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품은 강, 내성천 그곳엔 사람이 흐르고 있다
내성천 사람의 길 잇기 행사
2013.10.10 16:22 입력 발행호수 : 1215 호 / 발행일 : 2013-10-09

물·모래 순환으로 자정작용하며 낙동강 수질 맑게 하던 내성천 영주댐건설로 급격한 변화 겪어
홈피 보고 전국 각지서 온 300여명 서로 손잡고 환경 소중함 되새겨
 
▲9월28일, 내성천 하류 회룡포에 사람들이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사람의 길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강물처럼 서로를 흘렀다.
 
물은 길을 따라 흐르고 길은 물을 위해 자신을 내어줍니다. 물과 길은 서로를 흐르며 유구한 역사를,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 이야기는 다름 아닌 생명의 움틈입니다. 예로부터 생명은 물길에 의존해왔습니다. 아니, 물에서 생명이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생명은 물에 의지하고 물을 경배하며 물이 건네주는 축복을 온몸으로 흡수했습니다.

생명들은 파릇파릇하게 자라나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도시를 세우고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기술이라는 것이 튀어나오고 돈이 세상을 지배할 때쯤, 생명은 다시 물길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이번에는 지긋한 응시가 아닌 습한 흘김이었습니다. 근원을 잊은 생명들의 결론이라는 게 참으로 딱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른바 경제적 가치로 환산한 물길의 가격이요, 가격에 따른 인위적 조절입니다. 생명들은 자신을 낳고 품어줬던 어머니, 물의 기억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맙니다.

여기, 내성천(乃城川)이 있습니다. 내성천은 경북 봉화 선달산에서 영주를 지나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길이 109.5km의 지류입니다. 낙동강의 물을 맑게 하는 역할은 내성천이 담당해왔습니다. 상류부터 모래를 안고 크고 작은 산을 휘돌아 내려가며 모래알갱이를 낙동강에 공급해왔습니다. 한반도는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생태하천인 내성천은,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동안 스스로의 몫을 묵묵히 수행해왔습니다.

이 아름다운 내성천을 개발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지난 1999년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안정적인 용수공급과 홍수방지를 이유로 ‘송리원’이라는 이름의 다목적댐을 세우겠다고 발표합니다. 하지만 개발계획은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장기간 표류하다가 2009년 6월, 영주댐으로 이름을 갈아탄 채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의 하나로 들어갑니다. 낙동강의 수질이 악화되면 영주댐을 통해 가둬뒀던 물을 풀어 오염도를 낮추겠다는 겁니다. 정부는 영주댐 건설 편익의 86.2%를 낙동강 수질개선에서 거둘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영주댐 건설공사가 시작되고 내성천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합니다. 모래가 드리워진 강, 내성천은 물과 모래가 끊임없이 순환하며 스스로 자정작용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공사가 시작되고 물의 유입이 변하면서 모래의 자정작용도 힘을 잃어갔습니다. 모래가 쓸려간 것입니다. 얇고 고운 모래는 휩쓸려가고 수초와 자갈, 돌무더기가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물이 탁해진 것은 물론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산은 깎이고 나무는 잘렸으며 몇몇 마을은 머지않아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이미 논밭을 버리고 떠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본류의 수질을 맑게 만들던 내성천이 이렇다면 낙동강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지율 스님이 내성천에 천막을 친 이유입니다. 스님은 2009년부터 내성천의 모습을 카메라와 영상으로 담아왔습니다. 내셔널트러스트와 내성천 1평사기 운동을 전개했고 서울 조계사 경내에는 ‘스페이스 모래’라는 컨테이너박스 전시실을 마련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지난 3월에는 4년 동안 스님이 직접 찍고 편집한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 사이 낙동강 내성천 하류에 건립 예정이던 삼강보의 건립중단이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 지율 스님이 밤을 새며 직접 수놓은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아이들.

하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개발계획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부산 국토관리청은 지난해 취소됐던 내성천 개발계획을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내성천 하류에서 삼강, 회룡포, 선몽대에 이르는 22.6km 구간과 지류가 개발 대상입니다. 삼강 상류에 두 개의 보와 자전거 도로, 캠핑장, 14만평의 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겁니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개발인지 물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아직 어머니 물길의 포근함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9월28일, 이들이 모인 곳은 회룡포입니다.

내성천 하류,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는 물길이 만들어낸 육지 속의 섬, 회룡포가 있습니다. 이날 서울·부산·광주·양양 등 각지에서 온 사람들만 300명이 넘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을 맛있게 나눠먹은 사람들이 회룡포 백사장에 앉아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사는 곳은 다르지만 내성천을, 산과 들을, 이 땅의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내성천을 찾은 사람들의 미소에서 내성천의 미래를 가늠해본다.
 
내성천에서 나고 자란 박춘환씨는 현재의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학교를 다닐 때만해도 도처에서 은어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겪은 고향은 그에게 짙은 슬픔이 됐습니다.

부산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강을 걷는 모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중록씨는 내성천을 4일 동안 걸으며 댐의 무서움을 새삼 느꼈다고 합니다. 이것은 폭력이다, 인간이 할 짓이 못된다, 도시생활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다고 담담하게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댐을 만들지 말라는 주장도 공허하기만 할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지율 스님이 말했습니다. ‘4대강 사업’으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었는지 생각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현대인들이 살아내고 있다고 믿는 삶이라는 게 본질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이곳 내성천을 한번 훑기만 해도 금방 알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스님의 말은 짧았지만 눈과 표정으로, 손짓과 몸짓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회룡포 모래톱에 앉아 서로의 말과 눈빛을 마음에 담은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물길로 향합니다. 사람들은 잡은 손을 놓지 않습니다. 손을 잡고 천천히, 천천히 걸어갑니다. 길게 늘어진 사람들은 곧 강물처럼 흐르기 시작합니다. 강물이 흐르고, 하늘이 흐르고, 바람이 흐르고, 사람이 흐릅니다. 아주 오래전, 물에서 생명이 태동하던 순간이 이랬을까요. 사람은 강을 잊었지만 강은 사람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고이 가라앉은 강물 속 모래에서 억겁 세월 생명을 품어온 대자연의 자비가 전해집니다. 우리는 깎고 잘라냈지만 자연은 자비로움으로 우리를 감쌌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내성천은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성천=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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