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노무현 NLL 수호’ 알고도 모른 척, 왜?
등록 : 2013.10.09 09:08수정 : 2013.10.09 16:12
지난달까지 “아는 바 없다” 답변 피하다 뒤늦게 공식 확인
‘소모적 정쟁’ 키워…“새누리당 도우려 일부러 숨겼다” 의혹
‘NLL 정쟁’ 주도해온 새누리당의 공세 근거 설득력 잃게 돼
국방부가 8일 2007년 2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앞두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존중 및 준수’와 ‘엔엘엘을 기준으로 등면적으로 공동어로수역 설정’이라는 두가지 협상 원칙을 승인했다고 공식 확인함에 따라, 그동안 ‘엔엘엘 정쟁’을 주도해온 새누리당의 공세 근거가 상당 부분 설득력을 잃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국방부가 그동안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야당의 거듭된 확인 요청을 거부해온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가정보원은 물론 국방부까지 여권의 ‘엔엘엘 포기’ 쟁점화에 공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10월 정문헌 의원의 발언을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엔엘엘 포기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정상회담 대화록(대화록) 공개 요구를 대선에 적극 활용했다. 결국 지난 6월 야당의 ‘국정원 댓글 사건 국정조사’ 요구로 궁지에 몰리자 국정원과 합작해 대화록 무단공개를 감행했지만, 막상 대화록에 노 전 대통령의 엔엘엘 포기 발언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자 새누리당은 “사실상 엔엘엘을 포기한 것”이라는 식으로 말을 바꾸며 공세의 고삐를 이어갔다. 기초연금 공약 후퇴 등으로 궁색해진 새누리당은 최근엔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에 없고, 봉하이지원에서 초본의 삭제 흔적을 발견했다”는 검찰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계기로, 정상회담 녹음파일 공개까지 거론하며 ‘엔엘엘 정쟁’의 불씨를 다시 지피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 답변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이후 엔엘엘 수호 의지를 명확히 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새누리당의 ‘엔엘엘 포기 공세’의 정당성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됐다. 국방부의 공식 확인으로 ‘정점’을 찍긴 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전후 엔엘엘을 지키려 했다는 정황은 이미 여러차례 드러난 바 있다. 정상회담 당시 국방부 장관으로 노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엔엘엘 문제에 대해 노 전 대통령과 이견이 없었다고 확인했다. 김 실장은 이 자리에서 정상회담 후속으로 열린 남북 국방장관 회담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과 만난 사실을 언급하며 “대통령께 확답을 받기 위해서 제가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 가서 소신껏 하고 올 수 있는 권한을 달라. 일체 회담과 관련해 훈령을 보낸다든지 중간에 어떤 뭐를 한다든지 그런 것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건의했고, 이에 대통령께서는 웃으시면서 ‘국방부 장관 소신껏 하고 와라’, 그래서 제 소신껏 엔엘엘을 지킬 수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앞서 김 실장은 새누리당이 대화록 발췌본을 공개한 다음날인 6월21일에도 국회 운영위에서 같은 내용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김 실장의 이런 증언은 노 전 대통령이 엔엔엘 관련 두가지 협상 원칙을 승인했다고 한 국방부의 설명과 같은 맥락이다. 정상회담 후속 조처 과정에서뿐 아니라 사전 준비 과정에서도 엔엘엘 수호 기조는 유지됐다. 정상회담을 달포 앞둔 2007년 8월18일 열린 대책회의에 김장수 장관 대신 참석한 김관진 합참의장(현 국방부 장관)은 “청와대의 엔엘엘에 대한 인식에 전혀 문제가 없다. 회의 결과에 만족한다”는 내용으로 김 장관에게 회의 결과를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방부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남북 국방장관 회담 관련 두가지 협상 원칙을 노 대통령이 승인했는지 여부를 묻는 전해철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국방부의 회담 방침) 보고시 어떤 지시나 대화가 있었는지는 아는 바 없으며 전임 대통령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국방부가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변을 회피해왔다. 이 때문에 국방부가 ‘엔엘엘 정쟁’을 주도하고 있는 새누리당을 지원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관련 사실을 숨겨온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은 지난 7월11일 정례브리핑에서 “언론에 공개된 대화록을 보면 김정일은 북한이 주장하는 군사경계선과 우리 엔엘엘 사이 수역을 공동어로구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냐고 말했다”며 “엔엘엘 밑으로 우리가 관리하는 수역에 공동어로구역을 만들자는 내용이고, 그 결과는 엔엘엘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밝혀, 새누리당의 엔엘엘 포기 주장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이 브리핑은 국정원이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의 군사경계선을 실제보다 훨씬 남쪽에 표시한 왜곡된 지도를 근거로 제시하며 “정상회담 대화록의 내용은 엔엘엘 포기”라고 주장한 뒤 하루 만에 나온 것이어서, 국정원과 국방부가 새누리당과 장단을 맞춰 정치 공세에 나선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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