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n8oa4V
<8>이순신 병법(2): 적의 지휘선이나 선봉에 화력을 집중하라
학이 날개를 펼치 듯… 일시 격파로 왜구 소탕
2012. 02. 27 00:00 입력 | 2013. 01. 05 07:43 수정
병력의 통합 운용이 해전 전체 국면에서의 ‘전투력 집중’이라면 화력 집중은 구체적인 전투 국면에서의 ‘전투력 집중’이다. 이순신은 해전이 벌어지면 항상 적의 지휘선이나 주력함을 식별해 화력을 집중, 순식간에 격파함으로써 유리한 전투 형세를 조성했다.
당포해전·당항포해전 - 거북선 앞세워 적의 지휘선 공략해 지휘체계 마비시켜
한산도해전 - 학익진 이용해 2~3척에 화력 집중… 일본 함대 쫓아
다음은 임진년(1592년) 제2차 출동 때 있었던 당포해전의 전투 진행 상황이다. “왜선은 크기가 판옥선만한 것 9척과 중·소선을 아울러 12척이 선창에 나눠 대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대선 위에는 높이가 3,4장이나 될 듯한 높은 층루가 우뚝 솟았고, 밖으로는 붉은 비단 휘장을 두르고 휘장의 사면에는 ‘황(黃)’자를 크게 써 놓았습니다. 그 속에는 왜장이 있는데, 앞에는 붉은 일산을 세우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지라 먼저 거북선으로 하여금 층루선(層樓船) 밑으로 치고 들어가 용(龍)의 입으로 현자철환을 치쏘게 하고 또 천자총통·지자총통과 대장군전을 쏴 그 배를 쳐부수자 뒤따르고 있던 여러 전선도 철환과 화살을 번갈아 쏘았습니다. 중위장 권준이 돌진해 왜장을 쏴 맞히자, 활을 당기는 소리에 맞춰 거꾸로 떨어지므로 사도첨사 김완과 군관 진무성이 그 왜장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당포해전이 시작되자 이순신은 가장 먼저 거북선을 일본 수군 장수가 타고 있는 지휘선인 층루선을 향해 돌격시켰다. 그리고는 최근접 거리에 이르렀을 때 선수의 용의 입에 설치된 현자총통으로 철환을 발사했다. 그 다음에는 선수를 돌려 6개의 총통 구멍이 있는 거북선의 현측이 적선을 보도록 기동하면서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으로 대장군전과 장군전을 쏴 층루선의 상부 구조물을 격파했다. 이쯤 되면 지휘선의 상부 구조물 중 상당 부분이 파괴돼 일본 병사들은 은신할 곳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상황이 된다. 이때 활을 사용하기가 어려운 거북선은 돌아 나오게 되고, 뒤따르던 판옥선이 일제히 전진해 은신할 곳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일본 병사들을 향해 화살과 철환을 쏘게 된다. 당포해전은 지휘선에 타고 있던 일본 장수가 중위장인 순천부사 권준의 화살을 맞고 바다로 추락하고, 효시(梟示)되는 광경이 소개되고 있다. 해전이 시작되는 초기에 일본 수군은 지휘체계가 마비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적의 지휘선에 대한 화력 집중의 공격 패턴은 당포해전 직후에 벌어진 당항포해전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 당포해전을 승리로 이끈 후 소소강(召所江) 서쪽 기슭을 순찰하던 조선 함대는 검은색 칠을 한 일본 함선 26척을 다시 발견한다. 그 가운데는 판자로 된 3층 누각의 큰 배도 있었다. 지휘선임이 틀림 없었다. 이순신은 순간 고민했다. 만약 곧바로 공격해 들어가면 일본 수군들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은 일본 수군이 바다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 주는 유인술을 구사했다. 이렇게 되자 일본의 지휘선인 층각선(層閣船)은 열어 준 길을 따라 다른 배들의 호위를 받으며 바다 가운데로 나왔다.
이순신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지휘선인 층각선을 향해 거북선을 돌격시킨다. 장계를 확인해 본다. “우리의 여러 전선은 사면으로 포위하면서 재빠르게 협력 공격을 하고 돌격장이 탄 거북선이 또 층각선 밑으로 치고 들어가 총통을 치쏘아 상부의 누각을 쳐부쉈습니다. 또 여러 함선이 불화살로 그 비단장막과 베로 된 돛을 쏴 맞히자 맹렬한 불길이 일고 누각 위에 앉아 있던 왜장이 화살에 맞아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다른 왜선 4척은 이 창황한 틈을 타서 돛을 올려 북쪽으로 달아나려 하는 것을 신과 이억기 등이 거느린 여러 장수가 패를 갈라서 접전하며…(중략)” 이순신은 당항포해전에서도 어김없이 일본의 지휘선을 향해 거북선을 돌격시켜 먼저 총통으로 상부 구조물을 격파하고 그 다음에는 뒤따르던 판옥선에서 불화살을 쏴 비단장막과 돛을 불태우는 동시에 화살을 쏴 일본의 지휘관을 사살했다. 이순신은 거북선과 판옥선의 협동 공격으로 순식간에 지휘선을 격파하고 지휘관을 사살했으며 이후 지휘관을 잃고 도망가는 일본 함선을 추격해 모조리 격파했다.
임진년 제3차 출동 중에 있었던 한산도해전은 함포 포격전술에서의 화력 집중의 표본이다. 이순신은 견내량에 정박해 있던 일본 함대를 한산도 앞의 넓은 바다로 유인했다. 일본 수군은 해전을 벌이다 불리하면 육지에 배를 대고 도망가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학이 날개를 펴는 것과 같은 모양의 학익진(鶴翼陣)을 펼쳐 일본 함대를 공격했다. 한산도해전을 기록하고 있는 장계를 확인해 본다. “먼저 판옥선 5※6척을 시켜 선봉으로 나온 적선을 뒤쫓아 습격할 기세를 보였더니 여러 배의 적들이 일시에 돛을 달고 쫓아 나왔습니다. 바다 가운데로 나와서는 다시 여러 장수에게 명해 학익진을 벌여 일시에 진격해 각각 지자·현자·승자 등의 여러 총통을 쏴 먼저 2~3척을 쳐부수자, 여러 배의 왜적들이 사기가 꺾여 도망갔습니다. 여러 장수나 군사들이 이긴 기세를 뽐내어 앞다퉈 돌진하면서 화살과 불화살을 번갈아 쏘니 그 형세가 바람과 우레 같았습니다. 일시에 적의 배를 불태우고 적을 사살해 거의 다 없애 버렸습니다.”
학익진은 총통 1,2문이 배치된 선수가 아니라 6,10문이 배치돼 있는 현측에 있는 총통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진형법이다. 이순신의 주력 함대는 일본 함대를 유인하기 위해 투입된 5,6척의 조선 함선을 추격해 오는 일본 함대를 기다렸다가 학익진으로 에워싸면서 선두의 2※3척을 향해 여러 척의 현측에 배치된 총통의 화력을 집중시켰다. 수십 문의 총통 공격을 일시에 받은 선봉에선 일본의 함선 2,3척이 순식간에 격파됐다. 일본 함대의 선봉을 격파해 기선을 잡은 조선 수군은 일제히 전진하면서 우왕좌왕하는 일본 함선을 거의 대부분 각개 격파했다.
개전 초기에 거북선을 돌격시켜 적의 지휘선에 화력을 집중, 일시에 격파함으로써 주도권을 잡은 당포해전이나 당항포해전과는 달리 한산도해전에서는 학익진을 이용해 선두의 2,3척에 화력을 집중, 일시에 격파함으로써 해전의 주도권을 잡았다. 거북선이나 학익진을 활용한 적의 지휘선이나 선봉에 대한 화력의 집중, 이순신 전승무패의 또하나의 비결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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