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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체크]'지구촌 극찬' 의료체계, 정말 '박정희 덕분'일까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2020-04-04 06:00 


미래통합당 주요 인사들, 박정희에 의료수준 '공' 돌리기

박정희가 최초 도입은 맞지만…형평보다는 '특권'에 초점

현재와 같은 통합 형태로 김대중 국민의 정부가 '형평성' 확립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1977년 의료보험 도입으로 본격적인 발전이 시작됐다. 이후 병원과 제약 산업이 성장해 국민들이 보편적 혜택을 입을 수 있게 됐고 이런 여건이 코로나 바이러스 극복의 토대가 되고 있다"(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박정희 대통령은 매우 혁신적인 의료보험 정책과 고용보험 정책을 통해 위기 국면에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했습니다"(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


의심증상만 있어도 검사가 가능한 대규모 시스템, 검사부터 치료까지 무상 가능. 한국의 코로나19 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대응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특히 국민 개개인을 의료비 부담에서 해방시킨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은 코로나19에 신속 대응을 가능하게 한 대표적 제도로 꼽힌다.


그런데 통합당 주요 인사들이 이 의료복지 시스템의 '공'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돌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시절 도입된 의료보험 정책이 결국 국민건강보험으로 발전해 지금의 코로나19 대응이 가능했다는 논리다. 정말 박 전 대통령의 의료보험 정책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국민건강보험으로의 발전에 기여한 것일까.


CBS노컷뉴스가 언론보도와 국가기록원, 시민단체 등 자료를 참고해 자세히 따져봤다.


◇ 박정희 정권 최초 도입은 맞지만…'형평' 아니고 '특권'


일단 박정희 정권이 의료보험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맞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1963년 '의료보험법'이 처음 제정됐지만 오랫동안 시범사업으로만 운영되는 데 그쳤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2018년 자신의 SNS에 "당시 군사정권은 '무상의료'를 자랑하는 북한에 맞서기 위해 이 제도를 만들었지만, 임의가입 방식이었기 때문에 가입자는 거의 없었다"라고 꼬집은 바 있다.


그 사이 '유전무병 무전유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결국 국민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반발이 거세지자 박정희 정권은 1977년 처음으로 국민 상대로 의료보험법을 시행했다.


물론 지금처럼 전 국민이 대상은 아니었다. 대기업 중심의 500명 이상 사업장 근로자만 직장의료보험제도를 누릴 수 있었고, 1979년 1월에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이 편입됐다.


여기에도 당연히 역사적인 맥락이 포함돼있다. 박 정권이 특정 계층만 누릴 수 있는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해 저임금에 시달린 대기업 노동자들의 불만을 우선 잠재우고, 정권의 중추 역할을 했던 사회세력의 환심을 사려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시기 의료보험제도는 '형평'이 아닌 '특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국민건강보험제도가 가진 사회적 의미와는 완전히 달랐다.


전 역사학자는 이를 두고 "1977년 당시 주력 수출산업으로 육성하던 중화학 공업 분야 대기업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저임금에 불만이 매우 높았다. 대기업에서 파업이 일어나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것이라 판단한 박 정권은 대기업 노동자들을 회유하는 한편, 공무원, 군인, 교사 등 정권의 중추를 이루는 사회세력의 환심을 사기 위해 '특권적 의료보험 제도'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당시 의료보험증은 특권층의 신분증 구실을 했다. 의료보험증만 맡기면 어느 술집에서나 외상술을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라고 덧붙였다.


1일 간호사와 간병인 등 7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경기 의정부시 가톨릭대학교 의정부성모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들에 대한 감염 전수조사가 실시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통합 빠진 전국민 의료보험…'형평성' 논쟁은 계속


국민들의 직선제 요구가 타올랐던 1986년, 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기업 종사자 중심의 의료보험제도를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당시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사망 사건으로 독재정권에 반발하는 민주화 열망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전두환 정권이 말기에 이르러서야 일종의 회유책으로 전국민 의료보험제도 시행을 내걸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추진도 못해보고 끝난 전 전 대통령의 '전국민 대상' 의료보험제도는 노태우 정권이 배턴을 이어받았다.


국가기록원의 '노태우 대통령 공약실천: 제6공화국 정부 5년' 문서에는 "그동안 주로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적용대상을 꾸준히 확대해 온 의료보험제도를 88년 1월에 농어촌 지역의료보험, 89년 7월에는 도시지역의료보험을 실시함으로써 제도 도입 후 12년 만에 전국민의료보험을 실현했다"고 기록돼있다.


형식상 전 국민이 의료보험 제도를 누리게 됐어도 여전히 내용의 문제는 남아 있었다.


이전에 생겨난 다양한 건강보험조합들이 통합되지 않은 의료보험제도였기 때문에 각 조합마다 재정이 달라 형평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전국민 의료보험 당시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수백 개 조합으로 쪼개져있었다. 부자조합은 돈이 남고, 가난한 조합은 늘 적자에 시달렸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낙하산 인사와 각종 부패의 온상이기도 했던 건강보험조합에 대한 통합 및 개혁 요구가 갈수록 높아졌다.


이로 인해 여야 의원들은 1989년 의료보험을 통합하는 골자의 '국민의료보험법'을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지만 노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무산됐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 누구나 평등하게…대수술 끝 통합된 국민건강보험


의료보험이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 국민의 정부 시절이다.


전 국민이 IMF 위기 극복에 힘썼던 2000년, 국민의 정부는 단일보험자로 의료보험을 통합해 국민건강보험제도를 확립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의 중요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2000년 7월부터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과 139개 직장의료보험조합이 단일조직으로 통합됐다. '의료보험'은 '건강보험'으로 개칭됐고,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직장조합별로 달랐던 보험료 부과체계가 단일화됐고 이전까지 분리해서 관리해 온 의료보험 재정은 통합이 단계적으로 실시됐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삶의 질 향상기획단' 기조실장을 역임한 조재희 송파갑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박 전 대통령이 도입한 의료보험이 코로나19 극복의 초석이 됐다는 황교안 대표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조 후보는 당시 국민건강보험제도의 확대통합을 추진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조 후보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황 대표의 발언에 대해 "지금의 국민건강보험제도가 형성된 역사와 과정을 전혀 모르는 야당대표의 무지와 억지에 불과하다. 박정희 정권을 들먹이며 정부가 코로나 대응에 실패했다고 떠드는 것은 어불성설이자 혹세무민"이라고 일침했다.


이어 "갈기갈기 쪼개져 각종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 된 의료보험제도를 오늘 날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누리는 하나의 국민건강보험제도로 통합한 게 바로 김대중 정부"라며 "선진국 의료복지제도를 검토하고 국내외 전문가들과 수십 차례 토론을 거쳐 수요자 중심의 보건의료 공급체계를 강화하고 보건의료서비스의 형평성을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전 국민' 통합의료보험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또 이렇게 확립된 의료체계가 수십만건에 이르는 검사 등 코로나19 선제 대응에 효과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조 후보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대규모 조기검사를 실시,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일상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때 구축한 사회 안전망 덕분"이라고 전했다.

ywj201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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