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onam.co.kr/read.php3?aid=1277910000335008141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 오륜마을에 있는 나대용 생가(좌)
나대용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소충사(우)
이순신, 사천해전서 거북선 첫 출전 (하)
나주 나대용 생가, 소충사, 여수 선소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2부 - 임진왜란과 호남 사람들 10
나주 나대용 생가, 소충사, 여수 선소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2부 - 임진왜란과 호남 사람들 10
입력시간 : 2010. 07.01. 00:00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 오륜마을에 있는 나대용 생가(좌)
나대용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소충사(우)
왜란 승리주역 거북선 건조는 나대용 발상
나주 낙향 중 이순신에 신예 전투함 역설
임진왜란 발발전 3척 건조 포격시험 마쳐
첨단 전투함 거북선을 제작한 실무 책임자는 군관 나대용(1556-1612)이다. 나대용은 나주 출신으로 1583년 28세 때 무과에 합격하여 훈련원 봉사 등 무관을 하다가 1589년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나주에 낙향하여 거북선 연구에 몰두하였다. 1591년에 그는 장차 왜구가 대대적으로 침입하리라는 소문과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였다는 소식에 사촌동생 나치용과 함께 거북선 설계도를 가지고 여수로 간다. 1591년 3월 나대용은 이순신에게 거북선 설계도를 보이면서 신예 전투함 제작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2004년 9월부터 1년간 방영된 KBS 인기 역사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는 나대용이 이순신에게 덮개가 있는 거북선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덮개만 씌우면 되는 것입니까. 마치 초가지붕이 둥글어서 물이 미끄러져 내리듯이 배에 둥근 모양의 덮개를 만들면 적들이 배에 접근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덮개가 있는 배를 만들면 적들은 우리를 보지 못하고 우리는 적들을 볼 수 있어서 대포로 깨뜨리고 불화살로 태워버릴 수 있습니다. 어떠한 공격에도 끄떡없는 돌격선을 만들어 빠르게 가까이 접근하면 적이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이 얼마나 창의적인 발상인가? 자(字)가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시망(時望)’인 나대용은 이렇게 이순신에게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이순신은 크게 탄복하여 즉각 그를 거북선을 만드는 최고책임자인 전선 감조 군관으로 임명한다.
이후 나대용은 1년여 동안 거북선 건조에 온 힘을 기울인다. 드디어 1592년 3월에 거북이 건조된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4월12일 포격실험을 마친다.
사실 전라좌수영 거북선에 대하여는 제대로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거북선이 몇 척이었는지, 그 원형이 어떠했는지 확실하지가 않다.
기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초기에 전라좌수영에서 만들어진 거북선은 3척이었다 한다. 여수 망마산 아래 선소에서 만들어진 ‘본영 거북선’, 고흥 방답진에서 만든 ‘방답 거북선’ 그리고 순천에서 만든 ‘순천 거북선’이 그것이다. 그리고 1595년 초에는 거북선은 5척이었고, 1597년 정유재란 때는 7-8척 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거북선의 원형도 알 수가 없다. 거북선에 관한 기록이 이순신의 장계와 그의 조카 이분의 일기 등에 적혀 있는 정도이고 구체적인 설계도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200년이 지난 정조 19년(1795년), 정조임금은 이충무공에 대한 전집인 '이충무공 전서'를 편찬하였는데 여기에 거북선 설계도가 나온다.
그런데 이충무공 전서의 기록은 임진왜란 당시와는 사뭇 다르다. 이를테면 임진왜란 때는 거북선의 포문수가 14문인데 전서에는 36문에서 72문, 덮개위의 쇠못은 없어지고 그 대신 거북무늬를 덮었고, 포를 쏘는 용머리도 거북 머리로 둔갑되어 있다.
지금까지 거북선은 선체가 2층으로 알고 있지만 최근 어느 대학 연구소는 3층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한 가지 분명히 밝혀둘 것은 거북선은 철갑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것은, 먼저 왜적들이 검은 칠을 한 덮개에 철제 송곳이 박혀 있는 목재 거북선을 철갑선으로 오해를 하였고, 일본 사람들의 이 이야기가 영국인에게 전하여지자 영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거북선을 ‘세계 최초의 철갑선’으로 기록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거북선을 철갑선이라고 과대 포장한 것이다.
거북선은 단지 판옥선 위에다 덮개를 씌운 배이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기술을 가진 조선이라도 16세기에 철로 만든 배, 철갑선을 만들지는 못하였으리라. 역사는 사실을 왜곡하여서는 안 되고 역사학자는 국수주의에 빠져서도 안 된다.
6월의 주말에 과학자 나대용을 만나러 나주를 간다. 나대용 생가는 나주시 문평면 요룡리 오륜마을에 있다. 오륜마을의 노인정에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 생가를 찾았다. 생가는 노인정 바로 뒤편에 있다. 오륜길 28-5라고 표시된 방 네 칸의 초가집이다. 오룡리(五龍里)라는 이름이 다섯 마리 용을 말하는 듯 한데 용이 들어가는 지명은 터가 좋은 길지인 것 같다.
초가집에는 경모당이라고 한문으로 적혀 있고 생가 입구에는 ‘나대용 장군생가 및 묘소’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는 나대용 장군이 거북선에 대한 설계도와 제작과정을 연구하고 마을 앞 방죽골에서 첫 시험을 끝내고 1591년에 이순신 장군을 찾아가 거북선 제작을 건의하여 거북선 3척이 만들어졌다고 적혀 있다. 그의 묘소는 생가에서 약 3km 떨어진 문평면 대도리 산기슭에 있단다.
이윽고 나대용 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모신 소충사(昭忠祠)를 찾았다. 외삼문에는 '체암 나대용 장군 제398주기 추모식. 2010.4.21 주최: (사) 체암 나대용 장군 기념사업회'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4월 21일은 과학의 날이다. 나대용이 돌아가신 날은 1월 29일이나 과학자 나대용의 업적을 더욱 기리기 위해 과학의 날에 제향을 모시는 것이리라.
외삼문인 충용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앞에 소충사 사당이 있고 오른편에 묘정비가 있다. 사당 안은 열려 있었다. 가운데에 영정과 위패가 놓여 있다. 영정은 나대용 장군이 호피 방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위패는 ‘체암 나선생’이라고 적혀 있다. 목례를 하고 잠시 창의적 과학자 나대용 선생을 기렸다.
호남인인 그가 거북선을 만든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도원수 권율은 “이순신은 나대용이 없었던들 그와 같은 무공을 세울 수 없었을 것이고, 나대용은 이순신이 아니었더라면 큰 이름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한다. 그만큼 나대용의 업적을 높이 평가 한 것이다.
이어서 나주시 문평면 서원마을에 있는 송재사를 찾았다. 이곳에는 체암 나대용의 위패가 모시어져 있다. 그의 대 선배 송재 나세찬, 금호 임형수와 함께.
며칠 후 여수시 시전동에 있는 선소를 찾았다. 선소는 거북선을 만든 곳이다. 이곳에서 거북선 제조 책임자 나대용이 거북선을 만들었으리라. 선소에는 인위적으로 축성한 굴강이 있다. 굴강은 배를 수리하고 건조하기 위하여 만든 도크이다. 근처에는 세검정과 풀뭇간 그리고 군기고가 있다.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에서 만든 책자에 의하면 1895년 삼도수군통제영이 혁파되면서 거북선도 자취를 감추었다 한다. 1910년 한일병합때 자결한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선비요, '매천야록'의 저자 매천 황현(1855-1910)이 지은 한시 중에 ‘충무공 거북선 노래’ 가 있다. 이 한시를 읽어 보면 구례에 살고 있는 황현이 여수에 놀러와서 거북선을 보고 한시를 지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전략)
좌수영의 남쪽 문이 활짝 열리고
북소리 둥둥 울리며 거북선 나타나네.
거북 같으나 거북이 아니며 배 같으나 배도 아니고
판옥 둥근 것이 고래 거품 뿜듯 헤쳐 나가누나.
네 개 발은 실 새 없이 차바퀴 마냥 돌아가고
비늘 돋친 양 겨드랑이엔 창구멍이 뚫렸어라
스물 네 개의 긴 노는 물속에서 춤추는 듯
밑창에서 노꾼들이 앉았다 누웠다 노를 젓네.
코로는 검은 연기 내뿜고 두 눈은 불길 마냥 붉게 타며
길게 펴면 용이 헤엄치는 것 같고 움츠리면 자라 같구나.
(중략)
2백년이 지난 오늘, 땅이 다시 허물어져
연기 뿜으며 중기선이 동쪽 바다를 달리는 구나.
불길 타오르는 조국 강토에는 범 같은 서양 사람들 몰려들고
하늘에 사무쳤어라. 도살하는 총탄이 울리는 소리
이충무공 같은 애국 명장이 있다면
나라 살릴 방책을 생각해 내리라.
거북선 만들어 이긴 그 묘한 지혜로 적과 맞선다면
왜놈들도 무릎 꿇게 할 것이고 서양 사람들도 멸할 것이다.
김세곤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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