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naver.com/spiritcorea/130085534792
"하나도 모르고 쓰는 역사 이야기<116>후고려기(後高麗記)(29) - 광인"에서 소고구려 관련 내용만 가져와 제목은 임의로 붙였습니다.


[是歲, 回紇ㆍ南詔蠻ㆍ渤海ㆍ高麗ㆍ吐蕃ㆍ奚ㆍ契丹ㆍ訶陵國, 並朝貢.]
이 해에 위구르[回紇], 남조만(南詔蠻), 발해, 고려, 티벳[吐蕃], 해, 거란, 가능국(訶陵國)이 모두 조공하였다.
《구당서》헌종본기 원화 13년(818)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삼국사》 고구려본기에 "원화 13년(818)에 이르러 사신을 당에 보내 악공(樂工)을 바쳤다[至元和十三年, 遣使入唐獻樂工]."라는 기록이 나온다. 보장왕 무진(668)에 멸망했다는 고려가 말이다. 물론 정확한 시기는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다. 하지만 '고려의 후신'인 발해 말고도 또 고려를 지칭하는 세력이 남아있었다는 것은
실로 충격적인 일. 북한에서도 껄끄러웠는지 이 기록은 고려가 아닌 발해가 사신을 보낸 것인데 발해를 인정하기 싫었던 당조에서 일부러 '고려'라고 적어놓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만, 《삼국사》에서는 원화 13년에 창안에 나타났던 이 고려 사신들의 '고려'는 보장왕의 아들로서 성력 2년(699)에 안동도독이 된 고덕무의 안동도독부를 말한다고 적고 있다. "나중에 점점 나라를 이루었다[後稍自國]"는 것이다. (지금 요양 고씨 일족은 이때 안동도독부에 봉해진 고덕무의 후손일지도 모른다.)
 
원래 고려 땅을 통치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 안동도호부였지만 이것도 신라의 지원을 받던 고려 부흥군에 밀려 본거지 평양에서 지금의 압록강 너머 요동으로, 거기서 다시 또 신성으로 옮겨갔고, 도호부에서 도독부로 깎이더니 발해가 세워진 뒤에는 거의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고 말아 거의 '폐지'되다시피 한 군이나 다름없었다. 보장왕 사후에는 하남(河南)·농우(隴右)의 여러 주로 흩어놓고 가난한 사람들만 안동성(安東城, 옛 고려령 신성) 옆의 옛 성에 남겨 두었는데 이들마저 신라로, 말갈로 혹은 돌궐로 들어가면서 '고씨 군장은 마침내 끊어졌다'고 했다. 신성은 옛 고려 땅에서도 돌궐과 인접한 북단의 땅인데다(양원왕 때 신성에서 돌궐과 싸웠음) 고려의 본거지였던 요양이나 집안, 평양과도 한참 거리가 있는 땅이니 잘 알려지지 못하고 잊혀져버렸던 것이다.
 
"고씨 군장은 마침내 끊어졌다[高氏君長遂絶]"는 구절이 꼭 고씨가 전부 사라졌다는 얘기는 아니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이 구절이 고려 유민들의 망명기사 뒤에 실려있는 걸로 봐서는. 왕은 한 사람이지만 신하는 여러 명, 백성은 그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왕이니 신하니 백성이니 하는 것도 자기가 갖고 있는 왕으로서 신하로서 백성으로서의 자의식만큼이나 그들을 그렇게 대접하고 인정하며 권한을 부여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왕은 신하를 거느리고 신하로부터 왕 소리를 들으면서 왕으로 거듭나고, 백성으로부터 왕의 소리를 들으면서 왕으로 거듭난다. 하지만 자신을 왕이라 불러줄 신하가 없다면, 자신에게 세금을 바칠 백성도 노동력을 빌려줄 백성도 없다면 그런 왕을 왕이라 부를 수 있을까? 왕이라고 으스대면서도 자기가 다스리는 신하는커녕 백성 한 명도 없는데 그런 자를 왕이라 부를 수 있다면 세상에 왕 아닌 자 없을 것이다. 왕은 자신을 믿고 인정해주며 권위를 빌려주는 '신하'와 '백성'이 있기에 왕으로서 존재할수 있다. 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신하를 싸그리 때려잡고 백성을 못살게 굴면, 그렇게 해서 신하들이 '나 더러워서 여기 안 산다'하면서 하나둘씩 관직을 내버리고 도망가버리면, 백성들까지 똑같이 그렇게 하면 왕의 옆에는 과연 누가 남게 될까? 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왕의 권위는 백성이 내는 세금과 그들의 노동력으로 조직한 군대에서 비롯되는데,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고 지휘할 신하들로부터 비롯되는데 그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떠나버리면 왕에게 남는 것은 뭐가 있지? 철부지 어린애처럼 이거해줘, 저거가져와, 나 죽는꼴 볼래, 팅팅거리면서 다른 사람 피곤하게 해서 결국 자기 주변에 아무도 안 남게 되었을 때에야 그들은 깨닫는다. 권위를 몰아주는 것도 띄워주고 추켜세워주는 것도, 결국 자기 바깥의 사람들이라는 것. 혼자서 왕인척 명령하고 떵떵 큰소리치고 그래봐야 들어주는 사람도 없는데 자기 힘만 낭비지.
 
고려가 멸망한 뒤 고씨 군장들에게는 그들이 다스릴 백성이 남아있지 않았다. 보장왕은 부흥운동을 도모하다 공주로 유배되어 죽고, 남은 백성들은 이리 옮겨지고 저리 옮겨지고 하다가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보장왕의 아들이 귀하디 귀하신 왕족임을 알아볼수 있는 옛 신하나 백성들이 없는 타지에서 '나 이런 사람인데'하면서 군장노릇 하려고 한들 그 지방 사람들에게는 '니가 뭔데?', '그래서 어쩌라고?'하고 무시당하고 미친놈 취급이나 받기 일쑤다. 왕노릇을 하려고 해도 뭐 자기를 띄워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맛이 나는데 이건 뭐, 생판 자기가 왕인지 왕족인지 말해줘도 모르는데 그런 사람들만 사는 땅에서 무슨 군장 노릇을 하겠어. 그들을 왕으로 추켜세워주고 왕인줄 알아봐주던 사람들이 없는 땅에서 '군장'이자 한 나라의 군주로서의 '고씨'의 이미지는 점차 사라지고 결국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옛날 군장이었던가 하는 사실도 잊어버리게 된다. '고씨군장은 결국 끊어졌다'고 한 말은 고씨 성 가진 군장 가문 하나가 망했다는 것이 아니라 고씨 성 가진 사람을 군장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는 의미인 셈이다. 심지어 고씨 성을 가진 본인들조차도. 그래도 '나중에 점차 나라를 이루었다'고 했으니 몰락한 왕족이나마 받들어 모시겠다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던 듯 하다. 발해나 신라처럼 독립된 영토와 국민을 가진 어엿한 '주권국가'로서의 나라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치만 고씨들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씨들이 다스렸던 백성, 옛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사라진다는 의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고씨 고려의 몰락이 '고려'라는 나라 자체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게 된다. 지금 전주 이씨를 왕으로 보는 사람은 없지만(실제로 그랬다간 미친놈 아니겠나) 전주 이씨, 옛 조선 왕가가 다스렸던 국민들의 후손은 아직도 그대로 건재하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고구려ㆍ백제ㆍ신라의 삼국 시대는 한국사'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조선족을 제외하고는 중국인들에게 이런 것은 없다.) 그 점은 발해도 마찬가지였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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