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28942
나의 할망은 4.3의 생존자였다
세상 떠나기 전 털어놓은 할망의 고통과 비애... 제가 기억하고 말하겠습니다
20.04.03 11:58 l 최종 업데이트 20.04.03 11:58 l 강영훈(indigotic)
제주의 시골 마을에는 집집마다 올레가 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집을 나서면 마을길로 접어들기 앞서 올레가 수십 걸음 길이로 놓여 있다.
집을 떠나 육지로 공부하러 갈 때 떠나는 발걸음을 멈춰 뒤돌아보면 할망(제주말로 할머니)이 올레 끝에 서서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오랜 타향살이를 마치고 돌아와 올레에 접어들면 집에서 기르는 개 뭉치가 어느새 나를 알아보고 반갑다고 짖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올레를 통해 세상과 시골집을 오가며 자랐다.
6년 전 할망이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할망이 살던 시골집 안팎을 현대식으로 수리했다. 할망 냄새가 스민 이부자리도 철마다 장농에서 끄집어내어 볕 아래 말렸다. 할망 냄새는 이불 위로 번지는 고소한 볕내음에 서서히 밀려났다.
할망 된장이 가득했던 장독이 바닥을 보인다. 집 안에 남은 할망의 흔적이라곤 마루 한 켠에 놓인 젊은 시절 할망의 사진 한 장뿐이다. 할망은 차를 타고 가야 닿을 수 있는 가족 묘지만큼 일상에서 멀어졌다.
해마다 봄이 오면 할망이 올레 우영팟(제주말로 텃밭)에 심은 부추가 다시 고개를 내민다. 새로 돋은 부추가 자라게 놔두면 하얗게 꽃이 핀다. 할망이 살아계셨다면 꽃이 피기 전에 부추를 뜯어 먹음직한 반찬을 장만하셨을 텐데. 부지런한 할망은 생전에 보지 못했을 그 꽃이 잊혔던 할망을 떠오르게 한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오면 좋으련만. 할망이 걷던 올레에 그리움이 꽃핀다.
수십 년간 침묵해온 할망의 상처
▲ 할망이 말할 수 없었던 4.3의 고통. 개인이 혼자서 소화할 수 없는 고통을 삼키도록 했던 그 야만의 역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작은 목소리로 저마다의 이야기할 수 있기를. 사진은 제주 4.3을 다룬 영화 <비념>의 한 장면(이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습니다). ⓒ 인디스토리
1948년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남북한 온전한 통일 정부를 바랐던 제주 사람들에게 이승만 정부와 미군정이 폭력을 가했다. 그 당시 제주 사람 열 명 중 하나가 죽었다. 4.3 사건이라 부르지만 '사건'이라 말하기엔 고통이 깊다.
빛바랜 사진 속 젊은 할망도 죽음의 벌판으로 끌려갔다. 영문 모를 총성이 사납게 공기를 갈랐고 총구가 겨눈 사람 모두가 벌판 위로 쓰러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절했던 할망이 눈을 떴다. 할망을 향하던 불행의 총알이 빗나가서 목숨을 건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인기척이 없다. 모두가 숨죽인 벌판에서 할망 홀로 살아남았다. 다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할망은 뉘엿뉘엿 저무는 해를 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둠이 무겁게 깔리기 전에 할망의 걸음이 올레에 닿았고, 서둘러 어린 자식들에게 저녁밥을 지어 먹였다.
할망은 아흔에 가까운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 날에 관해 침묵했다. 자신이 겪은 충격을 말하면 서슬퍼런 군사 독재 정권 하에서 정부에 반하는 '빨갱이'로 지목돼 자식들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할망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살면서 말하지 못했던 슬픔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학살의 현장에서 겪었던 고통에 관해서도 처음 말했다.
할망이 세상을 떠난 후, 할망과 못다한 4.3에 관한 이야기를 동네 할머니들과 나누었다. 경로당 옆에 사는 할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할망을 언급했다. 다른 마을에서 이 동네로 시집 와서 외로웠던 할머니는 할망을 많이 의지했다며, 나를 보니 할망을 보는 거 같아 반갑다고 했다. 말수가 적은 대신 늘 옅은 미소를 띄었던 할망의 곱닥헌(제주말로 고운) 입매가 내 얼굴에 비친다고 했다.
농협 창고 옆에 사는 할머니는 열여섯 살의 추억을 소환하며 할망에 대해 말했다. 70여 년 전 어느 날, 경찰이 할머니의 아버지를 비롯해 몇몇 마을 남자들을 데려갔다. 열 여섯 할머니는 밥을 싸서 머리에 이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밥은 집에 가서 먹을 테니 도로 가지고 집에 가 있으라'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곳에 있던 마을 남자들은 모조리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 할머니는 무서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할머니보다 열 살쯤 많았던 할망이 말없이 고인의 시신을 정성스럽게 닦고 수습해주었다. 할망은 말없이 학살 이후를 이웃과 더불어 충실히 살았다.
할망이 말할 수 없던 4.3을 내가 기억하고 알려야겠다
▲ 72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예정된 3일 오전 유가족이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행불인 표석을 찾아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득한 벌판에 선 할망에게서 총알이 빗나가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할망이 어머니를 낳았다. 그때 할망이 총알을 피하지 못했다면 나는 세상에 없다. 그래서 나도 학살의 생존자라 할 수 있다.
할망이 말할 수 없었던 4.3을 내가 기억하고 알려야겠다. 개인이 혼자서 소화할 수 없는 고통을 삼키도록 했던 그 야만의 역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작은 목소리로 저마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을 겪은 사람들을 집단으로 뭉뚱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추상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을 겪고도 수백가지 다른 경험을 했을 각각의 구체적인 목소리에 곱닥헌 입매로 미소를 건네고 손을 내밀었던 할망처럼 말이다.
할망이 살던 시골집에 살면서 날마다 당신이 오가던 '할망올레'를 걷는다. 올레 너머 마을길에도, 들판에도, 산에도 어김없이 꽃이 만발했다. 이제는 올레가 제주섬 한바퀴를 돌고도 남을 순례의 길로도 널리 알려졌다. 올레는 그 길을 걷는 이를 저마다 삶의 속도와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이끈다.
제주를 터전 삼아 사는 이뿐 아니라 각자 주어진 삶의 올레를 걷는 이들 모두가 4월의 꽃피는 제주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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