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에 휘말린 채동욱 '손보기'..배후설 분분(종합2보)
감찰라인 배제된 감찰 결정 주장…"정상 감찰 착수 아냐"
연합뉴스 | 입력 2013.09.13 22:39 | 수정 2013.09.14 02:25



감찰라인 배제된 감찰 결정 주장…"정상 감찰 착수 아냐"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김동호 기자 =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 아들' 논란에 휘말려 13일 자진 사퇴하면서 검찰의 정치적 독립 문제를 둘러싼 우려가 재차 대두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이 이날 채 총장 감찰을 전격 결정한 과정에 석연치 않은 점들도 속속 드러나면서 '배후 세력'에 대한 의혹도 커지고 있다. 채 총장은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를 강조했지만 '혼외 아들 의혹'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에 휘말려 버티지 못하고 결국 총장직에서 5개월만에 사퇴했다.

법무부는 이날 오후 황교안 장관이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장관이 현직 검찰총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법무부는 "국가의 중요한 사정기관의 책임자에 관한 도덕성 논란이 지속되는 것은 검찰의 명예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라며 감찰 배경을 설명했다. 

법무부의 갑작스러운 감찰 착수 발표는 검찰 안팎에서 사실상 총장에게 '스스로 사퇴하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울러 법무부의 감찰 결정에는 사실상 여권 핵심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검찰 조직의 수장에 대한 감찰을 법무부 장관이 독단적으로 결정한다는 건 선뜻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아닌 여권 핵심이 채 총장에 대한 감찰 결정과 '공표'를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곳곳에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안장근 감찰관은 법무부가 대변인을 통해 채 총장에 대한 감찰 착수 방침을 밝힌 이날 외국 출장중이었다. 안 감찰관은 스웨덴 등 북유럽 지역의 감찰기관과 법무부를 방문하고 오는 15일 귀국할 예정이다. 검찰 수장에 대한 사상 초유의 감찰을 지휘할 책임자가 국내에 없는 상황에서 언론에 먼저 감찰 착수를 알리고 나선 것이다.

검찰 내에서는 황 장관이 감찰 라인을 배제한 채 감찰 결정을 내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날 오전 법무부의 한 고위 간부가 감찰관실에 채 총장 감찰에 대한 의견을 한 차례 물어왔는데, 곧 황 장관과 간부들이 감찰 착수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통상적인 감찰관실의 검토 절차가 빠졌다는 지적이다. 

감찰 파트 근무 경험이 있는 한 검찰 관계자는 "통상 감찰 사안이 생기면 1∼2일 정도 검토한 뒤 착수 여부를 결정한다"며 "감찰 라인을 빼놓고 이런 식으로 결정하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정상적인 감찰 착수가 아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일반인에게는 감찰을 강제할 수 없어 감찰로 밝혀낼 수 있는 사실이 많지 않은데도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이해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실제 법무부는 소속 공무원에 대해서만 감찰을 할 수 있어 법무부가 밝힌 대로 '진상 규명'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전자 감식을 통해서만 채 총장의 혼외 아들 여부를 밝힐 수 있는데 채 총장의 내연녀로 알려진 여성에 대해 법무부가 유전자 감식을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역시 이날 오후 일정을 급히 취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감찰관이 없어도 직원들은 모두 있어 감찰을 할 수 있고 원래 장관 일정은 유동적"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서 돌아오기 전부터 황 장관이나 청와대 민정라인에서 채 총장 감찰을 준비했다가 박 대통령 귀국 후 최종 재가를 받아 감찰 지시를 발표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과 정치권에서는 조선일보가 지난 6일 채 총장의 '혼외 아들' 논란을 처음 보도한 이후 '배후 세력'이 있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됐다. 실제 채 총장은 조선일보의 보도를 처음 접한 뒤 "조선일보 보도의 저의와 상황을 파악중에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채 총장은 이후에도 "검찰총장으로서 검찰을 흔들고자 하는 일체의 시도들에 대해 굳건히 대처하면서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 본연의 직무 수행을 위해 끝까지 매진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었다.

그간 일각에서는 채 총장 취임 이후 개시된 검찰 수사가 청와대나 여권을 비롯해 국가정보원이나 경찰 등 국가의 핵심 조직에 부담을 줬다며 못마땅해하는 분위기가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국정원 대선·선거개입 의혹' 수사를 통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기소하는 과정에서 여권 수뇌부와 척을 졌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은 역대 정권마다 논란이 됐다. 채 총장은 검찰총장후보추천위를 통해 임명된 첫 총장이었던 만큼 정치적 독립에 대한 검찰 안팎의 기대가 컸다. 때문에 채 총장이 임명 5개월 만에 확인되지도 않은 의혹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자칫 어렵게 시작한 검찰의 독자적 개혁 작업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san@yna.co.kr
dk@yna.co.kr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