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정부 뜻모아 ‘열린계획’ 추진…뮌헨 젖줄 ‘소통의 복원’
등록 : 2013.10.07 20:29수정 : 2013.10.08 10:13 

자연 형태로 복원된 독일 뮌헨 플라우허 지역 이자르 강변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다. 뮌헨 수자원관리국 제공

유럽에서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독일 뮌헨에서 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의 하나는 도심을 관통하는 이자르 강변이다. 알프스의 눈 녹은 물이 스며 이자르강은 평소 부드러운 옥색을 띤다. 강가엔 강물이 끌어내려오다가 버리고 간 동글동글한 자갈들이 하얗게 쌓여 있고, 발을 거의 물에 담근 은버드나무들이 무리 지어 설렁거린다. 투명한 물속엔 물고기가 왔다갔다 바쁘고, 오리 떼는 먹이를 찾느라 고개를 물속에 처박고 엉덩이를 하늘로 흔든다.

강변 기슭은 완만해서 사람과 동물이 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여기저기 제멋대로 생겨난 모래톱과 물웅덩이는 어른들의 휴식터가 되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차가운 물에 몸을 식힌 뒤 뜨거운 자갈밭에 누워서 일광욕하는 젊은 연인들, 개와 함께 수영하는 노인, 모닥불 피우고 소시지 구워 먹는 가족, 강가에서 온종일 노는 숲유치원 꼬마들, 생맥주를 통째로 차가운 물에 박아놓고 둘러앉은 10대들….

이런 강변 풍광은 얼핏 보면 천혜의 자연인 듯싶지만 사실은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복원한 인공의 산물이다. 뮌헨은 2000년부터 11년간 진행한 재자연화 공사를 통해 125년 전 이자르강에서 사라졌던 여울과 자갈밭을 되살렸다. ‘이자르 플랜’이라 불리는 뮌헨의 이 재자연화 공사는 세계적 성공 사례로 꼽혀, 외국에서 찾아오는 답사단이 끊이지 않는다. 어쩌다 뮌헨은 이자르강의 본모습을 잃었고, 또 어떤 연유로 다시 복원해야 했을까?

이자르강은 오스트리아에서 발원해 850m의 표고차를 두고 295㎞를 흘러 다뉴브(도나우)강에 합류한 뒤 흑해로 흘러든다. 곁가지가 많이 퍼져 넓고 얕게 흐르다 보니 한번 홍수가 지나면 물길이 달라져 있기 일쑤였다. 옛날에는 철 따라 불어나는 강물을 위해 강 주변을 넓게 비워두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미치는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강을 지배하려 했다. 1888년부터 이자르강 바닥을 파서 물길을 직선으로 정리했다. 강기슭을 돌벽으로 강화하고 높여 강물을 가두었다. 이리저리 굽이치며 강변을 변형시키는 데 에너지를 소진하던 강물이 단단하고 좁은 통로에 갇히니 강타할 곳은 바닥밖에 없었다. 강바닥이 패었고 강변 지하수위도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바닥과 지하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계속 내려앉아 20년 뒤에는 강바닥이 공사 이전에 비해 8~10m나 낮아졌다. 나무가 뿌리를 내려도 지하수에 도달할 수 없었다. 숲은 메말랐고 농사는 망쳐졌고 우물을 파도 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1910~1920년 이자르강에서 다시 대대적인 하천공사를 벌였다. 지난 공사의 후유증인 지하수 하강을 막아보려는 시도였다. 강바닥에 200m 간격으로 50~60㎝ 높이의 콘크리트 단(낙차공)을 만들어 강바닥을 강타하던 물살의 힘을 받아내도록 했다. 그렇게 해 강바닥이 계속 파이는 현상과 그에 따른 지하수 하강은 일단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 강력한 인공구조물로 피해를 막아나가는 사이 강은 본연의 모습을 점점 더 잃어버렸다. 홍수도 되레 잦아졌다. 예전엔 강변으로 자연스럽게 들고 나며 땅으로 스며들던 강물이 이제 예기치 않게 도시로 넘쳐나 인명과 재산을 위협했다. 독일인들은 더 발전한 기술의 힘을 빌려 더 강력한 둑과 보를 쌓아 올리며 이에 맞섰다.

1980년대, 마침내 그들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홍수의 증가는 바로 선조들이 하천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기술로 어떤 둑과 보를 쌓아도 홍수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수학적으로 계산되고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이 사실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알려졌다.

독일 뮌헨 이자르강 브루더뮐 지역의 복원 전 모습. 좁고 곧게 펴진 일정한 수심의 물길과 둔치, 강변 호안, 잔디밭 등이 우리 4대강 사업 지역과 비슷한 모습이다. 뮌헨 수자원관리국 제공

직선화 뒤 홍수 잦아져 
민관 재자연화 10년 준비. 각종단체 ‘이자르 동맹’은 홍보나서. 8km 복원에 11년 공사

2000년 유럽연합(EU)은 ‘홍수가 증가한 주원인은 강의 직선화, 강기슭의 강화, 강바닥의 준설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며 2015년까지 유럽의 모든 강을 자연 상태 또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상태로 되돌리는 ‘유럽연합 수자원관리 기본지침’을 발표했다. “물은 함께 지키고 가꾸어야 할 공동의 유산”이라고 못박고 고액의 범칙금 제도를 만들어 회원국들을 단속하고 있다. 유럽의 큰 강들은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흐르기 때문에, 강 상류의 회원국이 잘못해서 환경을 파괴하면 그 피해는 강 하류의 회원국한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보다 12년이나 앞서 1988년 독일 뮌헨의 시의회는 이자르강의 재자연화를 결정했다. 기존의 제방으론 점점 늘어나는 홍수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과 도심 휴식공간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맞물려 새로운 홍수 대비책을 모색한 것이다. 1995년 ‘이자르 플랜 준비위원회’가 탄생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당시 다양한 시민·환경·정치단체들이 정부 담당 부서와 함께 재자연화 공사를 준비하는 ‘열린 계획’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이자르 강변에 거주하거나 강에서 낚시·카누 등 취미활동을 하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자르강 복원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은 바로 이 ‘열린 계획’을 통해 강과 직접 관계를 가지며 사는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활용한 데 있다.

당시 시민들이 가만히 있다가 ‘열린 계획’에 초대받은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이자르강은 수많은 수력발전소에 물을 대느라고 대부분의 물을 빼앗겨 물줄기가 앙상했다. 환경이 열악하니 이해관계가 다른 조류보호연합과 낚시협회 사이에 아웅다웅 갈등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부분의 수력발전소와 바이에른 주정부 사이에 하천 사용 계약이 만료돼 신규 계약을 체결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조류보호연합의 니코 되링 박사는 다른 단체들에 서로 다투지 말고 대의를 위해 뭉치자고 제안했고, 낚시협회와 카누동호회 등 이자르강에서 활동하는 12개 단체가 이를 받아들였다. 1993년 ‘이자르 동맹’이 발족했다. 이 동맹은 시민과 정치권을 상대로 학술 연구에 근거한 활발한 홍보활동을 펼치면서 수력발전소의 강력한 로비에 대항했다.

이자르 플랜 준비위원회는 ‘이자르강에 새 생명을!’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점점 커지는 홍수 위험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시민의 휴식을 위한 친수공간을 확장하며 강의 생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복원공사의 목표로 정했다.

공사 구간에 따라 5~10년에 걸친 치밀한 준비 작업이 앞섰다. 2000년부터 뮌헨 시내를 흐르는 이자르강 8㎞ 구간의 복원공사가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공사는 계획보다 2년 늦어진 2011년에야 마무리됐다. 총 공사비도 애초에 계획한 2800만유로(400억여원)를 훌쩍 넘긴 3500만유로(500억여원)가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고작 8㎞ 길이의 중형 하천을 복원하는 데 최고 10년이나 준비해 11년 동안 공사를 해야 했을까? 마지막 공사 구간인 독일박물관 인접 강변에서는 공사가 2년이나 지연되는 난항을 겪었다. 이곳은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강변이어서 시민들의 이용 빈도가 높았다. 주정부가 주최한 설계 공모전의 1등과 2등 수상작을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1등 수상작이 이곳에 남아 있는 인공구조물을 많이 보존한 채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 반면, 2등 수상작은 인공구조물을 다 없애고 강변을 자연 상태로 되돌리는 데 주력했다. 공사비도 더 저렴했다.

독일 뮌헨공대 오버나흐 수리모형실험연구소에 설치됐던 이자르강 축소 모형. 이자르강 복원 사업은 1 대 20 모형을 이용한 반복적인 수리실험을 통해 사업의 영향을 철저히 검토하며 진행됐다. 뮌헨공대 오버나흐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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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설계 시민공모전 열고 민관이 함께 검증. 전문가들 모형실험도 거쳐 
완공 뒤에도 ‘강 지키기’ 봉사

이자르 동맹을 비롯한 뮌헨 시민들은 주민의견 수렴회에서 2등 안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공모전 결과를 번복할 경우 1등 수상자에게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주정부는 2등 안으로 갈 경우 교각과 독일박물관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하천 복원을 장려하는 유럽연합 보조금마저 취소됐다. 복원공사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이자르 동맹은 주정부가 제시한 1등 작품의 수정안을 수용했다.

공사 기간을 지연시키고 공사비를 초과시킨 또다른 원인은 강변 땅속에 묻힌 폐기물이었다. 2차대전 뒤 도심의 건축폐기물 등 갖가지 쓰레기가 이자르 강변에 모두 묻혀 있었다. 이들을 파내어 일일이 분류해 특수폐기물 처리를 해야 했다. 2차대전 막바지에 투하된 대형 폭탄 등 크고 작은 불발탄까지 종종 나왔기 때문에 굴착기 작업은 늘 조심스럽고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공사 기간이 늘어난 또다른 이유는 사시사철 작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물이 불어나는 봄과 여름에는 공사를 쉬었다. 설계할 때 시민에게 결정권을 주었듯이 강한테도 결정권을 주기 위해서였다. 홍수철에는 강물이 마음대로 넘치도록 했고, 홍수가 빠진 뒤에는 물이 어떻게 제 갈 길을 만들어 놓았는지, 어느 기슭을 침식시키고 어느 곳에 퇴적토와 자갈을 쌓아두었는지 면밀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강의 의지를 복원사업에 반영했다.

복원공사의 핵심은 강물이 흘러넘칠 여유 공간과 자유를 주는 것에 맞춰졌다. 다행스럽게도 강변을 따라 꽤 넓게 공원이 조성돼 있어서 강에 다시 내줄 장소는 넉넉했다. 강물을 가두었던 일직선의 돌벽 인공호안을 철거해서 강물이 마음대로 강변으로 넘나들도록 했다. 물길을 빙 둘러 파서 인공섬을 만들었고, 얕은 여울과 못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했다. 강줄기 옆에 작은 도랑을 더 만들기도 하고 강 너비도 넓혔다. 강폭이 넓어지면 자연히 유속이 줄고 홍수위도 낮아진다.

강기슭도 완만하게 만들어서 사람과 동물이 물까지 편안히 오갈 수 있게 했다. 강물이 굽이치며 흐를 수 있도록 해서 강바닥을 파헤치던 물살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강바닥에 박아놨던 낙차공을 철거하거나 자연석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강이 주어진 공간 안에서 마음대로 흐를 수 있도록 하는 대신 도시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처도 단단히 했다. 제방을 1m 높이고 너비도 두껍게 보강했다.

토목·수리·조경·보건·환경 분야 전문가들뿐 아니라 주민과 강이 함께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철저한 과학적 검증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뮌헨공대 오버나흐 수리모형실험연구소는 공사기간 내내 1 대 20 축소모형을 만들어놓고 사업의 영향을 세심하게 검토했다.

“이자르강은 누구의 것인가?”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뮌헨 시민은 “내 것!”이라 대답한다고 한다. ‘열린 계획’을 통해 어도 설계를 자문했던 낚시협회 회원들은 복원사업이 끝난 뒤에도 매일 강변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자원봉사를 한다. 이런 주인의식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민 참여의 길을 활짝 열어둔 ‘열린 계획’에서 나왔다. 마지막 공사 구간 공모전의 갈등을 종식시킨 이자르 동맹의 통 큰 양보도 주인의식 덕분에 가능했다.

2011년 9월15일 독일 지역 공영방송 <바이에른 3티브이>의 이자르강 복원 성공을 알리는 프로그램은 이런 말로 마무리됐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에 담을 쌓아 막고 아스팔트를 깔고 시멘트를 치면 자연을 길들일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오판이었죠. 겨우 8㎞ 강 구간을 재자연화하는 데 3500만유로가 들었고 꼬박 11년이 걸렸습니다. 이런 선례는 모든 이에게 경고가 돼야 합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그런 파괴가 자행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걸 다시 복구해야 할 숙제를 후손에게 떠넘기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뮌헨/임혜지 건축사학자(카를스루에대학 공학박사)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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