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vop.co.kr/A00000747631.html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어쩌다 언론보다 SNS에 더 의지하게 됐을까
[기고] 페이스북 통해 '있는 그대로' 상황 전했던 이재양씨가 본 진도의 진짜 모습
이재양 코코아넷 대표  발행시간 2014-04-24 14:47:32 최종수정 2014-04-24 14:55:53

시작-직접행동

어느 정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언론사들의 재난현장 취재과정에서 생기는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오보가 줄기는커녕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인터넷과 SNS에서도 루머와 추측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고대책본부의 설명, 언론의 보도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가 TV, 인터넷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구분조차 안 갔습니다.

그러다 문득 실종자 가족들의 건강이 걱정됐습니다. 잠 잘 곳은 제대로 되어 있는지, 구호물품은 잘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곳이 없었습니다. 2014년 4월 18일 오전 11시, 대전을 출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실종자 가족과 언론이 아닌 개인의 신분으로 진도를 방문한다는 자체가 조심스러웠습니다. 방문 목적이 봉사활동, 혹은 취재가 아니라 주변인들에게 실제 상황을 ‘대신’ 보여주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지인들과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18일 오후 3시. 진도군실내체육관에 도착한 순간 눈물부터 나왔습니다. 눈으로만 보던 상황에 통곡 소리와 소독약 냄새가 더해져 온 몸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됐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할 일이 명확하게 느껴졌습니다. ‘내 두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를 전달하자.’

팽목항에서 해경 관계자의 브리핑
팽목항에서 해경 관계자의 브리핑
지난 16일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고교생 등이 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가운데 19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세 해경 관계자가 브리핑을 실종자 가족들과 취재진들이 듣고 있다.ⓒ김철수 기자
 
언론의 불신

우선 주변 상황을 전달해주고자 했습니다. 체육관과 팽목항 주변을 살피고 언론의 취재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이 중 실종자 가족들이 기자를 대하는 태도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가족들의 감정이 적대적이었다가 호의적이기를 반복했습니다. 이 분들도 처음에는 언론에 의지하며 호소하고 인터뷰를 했지만 그 내용이 언론에 제대로 나오지 않음을 알고 실망과 분노로 변해갔습니다.

특히 사고현장에 직접 배를 타고 다녀온 부모님의 증언과 상황실의 안내(언론의 보도)가 계속 차이를 보인 점은 언론의 불신을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손에 수첩이나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라도 나타나면 바로 “너 기자야?”라고 인상부터 쓰며 그들을 쫒아내려 했고, 결국 ‘종합상황실 기자 출입금지’ 종이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가족들의 선택은 외신기자의 인터뷰였고, 누군가 인터넷에 올려주기를 바란다는 외침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분노, 오열, 실신

팽목항 종합상황실에서는 항의와 고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더딘 구조 진척상황과 “내일 검토해보겠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해양경찰청장의 말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구조작업에 투입된 장비와 방법들은 수일 전부터 가족들의 제안으로 나온 것들도 있습니다. 총지휘권자가 가족들의 사견은 검증이 안됐다며 거절을 하기보다 우선적으로 검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때문에 가족들은 몇 번이고 지휘체계의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브리핑이 끝날 때마다 가족들은 이전과 다름없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고, 결국 실신하여 구급차에 실려감의 반복이었습니다. 18일 오후에는 실종자 어머님들이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우리 아이들 살려달라’고, ‘제발 세상이 알아달라’고 오열을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성적 해결이 안 되면 감성적 도움이라도 청하자... 이것이 어머님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이었습니다.

한 아버님의 외침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건 내일로 미루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우리 아이들을 구하러 나가는 것’이라고요.

재난 현장입니다만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던 진도군실내체육관과는 달리 팽목항은 비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텐트에 온열장비가 갖춰져 있었지만 많은 가족들은 항구에 나가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특히 주말이 되자 소문을 듣고 찾아온 자원봉자들과 함께 ‘관광객’ 수도 늘어나 구급차조차 쉽사리 지나가기 힘들 정도의 사람이 몰렸습니다. 한껏 화장을 하고 옷을 빼입은 사람들이 실종자 가족이진 않겠죠. 이들(관광객)중 일부는 구호물품을 챙겨가거나 사진을 찍고, 급식소에서 밥을 먹는 등 혼잡을 가중시키기도 했습니다.

정부의 브리핑 중 ‘여행객 진도 방문 자제 요청’이 반가웠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청와대 도보행진

20일 오전 1시경,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를 가기 위해 체육관을 나설 때입니다. 당시 체육관 내 크고 작은 소동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기자들이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체육관 밖에 10대의 의경버스가 배치되어 있다는 소문 확인을 위해 나가던 중 의경들이 도로를 향해 뛰어갔고, 가족들과의 대치가 시작됐습니다.

오죽하면 교통편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 거리로 나섰을까요. 이렇게라도 해야 언론에 보도가 되고 우리(실종자 가족)가 처한 상황을 사람들이 알아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 저의 신분을 밝히고 인터넷에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는 말을 하자 너도나도 “꼭 올려달라”, “사람들이 우리가 걷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사건 이후 선동꾼이니 웃고 떠드느니 하는 기사를 볼 때마다 현장에 있던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아립니다. 6시간 동안, 10km를 함께 걸었습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이미 체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데다가 비까지 오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중간마다 자원봉사 차량이 담요와 마실 것, 구급약을 전해줬기 때문에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행진 중 간간히 나눈 대화에서 나온 웃음마저 보도가 되고 또다시 오보가 나오는 것을 보며 이제는 이분들의 웃음을 다시는 볼 수 없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행진하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
행진하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
20일 새벽 진도체육관에서 청와대로 가겠다며 행진을 시작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약 3시간 가량 걷고 있다.ⓒ사진제공 이재양
 
온-오프라인 이어준 SNS

청와대 도보 행진은 대부분의 언론사가 철수하거나 잠자리에 든 새벽에 이뤄졌습니다. 이 때문에 방송이나 신문사의 속보 상황이 빠르게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신에 인터넷(특히 커뮤니티 사이트와 SNS)의 반응은 뜨거움을 넘어 폭발로 이어졌습니다.

도보행진-진도군체육관-팽목항. 세 곳의 상황에서 발생한 오보(루머)에 대한 사실 확인은 메이저 언론사의 기자가 아닌 인터넷신문사, 인터넷 방송 BJ, 자원봉사자들이었습니다. SNS를 통해 현장에 남아있는 사람을 수소문하고 직접 확인을 통한 ‘사실’이 세계로 중계되고 있었습니다.

휴대폰 배터리가 부족할 때면 혹시나 연락이 끊어질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해주는 분들도 SNS를 통해서였고, 이 소식을 전해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진도 시민분도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밤을 새가며 현장의 소식에 같이 울고 같이 분노하고 같이 안도했습니다.

4일간의 기록을 마친 후

처음부터 현장의 상황을 SNS에 알리진 않았습니다. 한 연예인 팬사이트에 내용을 기록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됐고 외압과 검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SNS로 옮기게 됐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상황을 공유하고 알려지게 된 것 같습니다.

많은 실종자 가족들이 수습된 시신을 확인하고 체육관을 떠난다고 합니다. 언젠가 이 사건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날이 오겠죠. 저 역시 이제는 현실로 돌아와 본업을 위해 마음을 다잡는 중입니다만 아직도 진도군체육관 의자 밑에서 골판지를 깔고 자던 날이 더 편한 것 같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로 정부, 언론의 행동 변화와 성찰이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낭비’로 알려진 SNS도 변화할 것입니다. 그만큼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이 숨쉬고 응원해주신 수천, 수만 명의 SNS친구가 남아있기에 앞으로도 ‘관망’이 아닌 ‘직접행동’이 이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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