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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경찰서장, '사건' 직전 사복에서 정복으로 갈아입었다...왜?
26일 저녁 '종로서장 폭행 논란' 관련 의문들
조한일 기자 jhi@vop.co.kr  입력 2011-11-28 10:19:50 l 수정 2011-11-28 11:27:41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집회 중앙에 나타난 종로서장
27일 한미FTA 무효화 집회 참가자들의 중앙을 가로 질러 박건찬 종로서장이 나아가면서 주변 경찰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 ⓒ김철수 기자

지난 26일 한미FTA 폐기 집회에서 일어난 종로경찰서장 폭행 논란과 관련, 사건 전후의 박건찬 종로서장의 석연찮은 행동들에 대해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평소 안 입던 정복을 갈아입고 나온 박 서장

종로와 광화문이 있는 종로경찰서 관내에서는 평상시 수많은 집회가 열린다. 큰 규모 집회가 열리면 일반적으로 종로서장이 직접 현장을 관리한다. 이날도 박 서장은 집회가 열리고 있는 광화문 사거리에 나와 현장상황을 관리했다.

이날 박 서장은 애초 사복을 입고 집회 상황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위대 속으로 들어가기 전 정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왜 굳이 정복으로 ‘갈아입어’가면서 시위대 속으로 걸어들어 갔을까.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은 사건 직후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관할 경찰서장으로서 불법의 시위가 커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기에 나섰다”라며 “정복을 착용한 것은 경찰관으로서 당연한 자세”라고 대답했다. 

경찰 관계자는 “처음에는 시위대속으로 경찰서장이 가는 것에 우려를 가졌다”면서도 “오히려 정복을 착용하면 안전할 것으로 판단했다. 시위대가 교통경찰 등 근무복을 입은 경찰을 폭행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복을 입고 갔을 때가 논란이 더 커질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반응은 종로서장이나 경찰 관계자가 생각했던 것과는 판이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집회에 참석한 정모(27)씨는 “서장이 근무복을 입은 채 수많은 사복 형사들의 경호를 받은 채 시민들 사이를 밀고 들어왔다”라며 “당연히 시민들은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종로서장이라고 밝혔다지만 대부분 조현오 경찰청장으로 오인해 항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하로 떨어진 기온에 물대포를 쏘고, 야당 정당 연설회를 막기 위해 수백의 경찰력을 동원해 먼저 막은 것이 경찰 아니냐”라며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집회 중앙에 나타난 종로서장
27일 한미FTA 무효화 집회 참가자들의 중앙을 가로 질러 박건찬 종로서장이 나아가면서 주변 경찰들의 보호를 받고 있다. ⓒ김철수 기자

일방적 통보 후 직진...국회의원은 ‘황당’

박 서장은 현장에 있던 국회의원들과의 면담이 약속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의원들을 만나겠다며 시위대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기자회견에서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현장에서 이정희 의원과 정동영 의원을 직접 찾아뵙고 서장님께서 뵙자고 하신다고 전했다”며 “하지만 확답은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경찰관계자는 “정동영 의원은 연락을 주기로 했고 이정희 의원은 사실상 거절의사를 표시했다”면서도 “하지만 서장님이 진정성을 가지고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선 것”이라고 전했다.

정동영 의원과 이정희 의원 등이 만남을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일방적으로 행동을 취한 모양새다. 의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26일 오후 9시30분쯤 사복경찰이 유세차 앞으로 다가와 ‘종로서장께서 뵙자고 합니다’라고 말했다”라며 “옆자리 의원들과 논의해 대화상대를 지정해 알려주겠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직후 종로서장이 밀고 들어와 소란이 일었다”고 밝혔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역시 “사복경찰이 당시 나와 정동영 의원에게 ‘서장이 만나고 싶어한다’ 얘기했을 뿐”이라며 “(서장이)오겠다는 말도 없었고, 오라고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사복경찰이 성명, 직급 어느 하나 밝히지 않고 삽시간에 사라져 어떻게 연락해야 하나 생각했다”라며 “‘집회 실무팀과 연락선이 있나’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26일 사건 당시 무대 뒤편에서 연설을 준비중이던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과 통합연대 조승수 의원은 시민들에 둘러싸여 있던 박 서장 일행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조승수 의원은 사태를 전해들은 직후 “서장은 그냥 보내주세요”라고 시민들에게 외쳤다. 조 의원은 '사전 약속에 대해 들은 적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처음 듣는 얘기다”라며 “갑자기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이냐”라고 답했다.

기자회견하는 종로 서장
박건환 종로경찰서 서장이 26일 저녁 세종로 파출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양지웅 기자

탈출 직후 기자회견? 집회 상황관리는 뒷전

시위대속으로 들어갔다 소란이 일자 가까스로 시위대에서 벗어난 박 서장 일행은 곧장 인근에 있는 세종로 파출소로 피신했다. 피신 직후 경찰관계자는 “출입 기자들을 모아달라”며 “서장님께서 직접 기자회견을 하신다”고 전했다. 집회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집회 상황을 책임져야 하는 관할 서장이 기자회견을 먼저 준비한 것. 

당시 종로경찰서 주요 간부들도 세종로 파출소에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때문에 광화문 광장은 사실상 지휘 책임자 없이 전의경과 순경들만 배치되는 공백상태가 30여분간 이어지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장에서도 논란은 계속됐다. 박 서장은 A4 용지에 입장을 적은 뒤 기자회견을 가졌다. 현장의 기자들은 경찰 서장의 무리한 행동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이에 대해 박 서장은 “관할 경찰 서장으로서 당연한 조치를 한 것”이라며 “관할 서장으로서 판단했다. 당연히 무너진 법질서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다”라고 대답했다. 또 “이런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마찬가지다”며 “합법은 촉진하고, 불법은 필벌하는 것에는 변함없다”고 설명했다.

박 서장의 행동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서장님이 경황이 없고, 집회 상황 관리에 다시 나서야 하기 때문에 추후에 다시 보도자료를 내겠다”며 “기자회견을 종료하겠다. 상황관리 때문에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종료된 오후 10시에는 광화문 사거리와 광장을 점거했던 시위대의 집회는 자진해산한 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조한일 기자jhi@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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