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954
한국인은 단일 민족인가?
오태진의 한국사 이야기
오태진 | gosilec@lec.co.kr 승인 2014.05.16 10:40:04
오태진 아모르이그잼 경찰학원 한국사 강사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우리 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계 한국인들에 대한 토크쇼가 방송되는 것을 보았다. 가나에서 온 한 출연자는, 더 이상 가나에서 살 수가 없고 한국에서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여 많은 이들을 웃음짓게 만들었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이방인으로만 대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약관화하게, 우리는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혼혈인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차별은 바로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는 내용을 전제로 한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단일 민족 국가로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라고 적고 있으며, 고등학교 시민 윤리에는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 국가이다. ...피를 나눈 동포에 대한 연대 의식으로서 민족 공동체 의식은 애국심과 비교될 만하다.’라고 적혀 있기도 하다.
하긴 너와 나의 모습을 보면 모두 까만 머리, 살색 피부, 같은 모습이기는 하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일까?
민족의 기원 및 형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문헌자료, 유물 및 유적, 유골의 분석, 유전자 분석 등이 이용되고 있으며, 우리 나라 민족의 기원과 형성 문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논쟁이 진행되어 왔다.
하나는 동일한 주민이 민족의 기원이 되고 아울러 민족 형성의 근간이라는 견해이며 또 하나는 민족의 기원 및 형성은 복합성을 지니면서 이루어졌다는 견해이다.
먼저 단일 기원설의 내용은 대체로 민족주의 학자들과 현재 북한 역사학계의 기본적인 입장으로, 고고학의 화석 인골을 통해 단일 기원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주장하는 단일 기원설은 순수한 학문적 연구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즉, 주체 사상에 입각한 북한 정권의 정통성 문제와 연결되면서 억지로 짜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후 제시한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정면으로 비판을 받는다. 다음으로 복합기원설에 대하여 알아보자.
대체로 우리 민족의 근간이 형성된 시기를 신석기 시대로 본다고 할 때, 우리 나라에서 발견되는 신석기 시대의 토기는 지역마다 편차를 보이고 있다.
바닥이 편평한 평저 토기는 중국 동북지역과 아무르강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하며,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 토기는 암사동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즉, 사용했던 토기가 달랐다는 것을 통해 복합 기원설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를 더욱 진행하여 신석기 시대에는 무늬가 있는 토기(유문토기)를 사용하였고 청동기 시대에는 무늬가 없는 토기(무문토기)를 사용했다는 것을 통해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이행하는 동안 민족이 변화되었는가 그대로 이어졌는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우리 나라 선사 문화에는 크게 4단계의 문화 변동이 있었다. 첫째, 시베리아 등지의 문화가 연관되는 시기, 둘째, 중국 동북 지역과 유사한 시기, 셋째, 내몽골 요서 지역과의 연결된 청동기 문화, 넷째, 중국의 문화권을 받아들이는 단계가 그것이었다.
즉, 신석기 시대에는 주민들이 문화를 갖고 이동하였지만, 청동기 시대 이후에는 예맥족이 민족의 중심을 이루면서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유물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연구 방법은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그러한 과학적인 방법 중에는, 미토콘드리아DNA와 Y염색체를 분석하여 모계와 부계의 전승 내력을 규명하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월레스(Wallace. A.)의 인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 이주표에 의하면 현생인류는 13만~17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5만년 전에 중앙 아시아를 거친 계열이 우리나라에 연결되고 있다.
이 연구 성과에 따라 각 유전형을 검토하면 기본적으로 우리 민족은 북방계가 주가 되는 가운데 일부 남쪽 지역에서 이주한 주민이 우리 민족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즉, 우리 민족의 구성 분포는 북쪽에서 내려온 주민 비율이 약 70%가 되고, 동남아시아를 거쳐 들어온 주민이 약 30%가 된다는 것이다.
또다른 방법은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추론하는 방법이다. 이에 대한 견해로는 중국, 일본, 우리 학자들간의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북방의 예맥(濊貊), 남방의 한(韓)으로 파악하고 있다.
결론을 내리자면,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과 체질 인류학(뼛조각의 분석) 및 유전자학의 분석, 문화의 변동 과정 등을 종합해 볼 때, 신석기 시대의 정착 생활이 일반화되는 동안 북쪽의 예맥(濊貊)과 남방의 한(韓)이 만주 지역 및 한반도에 정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 지역에는 예맥족과 한족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말갈, 숙신, 선비, 동호 등의 민족이 있었고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 국가가 형성되면서 각기 독자적인 국가를 세우거나 우리 민족이 세운 고조선, 고구려, 부여 등으로 흡수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이후부터는 민족의 큰 이동이나 변화 없이 민족의 연속성이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족의 기원은 복합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연속성에 있어서는 단일 민족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그러나 고대, 고려, 조선 등 우리 역사 전반에 걸쳐, 전쟁 등으로 인해 수많은 혼혈이 발생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것이 동양인들 간에 이루어진 것이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 몸속에도 그들을 차별할 만한 피가 한 방울이라도 흐르고 있지 않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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