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7000
수습기자 유격받고 돈봉투 만연했던 25년 전 언론계
[미디어오늘 창간25주년] 미디어오늘로 본 과거 언론계, 수습기자 군사훈련·기자실 흡연논란·기자사칭한 경찰·결혼정보회사의 언론인 특별관리 등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승인 2020.05.12 14:24
언론개혁을 말할 때 언론사들이 잘못된 관행을 버리지 못해 시대변화를 따르지 못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럼에도 과거 기사를 보면 언론계가 조금씩 변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디어오늘 창간 25주년을 맞아 그간의 미디어오늘 기사를 소개한다. 2020년 기준으로 볼 때 다소 황당하거나 이색적인 과거 모습,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은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전두환씨 머리 어떻게 찍을지 고민한 방송사
미디어오늘 1996년 1월17일자 “각하의 머리 부분을 아름답게…”란 기사를 보면 KBS 내부 문건인 ‘대통령 각하 내외분 텔레비전 영상보도에 관한 합평회 결과보고(제1차)’에 전두환씨 미화 방안을 KBS 영상보도 관계자들이 고민한 내용이 나온다. 내용을 보면 독재정권시절 소위 ‘땡전뉴스’가 정권의 강압 뿐 아니라 내부 언론인들의 자발적 충성도 한몫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전씨 동정보도 영상 분위기, 의상 조명과 촬영, 분장 등과 관련해 “각하의 얼굴만 클로즈업하는 것은 국가원수의 신비감이 감소되는 점이 있으니 가급적 피했으면 좋겠다”거나 “각하의 약간 붉게 보이는 안면부분과 머리부분을 가벼운 분장으로 처리하면 좋겠다” 등의 25개항에 걸친 구체적인 ‘대통령 미화지침’이 나왔다.
▲ 1987년 4월13일 KBS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당시 대통령 전두환씨가 대통령 직선제 개선요구를 외면하고 당시 헌법을 유지하겠다는 이른바 '호헌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수습기자들은 힘들게 굴려야…
1995년 6월28일자 “수습교육에 웬 유격훈련”을 보면 중앙일보가 ‘언론사 최초’로 수습기자들에게 유격훈련을 실시했다며 기자들이 군복을 입고 훈련하는 사진을 함께 보도했다. ‘요즘 애들은 고생을 안 해봐서 문제’라는 식의 발상으로 진행한 일이었다.
중앙일보는 경기도 광주 특전사 교육대에서 편집국·출판국 수습기자 35명 전원에게 유격훈련을 실시했다. 수습기자들은 “특전사 조교 지휘 아래 막타오(막타워, 낙하훈련), PT체조, 유격, 야간 산악행군 등 군사훈련을 받았고 특전사 안내에 따라 낙하산 훈련, 군장비, 반공역사관 등을 견학”했다. 중앙일보 다른 기자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몰랐다.
▲ 1995년 6월28일자 미디어오늘 기사
당시 중앙일보 교육팀장은 “수습기자 대부분이 고생을 모르고 자라온 신세대들이라 지구력과 협동심을 키우게 하기 위해 이번 교육이 실시됐다”고 실시이유를 밝혔다. 훈련을 기획한 한 관계자는 “처음엔 성과를 반신반의 했지만 참석자 중 70%가량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한편 2002년 5월5일자 기사를 보면 4월30일 한겨레 사내 벽보판에는 ‘수습딱지’를 뗀 기자들이 쓴 이런 글이 붙었다.
“‘수습들이 너무 생생하네?’ 회사에 들어온 우리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선배들에게 가끔 듣던 말이었다. 인간이 아닌 동물 ‘수(獸)’자의 수습이어야 할 우리들의 얼굴이 너무 밝다는 이유에서였다.…알아서 기는 한국문화에 너무 익숙한지라 모종의 대안을 생각한다. ‘회사에서는 웃지 말자.’ ‘버틸만 해도 힘든 척하자.’”
결혼정보회사, 언론인 특별관리
결혼정보회사 선우가 언론인 전담 커플매니저를 두고 노총각·처녀 특별관리에 들어가 언론인들 ‘짝 찾기’ 성공률을 높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5년 9월14일자 보도를 보면 선우 관계자는 “언론인의 특성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소개하는 것이 대전제, 생활이 불규칙하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언론인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방식의 만남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했다.
▲ 2005년 9월14일자 미디어오늘 보도.
선우 관계자는 “언론인 배우자 선호도가 낮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건 오해”라며 “기자는 여전히 선호하는 직종 중 하나”라고 했다. 2005년 한국언론재단이 발표한 기자 의식조사를 보면 평균적으로 기자들은 자신을 사회·경제적으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했고 의식적으로 진보에 기운 중도성향으로 평가했다.
옛날엔 기자실에 담배 연기 가득
1996년 2월21일자 “기자실 흡연 뜨거운 논란”을 보면 96년 1월1일자로 시행한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연건평3000㎡ 이상인 건물에 별도 흡연실을 지정하고 나머지는 금연지역이 됐다. 당연히 정부기관에 있는 기자실도 금연지역이다. 그럼에도 “마감시간이면 어느새 굴뚝화”했다는 기사다.
당시 기자실 중 금연하는 곳은 청와대, 보건복지부, 환경처 기자실 등 일부에 불과했고 나머지 정부부처 기자실에는 여전히 흡연권이 보장돼 논란이었다. 비판여론은 기자들의 특권의식이라고 주장했고, 기자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기자들은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항변했다. 마감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과거에는 신문사들 편집국에도 마감시간이면 담배연기가 가득차곤 했다.
노골적인 정언유착
1995년 7월5일 보도를 보면 교통방송이 야당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 탤런트 정아무개씨에 대해 방송 출연정지 조치를 해 비판을 받았다.
같은날 보도에 따르면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충북도지부 관계자들이 청주CBS를 방문해 밥값 명목으로 3000만원을 주려다 편집국장과 기자들이 반발해 되가져갔다. 또 청원군수 후보가 군청 기자실을 방문해 20만원씩 든 돈봉투 8개를 놓고 갔지만 기자들이 간사를 통해 돌려줬다.
1996년 5월15일자 기사를 보면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이규택 무소속 의원이 경기 여주군청 출입기자들에게 20만원씩 든 돈봉투를 돌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이는 돈봉투를 받지 못한 한 기자가 이를 제보해 알려졌다.
윈도우 들어갈 줄 알아야 기자 합격?
이젠 누구나 쓰는 컴퓨터를 처음 쓰던 시절 이야기도 시대 변화를 느끼게 한다. 1997년 6월18일 “견습기자 시험에 컴퓨터실기 추가”를 보면 일간스포츠가 편집기자 채용에서 컴퓨터실기를 추가했다. 윈도우 3.1 문서작성기를 이용해 수필을 써보는 것과 그래픽으로 각종 도형만들기 등이었다.
총 28명이 응시했는데 일부 지원자들은 윈도우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컴퓨터 그래픽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지원자들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1998년 이전 미디어오늘 기사를 보면 ‘인터넷’을 ‘인터네트’라고 표기했다. 당시 미디어오늘은 인터네트 신문을 뉴미디어 기획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 '인터넷'이 아니라 '인터네트'로 표기한 미디어오늘 기사.
젊은층 86%가 종이신문 보던 시절
1996년 3월20일 보도. 당시 ‘신문과 방송’ 3월호에 실린 18세~35세 이하 600명 설문조사 결과 70.8%가 신문을 정기구독했고, 사무실·학교가 비치한 신문을 접하는 15.5%를 포함하면 전체 86.3%가 정기적으로 신문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발표를 보면 종이신문을 보는 비율은 10대 3.7%, 20대 1.4%, 30대 2.8%로 나타났다.
그땐 주6일
1996년 4월24일자 기사를 보면 SBS가 언론사 최초로 토요격주 휴무제를 실시했다. 당시엔 주6일제였다. SBS는 연간 6일의 월차휴가 의무사용제를 병행하기로 했다.
언론노동자들도 점점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을 향해왔다. 1998년 5월13일자 “어린이날 출근 전면거부” 기사를 보면 중앙일보 노조가 자신들의 ‘행복추구권’을 무시했다며 휴일 근무를 거부했다.
2005년 6월29일 언론사들은 주5일제를 논의했다. 당시 한겨레는 주5일제에 최종합의했고, 조선·중앙·동아일보는 노사합의로 서명절차만 남겨두고 있었다.
경찰이 사진기자 사칭해 몰래 채증
경찰이 사진기자를 사칭해 집회현장을 채증하다가 들통난 사건이 있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9월27일자 “형사가 사진기자로 둔갑”이란 미디어오늘 사진기사를 보면 영등포 경찰서 소속 형사가 9월16일 여의도 ‘5·18학살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대회’ 현장에서 사진촬영을 하다 사진기자들에게 적발됐다.
▲ 1995년 9월27일 미디어오늘 사진기사
이날 기자들은 팔에 보도완장을 차지 않기로 했지만 이 형사는 이를 모르고 완장을 차고 기자행세를 한 것이다. 현장에서 사진기자들은 이 형사에게 신원확인을 요구했고 그는 “영등포서에서 나왔다”고 말한 뒤 모습을 감췄다. 사진 맨 오른쪽에 모자쓰고 보도완장찬 사람이 영등포서 형사다.
경찰의 기자사칭은 박근혜 정부 때도 있었다. 지난 2015년 1월8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오체투진을 하는데 구로경찰서 정보과 직원이 이를 무단 채증하다가 현장에서 미디어오늘 기자들에게 적발됐다. 해당 경찰은 자신을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말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사복을 입고 있었고 옷과 카메라 어디에도 경찰임을 알 수 있는 표식을 하지 않았다.
[관련기사 : 집회현장 기자 사칭한 경찰 카메라 열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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