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개혁" 앞장서는 천주교
사제부터 평신도까지 한목소리는 70~80년대 이후 처음
15개 교구 전체 시국선언… 교황청 공인 주교회의가 주축
일부 곱지않은 시선에 "진리·정의·자유·사랑 실현이 교회 역할"
한국일보 | 권대익기자 | 입력 2013.09.17 19:49 | 수정 2013.09.17 21:35

한국 천주교가 국정원 대선 개입을 규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전국의 15개 교구 전체가 시국선언을 한 데 이어 23일에는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국정원 개혁과 정부의 회개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공식 기구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도 적절한 시기에 '국정원 사태로 훼손된 민주주의의 가치는 반드시 회복돼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천주교 수장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최근 한 가톨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천주교 사제들과 수도자, 평신도들의 시국선언은 민주화를 역행하는 정부의 근본적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적극 지지 의사를 밝혔다.

사제부터 평신도까지 천주교가 이처럼 대대적으로 시국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기는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참여 이후 거의 처음이다. 특히 이번 움직임은 그동안 진보적 성향으로 논란의 대상이 돼 왔던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축이 된 것이 아니라 로마 교황청의 공식 승인을 받은 단체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차원에서 이루어져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지난 7월 25일 부산교구부터 9월 4일 의정부교구까지 15개 교구 전체가 참여한시국선언은 국정원 대선 개입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 방지, 국정원 개혁을 요구했다. 보수적 성향인 대구ㆍ경북 교구도 1911년 출범 이래 102년 만에 처음으로 동참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관계자는 17일 "1987년 6월항쟁 때도 침묵했던 대구대교구를 포함해 모든 교구의 사제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사태가 위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국선언에 참여한 천주교 사제는 2,124명으로 전체 사제 4,835명의 43%에 이른다. 5,000여 수도자와 평신도 1만여 명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특히 광주대교구 사제와 신자 등 1,200여 명은 지난 12일 5ㆍ18기념성당에서 시국미사를 한 뒤 묵주기도 행진을 했다. 1987년 6ㆍ29 민주항쟁 이후 26년 만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왜 사회 참여에 적극 나서는 것일까. 천주교의 사회 참여는 교리상으로는 1962~65년에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제정된 사목헌장은 인간의 존엄성을 증진하고 인류의 공동선을 실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선언했다.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9년 1월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 개막 연설에서 "눈 앞에 있는 가난, 고통, 슬픔, 이웃들의 어려움과 동떨어져 살 수 없고 거기에 분명히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2년 로마교황청은 '교회는 진리ㆍ정의ㆍ자유ㆍ사랑의 네 가지 가치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실현해야 한다'는 새 교리서를 확정했다. 즉, 교회와 사회는 분리할 수 없고, 교회는 세상 사람들을 위해 교회가 존재한다고 확인한 것이다. 최근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도 "교회 울타리 바깥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 참여가 정교 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며 곱지 않게보는 눈도 있다. 이에 대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인 박동호 신부는 "진리와 정의, 자유, 사랑의 실현을 위해서 사회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을 이끈 성염 전 교황청 한국대사도 "평신도들이 자칫 개인적인 신앙 생활에 머물기 쉬운데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사랑 실천에도 적극 나서는 것이 바른 신앙인의 자세"라고 말했다.

이 같은 교리에 발맞춰 한국 천주교회는 1970년대 이후 고 김수환 추기경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에 적극 나섰다. 김 추기경이 1971년 라디오로 전국에 생중계된 성탄 자정 미사에서 장기 독재로 치닫는 박정희 정권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을 시작으로, 1974년엔 유신에 반대하던 지학순 주교가 체포되자 구국기도회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젊은 사제들이 중심이 돼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됐고, 민청학련사건(1974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1986년),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1987년) 규명 등 민주화와 인권 향상에 앞장섰다. 최근에는 4대강 사업과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등 사회 문제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배경에는 한국 천주교의 순교 역사도 작용하고 있다. '4대 박해'를 알려진 신유(1801)ㆍ기해(1839)ㆍ병오(1846)ㆍ병인(1866) 박해 등 크고 작은 탄압을 거치면서 발생한 1만 3,000여 순교자들의 피가 양심에 따른 사회 참여의 씨앗을 배태했다는 것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인 장동훈 신부는 "순교자들이 흘린 피가 현재 천주교회가 정의와 평화를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이끈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천주교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긍정적인 호응을 받으면서 신자 수도 급격히 늘고 있다. 1962년 53만여 명에 불과하던 신자 수는 2008년 500만 명을 넘었고, 지난해 말에는 전 국민의 10%가 넘는 536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다른 종교는 교세가 제자리걸음이거나 줄어드는 데 반해 이례적인 현상이다. 박문수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은 "인권과 민주화를 실천해온 한국 가톨릭 역사가 그 비결"이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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