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navy.ac.kr/common/file/chungmugong1_01.pdf
9. 이순신병법 (6) 만전(萬全)의 원리
이순신이 7년 간 20여 회의 해전에서 모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준비태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듯이, 전쟁에서 준비없는 승리란 없다. 이제까지 피상적으로 소개된 이순신의 승리에는 많은 극적인 요소가 있지만, 그 승리의 배후에는 언제나 피와 땀으로 점철된 철저한 전투준비가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 거북선 건조는 철저한 전투준비태세의 백미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4년전(1588년) 임금인 선조가 대신들에게 유능한 무인(武人)을 계급에 관계없이 천거하도록 한 것은 일본의 침략 징후에 대한 일종의 대비책이었다. 비록 조선이 왜란에 대비하여 체계적인 전쟁 준비를 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순신 같은 유능한 무장(武將)을 발탁하여 호남의 길목인 전라좌수영을 책임지도록 한 것은 매우 적절하고도 훌륭한 인사조치 였다. 아마도 이것은 임금인 선조가 임진왜란에 대비하여 내린 조치 가운데 가장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591년 2월 13일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였다. 그는 부임 이래 실로 눈코 뜰새 없이 전비태세 확립을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임금인 선조가 자신을 종6품인 정읍 현감에서 어느날 갑자기 정3품인 전라좌수사로 특진, 임용시킨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중일기》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전쟁이 발발하는 해인 임진년(1592년) 1월부터 전투준비태세를 점검하기 위하여 관할 부대인 순천ㆍ보성ㆍ낙안ㆍ광양ㆍ흥양 등의 5관(官)과 사도ㆍ방답ㆍ여도ㆍ녹도ㆍ발포 등 5포(浦)를 차례로 순시하여 업무에 충실한 부하들에게는 포상을 내리고 불성실하거나 나태한 병사들은 엄하게 처벌하였다. 그러나 1년 2개월 동안 일본의 침략을 확신하면서 준비한 조치들 가운데 백미는 거북선 건조이다.
고려 말 진포해전(1380년), 관음포해전(1383년)에서 세계 최초로 함포를 사용한 고려 수군의 함포운용술을 계승, 발전시켜 200여 년 동안 그것을 운영해 온 조선 수군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에 이르면 함포운용술에 관한 한 최상의 단계에 와 있었다. 바야흐로 해전에서의 함포시대가 활짝 열려 있었던 것이다.
조선 수군의 해전 전술은 적과 일정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 천자ㆍ지자ㆍ현자ㆍ황자총통으로 대변되는 함포를 쏘아 등선육박전술(登船肉薄戰術)을 주요 해전 전술로 삼고 있는 일본의 배가 접근하기 이전에 격파 또는 분멸하고, 그 다음에는 침몰하고 있는 배의 갑판위에서 우왕좌왕하거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적에 대해서는 활을 사용하여 살상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기존의 함포 중심의 해전 전술 패턴을 활용하면서도 공격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개전 초기에 적의 지휘선을 향해 돌진하여 격파할 수 있는 새로운 함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도 수군 지휘관으로 근무했던 발포 만호 시절의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되었으리라.
이렇게 하여 개발된 것이 돌격선인 거북선이다. 거북선은 판옥선을 모델로 하여 위에 덮개를 씌운 것이다. 해전에서의 거북선의 역할은 가장 앞장서 적의 지휘선이나 주력함을 공격 목표로 삼아 돌진하면서 각종 총통을 쏘아 격파함으로써 개전 초기에 적의 지휘부를 무력화시키는데 있었다. 거북선의 덮개는 적선과 충돌하여 서로 접하게 될 때 등선육박전술(登船肉薄戰術)을 특기로 하는 일본 병사가 칼을 들고 뛰어 오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거북선의 위력은 견고하게 만들어진 선체와 적의 함선에 포위되더라도 전후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기동성, 그리고 거북 덮개와 널빤지에 의해 은폐된 각종 총통의 가공할 화력에 있었다.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들어 돛을 달고, 화포를 설치하여 사격훈련 등을 실시하고 전투세력으로 합류시킨 날은 임진년(1592년) 4월 12일이었으니, 정확히 임진왜란 발발 하루 전이었다. 이렇게 볼 때 호남의 길목인 전라도 좌측 해안을 책임지고 있는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임진왜란에 대비하여 1년 2개월 동안 거의 완벽한 전투준비를 갖추었던 셈이다. 그러나 고려 말 이후 200여 년 동안 해전을 전문으로 하여 독립된 군(軍)으로 발전되어 온 조선 수군이 없었다면 그리고 왜구들의 해전 전술에 대비하여 발전되어 온 함포 중심의 무기체계나 신예 함선인 판옥선이 없었다면 천하의 명장 이순신도 그토록 완벽한 해전의 승리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임진왜란에서의 해전의 승리! 이것은 해양민족으로써 수 천 년 동안 면면히 계승, 발전되어 온 우리의 빛나는 해양전통과 일본군의 침략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춘 위대한 수군 지도자 이순신이 결합하여 만들어 낸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준비되지 않은 승리는 결코 있을 수 없음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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