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amu.wiki/w/해모수


해모수 (解慕漱)


부여 초대 군주, 북부여 초대 군주

별호 : 태자(太子) / 천왕랑(天王郞) / 천제(天帝) 황천(皇天) / 부여시조(夫餘始祖) / 단군(壇君)
아내 : 유화부인(柳花夫人)

아들 : 해부루(解夫婁), 고주몽(高朱蒙)

아버지 : 천제(天帝) / 상제(上帝)

생몰년도 , 재위기간 : ? 



1. 개요 


한국 신화의 등장 인물.


삼국유사에 따르면 북부여를 건국한 부여의 시조이나 동시에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의 아버지라고도 한다. 그리고 대소왕의 증조할아버지라고도 한다.


여러 고대사 관련 기록에서 천제(天帝) 혹은 천제의 아들로 묘사되며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 설화에 모두 등장하는 등, 여러모로 신비에 싸인 신화적 인물이다.



2. 관련 기록


옛 기록(古記)에 이르기를 “≪전한서≫에 선제(宣帝) 신작(神爵) 3년 임술(壬戌) 4월 8일 천제(天帝)[1]가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五龍車)를 타고 흘승골성(訖升骨城) 요나라(大遼) 의주(醫州) 지역에 있다.에 내려와서 도읍을 정하고 왕을 일컬어 나라 이름을 북부여(北扶餘)라 하고 자칭 이름을 해모수(解慕漱)라 하였다.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扶婁)라 하고 해(解)로써 씨를 삼았다. 그 후 왕은 상제의 명령에 따라 동부여로 도읍을 옮기게 되고 동명제(東明帝)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나 졸본주(卒本州)에 도읍을 세우고 졸본부여가 되었으니 곧 고구려(高句麗)의 시조이다. 아래에 나타난다”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북부여조


그러나 실제 한서에는 저런 내용이 없다. 추가적으로 삼국사기에서 동명성왕의 탄생년도는 기원전 58년으로, 해모수가 강림한 기원전 59년의 이듬해이기 때문에 이를 동명성왕이 수태된 년도로 해석하는 경향도 있다.


북부여왕 해부루(解夫婁)의 재상 아란불(阿蘭弗)의 꿈에 천제(天帝)가 내려와서 이르기를, 장차 내 자손을 시켜 이곳에 나라를 세우려 하니, 너는 이 곳을 피해가거라. - 동명(東明)이 장차 일어날 조짐을 이른다 - 동해의 물가에 가섭원(迦葉原)이란 곳이 있는데, 땅이 기름지니 왕도를 세울 만하다고 하였다. 아란불은 왕에게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니, 국호를 동부여(東扶餘)라 하였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동부여조


《단군기(檀君記)》에는 "단군(檀君)이 서하(西河)의 하백(河伯)의 딸과 친하여 아들을 낳아서 부루(夫婁)라고 이름했다"고 했다. 지금 이 기록을 상고해 보면 해모수(解慕漱)가 하백(河伯)의 딸과 사사로이 통해서 주몽(朱蒙)을 낳았다고 했다. 《단군기(檀君記)》에는,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夫婁)라고 했다" 했으니 그렇다면, 부루(夫婁)와 주몽(朱蒙)은 배다른 형제일 것이다.

북부여왕 해부루가 먼저 피해 간 땅이 동부여이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고구려조


천제(天帝)가 태자를 보내어 부여(扶餘) 고도(古都)에 내리어 놀게 하니, 이름이 해모수(解慕漱)이다. (해모수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오룡거(五龍車)[2]를 타고, 종자(從者) 100여 인은 모두 백곡(白鵠)[3]을 탔는데, 채색 구름이 그 위에 뜨고 음악 소리가 구름 가운데에서 울렸다. 웅심산(熊心山)에서 머물러 10여 일을 지내고 비로소 내려왔다. 머리에는 오우(烏羽)의 관(冠)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龍光劍)을 찼는데, 아침이면 일을 보고 저녁이면 하늘로 올라가니, 세상에서 이르기를 '천왕랑(天王郞)'이라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평양부편


이후에 하백의 세 딸 중 유화와 정을 통해 결혼하고자 했으며, 하백과 재주를 겨루어 승리했다.[4] 그런데 혼자 승천해버려서(…) 가문을 욕되게 하였다고 화가 난 하백은 유화를 추방한다.


어떤 기록에서는 천제(天帝) 본인이기도 하고 어떤 기록에서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기록에서는 천제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어느 쪽이든 신적인 존재로 여겨진 듯하며, 고구려와 부여 일대에서 시조신으로 모셔진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의 기록에서는 단군과 동일시되었는데[5], 보통 이 부분은 별로 신경 안 쓰고 있다.


태양신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침에 왔다가 저녁에 간다든가, 유화부인이 햇빛으로 임신 / 혹은 임신 중에 햇빛이 배를 비추는 상황, 오룡거를 몰고 다닌다든가 하는 것에서. 사실 속일본기 엔랴쿠 8년에 백제인들이 직접 전한 백제 왕실의 출자가 "백제의 원조(遠祖)인 도모왕(都慕王)은 하백의 딸이 해의 정기에 감응하여 태어났는데, 황태후는 곧 그의 후손이다."라는 대목으로 적혀있는데 이건 빼도 박도 못한다. 위서에서도 我是日子, 河伯外孫이라고 명확하게 나와있다.


다산 정약용은 아방강역고에서 해모수를 부여의 시조인 동명왕과 동일 인물로 보았다. 해모수는 신화적 존재에 가까우므로 부여의 동명왕을 모델로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여러 설이 있어서 '해모수'라는 이름이 북부여의 건국 시조일 때는 특정 인물의 고유 명사로 취급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 국가의 건국 시조의 호로 받아들여졌다라는 설도 있다. 마치 로마 제국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생전에는 인물의 이름이었으나, 사후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황제'를 지칭하는 명사화가 되어 이후 카이저, 차르의 어원이 된 것처럼 말이다.



3. 대중 문화 속의 해모수

4. 대중 문화에서 해모수의 이름을 딴 요소

5. 관련 항목

(생략)





[1] 고구려조에서는 제(帝) 뒤에 자(子) 자가 있다.

[2] 5마리의 용이 끄는 수레.

[3] 흰 고니.

[4] 하백이 잉어로 변하자 수달로 변해잡고, 사슴에는 승냥이로, 꿩에는 매가 되어 내리쳤다고 동명왕편에 묘사되었다.

[5] 삼국유사 왕력편에서 동명성왕을 단군의 차남이라고 기록했다.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