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대선 전 국정원 사건 조직적 은폐 정황(종합)
수사팀 측에 허위 예상 질의·답변 자료까지 제공 당시 수서서장 "중간수사결과 발표 아쉬움 있다" 김용판, 기밀문서 제시했다가 '출처' 추궁당해
연합뉴스 | 입력 2013.09.17 15:49 | 수정 2013.09.17 15:54


수사팀 측에 허위 예상 질의·답변 자료까지 제공
당시 수서서장 "중간수사결과 발표 아쉬움 있다"
김용판, 기밀문서 제시했다가 '출처' 추궁당해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서울지방경찰청이 대선을 앞두고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당시 수사 실무를 지휘했던 일선 경찰서장의 법정 진술을 통해 드러났다.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재판에서 이광석 전 수서경찰서장은 작년 12월 17일 발표된 '국정원 사건 중간 수사결과' 내용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작년 12월 16일 오후 10시 30분께 이 사건 중간 수사결과 보도자료를 수서경찰서에 보냈다. 수서서는 같은날 오후 11시 자료를 배포하고 대선 이틀 전인 17일 공식 브리핑을 했다. 서울청은 브리핑 예상 질의·답변 자료를 작성해 수서서 측에 제공하는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서울청 분석팀이 국정원 직원 김모씨가 임의 제출한 노트북 등 컴퓨터 2대를 분석한 결과 공직선거법·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 등 관련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광석 전 서장은 당시 기자들과의 문답에서 "포털이나 인터넷 접속 기록을 다 확인해봤으나 댓글 등을 확인할 수 없었다"며 "이런 결론은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수서서 수사팀은 중간 수사결과 발표 직후인 18~19일 서울청 분석팀으로부터 국정원 직원 노트북에서 발견된 텍스트 파일상 아이디·닉네임 40개를 확보해 곧 다수의 게시 글과 찬반 클릭을 찾아냈다.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은 지난달 30일 공판에서 "이광석 당시 서장이 이같은 사실을 내게 보고받고 '서울청장이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라고 말했다"고 전한 바 있다.

이 전 서장은 이날 공판에서 "사전에 텍스트 파일을 받아 구글링을 했더라면 16일 보도자료와 17일 발표처럼 했겠느냐"는 검찰 측 신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부분에 아쉬움이 있다"고 답했다. 당시 허위 사실을 발표한 경위에 관해서는 "서울청 분석팀을 믿었다. 브리핑 장소에 직접 나온 분석팀 몇 명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그대로 발표했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이 전 서장은 '혐의 사실 관련 내용을 확인 못함'이라고 돼 있었던 서울청의 분석 결과 보고서에 대해서도 "브리핑 때는 몰랐지만 저 문구는 약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시인했다.

작년 12월 11일 민주당 관계자의 신고로 경찰이 국정원 직원 김씨가 있던 서울 역삼동 한 오피스텔에 출동했을 때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려던 이 전 서장을 경찰청과 서울청 간부들이 막았던 사실도 공개됐다. 

이 전 서장은 "김용판 전 청장뿐 아니라 경찰청 지능과장, 서울청 수사과장 등 3명이 전화해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했다"며 "범죄 사실이 소명되지 않았고 수사권 조정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전 서장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영장을 신청하러 간 수사팀 직원에게 신청을 보류하고 돌아오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 전 서장이 서울 강남 지역을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 신모씨와 작년 12월 12~16일 10여차례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신씨는 이 전 서장에게 경찰 수사 상황을 물었다. 이 전 서장은 "나를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수사 상황을 자꾸 물어봐서 민감한 사건이니까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이날 공판에서는 김용판 전 청장 측이 지난 1월 수서서가 국정원 직원 김씨의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 뒤 검찰로부터 받은 수사지휘 문서를 제시해 공방이 벌어졌다. 변호인은 김씨에 대한 범죄 소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김 전 청장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영장 신청 기각사유가 담긴 이 문서를 꺼냈다.

하지만 검찰은 오히려 이 문서에 대해 "경찰 내부의 기밀문서를 변호인이 어떻게 확보한 것인지 설명하라"고 추궁했고, 변호인은 "앞으로 적법한 절차를 밟아 서면을 제시하겠다"고 답했다.

다음 재판은 오는 27일 열린다.

hanj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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