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navy.ac.kr/common/file/chungmugong1_01.pdf
10. 이순신병법 (7)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원리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은 뒤에 싸워서 항상 승리하지만,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우고 나서 요행으로 승리하기를 바란다. 이른바 전투는 이기게 되어 있는 싸움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순신은 전투에 관한 한 완벽주의자였다. 그는 승리의 확신이 없는 해전은 결코 벌이지 않았다.
▶ 이순신은 한산해전에 임하면서도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으며,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전과(戰果)를 극대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였다.
임진년 1차 출동에서 치른 옥포해전을 비롯한 세 번의 해전을 모두 승리로 이끈 이순신 지휘 하의 조선 수군은 해전에 관한 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며 사기 또한 충천하였다. 이순신은 거의 모든 해전에서 일본의 수군을 좁은 포구로부터 넓은 바깥 바다로 유인하여 격멸하는 함대결전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하였다. 좁은 포구에서 해전을 할 경우 형세가 불리함을 느낀 일본 수군이 육지로 상륙하여 도주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이다.
넓은 바다로 유인하여 싸우는 해전전술은 승리에 대한 확신없이는 사용하기 어려운 것인데 그 대표적인 해전이 임진년 3차 출동 중에 벌인 한산해전이다. 임진년 1, 2차 출동 때의 해전이 남해연안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일본 수군에 대한 기습공격이었다면, 3차 출동에서의 한산해전은 조선 수군과의 해전을 위해 나름대로의 준비를 갖춘 일본 정예 수군함대와의 한판 승부였다. 이순신 함대는 전라좌우수영과 경상우수영 소속의 전선 59척이 주력이었고, 일본 수군 함대는 판옥선과 크기가 비슷한 대선이 36척, 중선이 24척, 소선이 13척으로 도합 73척이었다. 이순신은 한산해전에 임하면서도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다. 한산해전이 벌어지기 하루 전인 1592년 6월 7일 견내량에 일본 함선 70여 척이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순신은 밤새 작전계획을 구상하였다.
“견내량은 지형이 매우 좁고, 또 암초가 많아서 판옥전선은 서로 부딪히게 되어 싸우기가 곤란할 뿐만 아니라 적은 만약 형세가 불리하게 되면 기슭을 타고 육지로 올라갈 것이므로 한산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하여 모조리 잡아버릴 계획을 세웠습니다.”(『李忠武公全書』卷二, 狀啓一, 見乃梁破倭兵狀)
이순신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또는 ‘우리는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전과(戰果)를 극대화할 수 있을까’에 있었음이 위의 인용문에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요약하면 첫째, 견내량은 해역이 좁아 당시로서는 큰 배에 속하는 판옥선의 기동이 불편하여 전투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둘째, 이전의 해전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적들은 형세가 불리하게 되면 배를 버리고 곧장 육지로 도망할 것이다. 셋째, 이와 같은 제한점을 극복하고 전과(戰果)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한산도 앞의 넓은 바다로 유인하여 격파해야 한다. 이순신의 구상은 밤새 계속되었다.
다음 날 아침, 사전에 수립된 작전계획에 따라 이순신은 판옥선 5, 6척을 견내량에 보내 공격을 시도하였다. 일종의 유인술(誘引術)이었는데, 적들은 일시에 돛을 달고 달려 나왔다. 조선의 함선 5, 6척이 뱃머리를 돌려 한산도 앞바다로 퇴각하자 일본 수군 함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다 한 가운데로 따라 나왔다. 거짓으로 퇴각하던 조선의 함선들은 한산도 앞 바다에 이르자 기다리고 있던 수군 본대와 합류하면서 뱃머리를 돌려 함께 학익진(鶴翼陣)을 펼쳤다. 조선 수군 함대는 선두에서 추격해 오는 일본 함선 2, 3척에 화력을 집중하여 깨뜨린 것을 시작으로 총공격을 감행하여 일본 함대의 대선 35척, 중선 17척, 소선 7척 등 도합 59척을 일시에 격파하였다. 일본 함대는 거의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반면에 조선 수군은 단 1척의 함선 피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인명피해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한산해전의 전투결과는 조선 수군의 전투력이 일본 수군에 비해 월등하였음을 반증해 준다. 거기다 화력을 집중시키기 위한 진형법인 학익진의 운영 등 이순신의 주도면밀하고도 탁월한 병법의 구사는 조선 수군의 전투력을 극대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군(軍)에서의 리더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나 철저한 준비없이, 감정에 휩싸여 또는 도박하는 심정으로 전쟁에 임해서는 안된다. 전쟁의 결과는 부하 병사들의 생사(生死)문제 뿐만 아니라 국민의 안위(安危) 나아가 국가의 존망(存亡)까지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는 요행이라는 것이 없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스스로는 천행(天幸)이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그는 승리를 위한 제반조건들을 최선을 다해 갖추어 놓고 싸움에 임하였다. 결국 요행도 승리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순신의 진정한 위대성은 열세한, 그래서 보통사람으로는 승리할 수 없는 극악한 상황에서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적절한 병법의 구사를 통해 열악한 조건을 승리할 수 있는 우세한 조건으로 전환시켰던 그의 탁월한 군사전문가적 역량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순신의 병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필자는 앞에서 이순신의 병법을 ‘병력집중의 원리’, ‘화력집중의 원리’, ‘주동권 확보의 원리’, ‘정보획득의 원리’, ‘지리(地利)이용의 원리’, ‘만전(萬全)의 원리’,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원리’ 등 일곱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순신의 위대성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기를 희망해 본다.
임진왜란 무기, 군사 http://tadream.tistory.com/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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