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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칠중성
임진강 유역 羅唐 격전지
2004. 04. 08   00:00 입력 | 2013. 01. 05   00:32 수정
 


칠중성(七重城)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구읍리 중성산(重城山·149m)에 위치한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중성산은 감악산(紺嶽山·675m)의 서북쪽 줄기에 위치한 낮은 산지이지만 주월리·가월리를 포함한 임진강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은 현재 문산∼적성∼전곡으로 이어지는 37번 국도와 개성∼장단∼적성∼의정부∼서울로 연결되는 349번 지방 국도가 교차되는 교통의 요지다. 

칠중성은 1994년 육군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행해졌다. 2001년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의 정밀지표조사를 통해 전체적인 윤곽과 저장 구덩이 등을 발견했고, 또한 고구려·신라시대의 많은 유물을 수집함으로써 고구려와 신라의 중요한 산성이었음을 입증하게 됐다. 

칠중성이 위치한 지역에 대한 명칭은 시대마다 달랐다. 백제시대에는 난은별(難隱別·높은 볕)이라 했고 고구려가 점거하면서 칠중성현으로 불렀다. 신라는 처음에는 계속 칠중성현으로 부르다가 경덕왕대에 중성(重城)으로 개칭했다. 고려조에는 적성(積城)으로 고쳐 불러 현재에 이르게 됐다. 성의 명칭도 여러 명칭으로 전래돼 토탄고성(吐呑古城)·성산·칠중성·낭비성(娘臂城) 등으로 불렀다. 

칠중성은 군사적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임진강 도하를 저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임진강 유역은 갈수기에 특별한 도하장비 없이 건널 수 있다. 임진강은 곳곳이 곡류(曲流)를 이루는 사행하천(蛇行河川)으로 여러 곳에 물여울을 만들고 있다. 물여울은 좁고 유속이 빠르기도 하지만 건기에는 쉽게 바닥이 드러나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다. 이러한 지역의 남쪽과 북쪽 강안에는 산성을 쌓아 이를 방어했던 것이다. 칠중성 주변의 호로하 또는 칠중하 지역, 특히 가여울(또는 술탄:戌灘)은 삼국시대는 말할 필요도 없고 6·25전쟁 당시에도 중공군이 도섭한 지역이다.

둘째, 북방 세력의 남진을 방어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북방 세력이 임진강을 도하, 남진할 수 있는 통로는 파주 통로와 더불어 적성 통로가 있다. 칠중성은 적성 통로를 방어하는 위치로 인해 임진강을 경계로 하는 세력 간에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년 백제 온조왕과 말갈과의 전투를 시작으로 그 후 선덕여왕시의 신라와 고구려 간 전투(638년), 태종무열왕대의 고구려와 신라 간 전투(660년), 문무왕대의 신라와 당나라 간 전투(675년)가 이 지역에서 벌어졌다. 특히 신라와 당나라가 칠중성에서 치른 전투는 나당 전쟁의 분기점을 이루는 전투였다. 당나라는 거란족·말갈족과 합세해 칠중성을 포위,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이 전투는 신라 측으로는 희생이 컸지만 칠중성의 수성작전에는 성공, 당군의 임진강 이남 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다. 
 
당나라는 칠중성 패전의 책임을 물어 총사령관 유인궤(劉仁軌)를 본국으로 소환하고 부사령관 이근행(李謹行)으로 대행케 했다. 이 전투의 패전을 만회하기 위해 당군이 주력을 동원해 대규모 공세작전을 벌인 전투가 바로 매소성 전투였다. 매소성 전투에서 대패한 당군은 곧바로 재기를 위한 최후의 결전인 제2차 칠중성 전투를 전개했다. 이 전투에서도 신라군은 성주 김유동(金儒冬)이 전사하는 희생 가운데 끝내 수성하는 데 성공했다. 

칠중성 전투는 나당 전쟁의 최대 전환점이 된 매소성 전투의 전초전으로 시작, 이 전투의 대미를 장식하는 최종전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 지역은 고려시대에는 거란과 몽고의 침입 경로로 이용됐다. 1217년 몽고의 동방원정에 밀려 고려에 침입한 거란족의 유종(遺種)이 방비가 강화된 개경 침입 대신 장단을 거쳐 육계토성과 적성을 경유해 철원을 점령했다. 

6·25전쟁 당시에도 치열한 전투가 이 지역에서 전개됐다. 중공군 3만여 명이 인해전술로 임진강을 도섭, 남진할 때 영국군 1개 대대가 3일 동안 중성산에서 방어전을 벌였다. 이 지연책 덕분에 중공군의 서울 진입을 지연시키는 데 성공했다. 칠중성은 백제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요충지로 삼국시대에 이 지역의 영유권을 두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인 거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칠중성은 돌을 이용해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길이는 600m 정도다. 현재 대부분의 성벽은 무너져 내려 외형적 형태가 제대로 남아 있는 부분이 거의 없고 성벽이 훼손된 곳도 많다. 이 때문에 정확한 성의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지만 성벽의 일부 구간에서는 여러 번에 걸쳐 개축된 보축 성벽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변형된 칠중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기본 성벽의 구조와 축조 방식 및 건물지 등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으리라 본다. 

〈강성문 육군사관학교 사학과 교수·前 육군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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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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