성지 내부 건물지의 최상층에서 발해시기의 연화문와당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국내성지는 고구려 멸망 이후 발해시기에도 계속 사용된 것으로 추정됨.


 

자연환경


국내성이 위치한 통구분지는 동서 길이 10㎞, 남북 폭 2-4㎞로 압록강 중류 유역에서 가장 넓은 분지임.


북쪽으로는 백두산에서 뻗어나온 노령산맥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음.


성의 남쪽으로 압록강이 서남쪽으로 흐르고 있고 서쪽에는 노령산맥에서 발원한 통구하가 남류하여 압록강으로 유입됨. 또한 성의 남쪽에는 동에서 서로 성벽 외곽을 따라 흘러 통구하로 유입되는 작은 개울이 있음. 이러한 하천과 개울은 천연 垓子의 역할을 함.


 

유물정보


청동기, 철기, 토기 등 다수 출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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